이런 순간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살아오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순간들이 왜 없었으랴. 참 많이 했다. 어떤 길은 끝까지 붙잡았고, 어떤 길은 중간에 조용히 놓았다. 끝까지 간 길이 늘 옳았던 것은 아니었고, 놓았던 길이 모두 실패로 남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포기’라는 단어를 예전처럼 단순히 실패나 약함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때로는 포기가 더 나은 선택이었고, 놓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이 피어나기도 했다.
결혼 후, 캐나다에서 신혼을 시작한 이민 초기의 시간은 매일같이 나를 시험했다. 언어의 장벽, 정체성의 혼란, 익숙하지 않은 사회 속에서의 고립감은 한국으로 돌아갈까 수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어떤 날은 이곳에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벅찼고, 아주 사소한 일조차도 큰 도전처럼 느껴졌다. ‘내가 여기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떠올랐고, 수십 번의 취업 실패로 돌아오는 인터뷰 결과에 스스로의 가능성을 의심하곤 했다. 그 시절의 나는 ‘버티는 것’이 곧 살아남는 방법이라 믿었고, 그렇게 버티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그로부터 몇 해 뒤, 석사 과정을 시작했을 땐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 혼란이 겹치며 또다시 깊은 흔들림이 찾아왔다. 온라인 수업 속에서 사람들과 눈도 못 마주치는 날들이 이어졌고, 사랑하는 남편이 곁에 있었음에도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한국에 있다는 거리감은 내 마음 한구석을 외로움으로 채웠다. 그 시기에도 나는 여러 번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이 길의 끝에 정말 무언가가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를 설득하고, 의심하고, 다시 다잡으며 걸었다. 그리고 결국, 끝까지 가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마친 2년의 시간 끝에서 나는 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 길은 분명히,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던 경우였다.
하지만 모든 길이 그랬던 건 아니다. 예전에는 어떤 일이든 끝까지 해내야만 의미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미 마음이 떠난 일에도 스스로를 억지로 끌어 붙이며 버티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버팀이 오히려 나를 점점 소모시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처음으로, '그만두는 것'도 용기라는 사실을 배웠다.
어떤 프로젝트는 중간에 손을 놓았고, 어떤 계획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실패’라 여겼을 일이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결정들은 오히려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다. 그 선택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번아웃 속에서 나 자신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포기했기 때문에 더 나에게 맞는 길, 더 의미 있는 일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포기하지 않고 또 끝까지 갔다면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모습이었겠지.
영화의 슬라이딩 도어처럼,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그 안에는 포기와 지속이라는 두 갈래가 존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그 사이를 오간다. 중요한 것은 포기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포기하고, 무엇을 위해 계속 걸어가는지를 아는 일이다. 끝까지 가서 얻는 성취의 기쁨도 중요하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내려놓은 선택이 가져다주는 평온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포기의 또 다른 이름은 약함이 아니라, 때론 지혜일 수 있다는 것을.
앞으로도 ‘그만둘까?’라는 생각은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그 물음 앞에 설 수 있다. 그리고 쉽게 결정하기보다는 여러 가지의 경우들을 돌아보면 가능성에 더 집중한다. 주저앉기보다는 내 마음의 목소리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더 나다운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느려도 괜찮다는 것을.
그리고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들을 견디게 해 준 것은 결국 나를 믿으려는 작은 용기와, 곁에서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그 수많은 순간들이 나에게 더 깊은 감사와 겸손을 가르쳐 주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그 흔들림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