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를 시작하려는 후배들에게
회사가 법카로 업무관련 도서구매비용을 100% 지원해 주는 덕분에 UX디자인 관련 책이 나오면 주저하지 않고 사 보는 편이다.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못해 읽는 중간 중요한 부분이나 느낌들을 노션에 기록하면서 읽는데, 그 때마다 '그래서 UX 디자이너는 무엇이고, 어떻게 일 하는 사람인가'에 대해 명쾌한 정리가 있는 책은 잘 보지 못한 것 같다. 추상적인 '경험을 디자인한다.' 과연 이런 정의로 UX디자이너들은 괜찮은 걸까? 역할을 정의하기 어려운 이 집단은 자생력을 갖추고 있는 집단인 걸까?
이 둘 간의 개념 차이를 쉽게 이해하려면, '요리'와 '요리사'의 관계를 보면 된다. 한 쪽은 '요리'라는 실체를 언어로 나타낸 것이고, 다른 한 쪽은 '요리 행위를 하는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두 단어는 형식상 같은 '요리'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했으나 그 뜻은 다름을 알 수 있다. UX와 UX디자이너도 마찬가지다. UX가 프로덕트를 사용하는 사람의 총체적인 경험을 뜻한다면 UX디자이너란 그 경험을 만드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요리에는 일단 음식을 만드는 행위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더욱 혼란스럽다. 사용자 경험을 만드는 사람은 UX디자이너 혼자가 아니다. 개발자는 물론이거니와 PO,PM,리서쳐,기획자,UI디자이너, 심지어 마케터까지 프로덕트 팀 전체가 어떤 식으로든 그 '경험'을 만들어 내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럼 이들은 모두 UX디자이너인가?
책에서도 명쾌한 답을 찾기 어렵다. UX디자인을 다룬 많은 책에서 UX디자이너란 '사용자의 경험 측면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과연 그 영역이 'UX디자이너' 고유의 영역인가? 몇 가지 소위 'UX방법론'을 경험한 사람이면 누구나 해 낼 수 있는 일은 아닐까? (개인의 역량 편차에 의한, 즉 예리한 눈으로 엄청난 인사이트를 뽑아 내는 우리 주위의 특별한 UX디자이너는 논외로 한다. 그런 사람은 뭘 해도 잘 했겠지..)
디지털 경험의 대표격인 UI와 사용자 동선을 설계하는 일이 과연 다른 직군이 흉내낼 수 없는 UX디자이너만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회사에서 UX디자이너란 직군을 따로 고용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UX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업계의 정의도 애매한 UX디자이너를 꿈꿔서는 커리어 지속가능성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다. (제대로 정립해 놓지 못한 '업계 선배'로서 면목이 없다...) 즉, UX디자인은 본인이 갖춘 다양한 역량 중 하나로 봐야하며, 리서치 또는 UI디자인 역량 중 하나를 택하여 전문성을 키우는게 우선이다. UX라는 단어를 꺼낼 때는 사용자 중심 디자인 방법론이 필요할 때 적절하게 선택/실행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아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UX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하고자 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UX 커리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회사인지 아래 내용을 체크해보기 바란다.
개별 프로덕트가 명확한 퍼소나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1번을 위해 퍼소나를 지속적으로 검증, 업데이트하는 활동이 일어나는지 확인해보자.
사람들이 회의시간에 추상적인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대신 '우리 퍼소나는~' 으로 이야기 하는지 확인해보자. (보통 1,2번이 안되면 이런 식의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난다.)
비즈니스와 사용자의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떤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제품 개발-릴리즈 주기에 사용자 검증과 퍼소나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살펴보자.
(희귀하지만 있다! 찾아보자!)
UX에는 돈이 든다. 게다가 '사용자 중심 제품개발 방법론'만이 실버불릿도 아니다. 굳이 이 방법을 택하지 않더라도 제품이 성공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로 많다. (카카오톡은 사용자 중심으로 개발된 프로덕트였을까?)
그러니까, UX 디자이너 하지마라.
다른 역량을 기반으로 사용자 중심 제품개발 방법론도 갖춘 기획자,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여러분의 커리어를 위해 더 도움이 되는 길이다.
사실 후배들을 위하는 척 값 싼 글을 끄적여봤지만,
이건 업계의 나와 같은 UX디자이너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여러분의 직업.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