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적당한 거리가 있다.

서로에게 건강한 적당한 거리

by 타인head

인구 오천 명이 조금 넘는 작은 시골 마을에 남편의 직장 발령으로 2년 정도 산 적이 있다. 마트 두 개, 병원 하나, 학교 하나. 서로가 어디에 사는지, 어떤 얼굴로 살아가는지 대강은 알고 지내는 동네였다. 계절은 또렷했고 하늘은 유난히 푸르렀다. 과일 농장이 많아 봄이면 꽃이, 여름과 가을이면 열매가 마을의 색을 바꾸었다.


우리가 렌트로 살던 집도 과일나무가 많은 마당을 가진 2층 집의 1층 한켠이었다. 살구나무, 체리나무, 복숭아나무, 사과나무, 배나무가 계절을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캐나다로 이사온지도 2,3년채 안됐을 때고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게 꽃이 지고 작은 열매가 맺히고, 그것이 점점 단단해지는 과정을 매일 바라보는 일은 낯설면서도 위로가 되었다.


남편이 일하러 가면 나는 정말 한가했다. 아침이면 커피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 나무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어제보다 붉어진 체리를 살피고, 복숭아의 솜털을 만져보고, 체리의 색이 어제보다 더 붉어졌는지 살펴보고, 사과나무 가지에 매달린 작은 열매를 한참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느리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시간 덕분에 지금도 사물을 천천히, 가까이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어느 날, 집주인이 마당으로 나와 나무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가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옆에서 구경을 하다가 무심코 물었다. “왜 저 나무는 저렇게 가지를 많이 잘라내세요?” 그러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무마다 열매가 잘 맺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요. 너무 멀어도 안 되고, 너무 가까워도 안 됩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무 사이의 거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어떤 원칙을 건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나무가 너무 가까이 서 있으면 서로의 햇빛을 가리고 뿌리가 엉킨다. 반대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바람과 벌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열매는 적당한 간격 속에서 맺힌다. 서로를 느끼되 침범하지 않는 거리, 그 균형이 필요하다.


사람도 그렇다. 너무 가까우면 서로의 경계를 넘기 쉽고, 결국 상처를 남긴다. 생각과 감정, 시간과 공간까지 모두 공유하려 하면 친밀함은 부담으로 바뀐다. 반대로 너무 멀면 마음이 식는다. 관심을 두지 않고 손을 내밀지 않으면 관계는 힘을 잃는다.


사람마다 편안함을 느끼는 적당한 거리가 있다. 그 거리는 각자마다 관계마다 다르다. 가족 사이에도, 친구 사이에도, 동료 사이에도 그 간격은 존재한다. 가까워도 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오래 갈 수 있는 관계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거리를 내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는 일이다.


나무의 종류마다 잘 자랄 수 있는 적당한 거리가 있듯, 모든 사람관계가 가까워야 좋은 건 아니다. 그리고 관계가 많아야 좋은 것도 아니다. 서로에게 편하고 적당한 거리를 존중하면서도 상대의 빛을 가리지 않고 필요할 때는 바람이 되어줄 수 있는 거리, 그 균형을 찾는 일이 관계의 본질이라는 것을 시골에서 한량처럼 나무들을 매일 보면서 느낀 점이다.


지금도 계절이 바뀌면 그 마당이 떠오른다. 너무 가깝지도 않게. 각자가 숨 쉴 수 있는 거리를 지키며 서로의 열매를 피우는 나무들을 보면서 나에게 건강한 관계의 거리도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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