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

빈 공간, 새로운 시작

by 타인head

작년 10월부터 올 6월 말까지, 다섯 가지의 크고 작은 일들을 동시에 맡아왔다. 그중 두 가지는 매일 반복되는 정기적인 일이었고, 나머지 세 가지는 각기 다른 데드라인을 가진 프로젝트들이었다.

풀타임으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방황하던 시기, 운 좋게 여러 기회들이 찾아왔다. 절반은 새로운 경험을 위한 것이었고, 절반은 그저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나씩 추가된 일들을 하면서 매일, 매주, 매달이 깨어있는 상태로 산 것 같다. 먼저 다섯 개의 이메일 계정을 각각 확인하는 일부터 곤욕이었다. 업무마다 사용하는 메일이 달랐기에 하나하나 로그인해 확인해야 했고, 이메일을 보낼 때도 발신자의 주소가 해당 조직에 맞는지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회의 준비, 회의 장소와 시간 조율, 회사마다 다른 요청사항들… 그 모든 것을 맞추기 위해 나 자신을 조율하고 분산시키는 일이 반복됐다.

하루하루를 ‘해내고’ 있다는 마음으로 매 순간을 보냈다. 그렇게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감사하게도 모든 일들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모든 것이 끝난 오늘, 소파에 앉아 멍하니 앉아있었다. 오랜만에 두 시간이 넘는 낮잠도 잤다. 그래도 머리가 깨지 않아 동네도 걷고 집안일도 했다. 마음이 시원하고 가볍다. 그건 당연하다. 이제 더는 이메일을 쪼개 가며 보지 않아도 되고, 회의 준비, 발표 기한에 쫓길 일도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 한편이 허전할까.
심란하고 공허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마도 이 공허함은 ‘일’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동안 나를 붙잡고 있던 ‘의미’가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바쁘게 움직일 땐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멈춰 선 오늘에야 조용히 밀려온다.

이 공허함은 어쩌면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여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동안은 ‘무언가를 채우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무엇으로 채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향해 가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공허하고 허전한 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시작이라 믿는다.


잘했다.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하자.

역시 글을 쓰니 마음이 정리가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