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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형 Jul 28. 2019

UX 디자이너라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워질 때.

내가 하는 일을 스스로 신뢰 하는가

내가 애자일팀에서 디자이너로서 일 할 때.

같은 팀 개발자들 사이에서 TDD(테스트주도개발방법론)에 대한 논쟁을 한 적 있다. 실제 제품에 들어갈 몇 줄의 코드를 위해 몇 배 이상의 테스트 코드를 만드는 것이 과연 효율을 추구하는 애자일팀에 어울리는 개발 방법론인지 아닌지.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우리는 언제 바뀔지 모르는 사용자의 요구사항에 대비하기 위해 + 항상 동작하는 코드라는 애자일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스트 코드를 작성한다고.


실제로 스프린트 단위로 변경이 일어나는 당시의 프로세스에서 테스트 커버리지는 지속적 통합(Continous Integration)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소였고, 덕분에 우리 디자이너들은 마음껏 이전 디자인을 변경할 수 있었다. 물론 사용자 검증을 통한 데이터에 의거하여.


또 이 개발자들은 나만큼 자기 제품의 사용자에 대해 궁금해했다. 자기가 만든 기능이 사용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 뿌듯해했고, 반대의 경우에는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디자이너와 함께 치열하게 토론했다. 그런 탓에 단 한 명의 사용자를 만날지라도 리서치 설계를 허투루 할 수 없었다. 피곤하리만큼 집요한 질문을 대답하느라 진땀을 뺐을 테니.




모종의 이유로 몇몇은 남고 몇몇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 

오랜만에 그들을 사석에서 만났다. 어떻게 지냈냐고, 그때처럼 그 방식 그대로 30줄의 코드를 위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200줄의 테스트 코드를 짜고 있냐고 물어봤다. 그 당시의 나는 회사와 서비스 도메인이 달라졌다는 이유핑계로 이전처럼 활발하게 사용자를 만나고 있지 못해 조금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던 터다.


대답은 당연하단다. 항상 테스트 커버리지를 90%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팀원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고집스럽게 본인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한다.


자기가 이것이 옳다고 믿는 방법이기에.


충격.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UX 디자인 방법론을 스스로 옳다고 믿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됐다. 당연히 이 정도는 사용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도 괜찮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몇 번의 디자인을 그대로 내보냈던 게 떠올랐다. 심지어 퍼소나도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한 프로젝트도 있었다. 아무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비겁한 핑계와 함께. 과연 나는 여전히 UX 디자인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UI와 UI 디자인이 가리키는 개념이 다른 것처럼, UX와 UX 디자인은 다르다.

사용자 경험은 디자이너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유용한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기획자도, 미려한 UI를 만들어내는 GUI 디자이너도, 효율적인 쿼리를 짜서 시스템 속도를 높이는 백엔드 개발자도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사용자 경험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UX 디자이너의 가치는 무엇으로부터 오는 걸까.


그래서 다시 리서치다.

UX 디자이너는 다양한 제품 개발 방법론* 중에서 UX 방법론으로 디자인하는 사람. 따라서 그 역량은 철저한 사용자 검증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퍼소나를 업데이트하여 킥오프부터 런칭까지 살아있게 만들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며, 제품 구석구석에 리서치 결과를 녹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 'UX 디자인 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모든 기업과 제품에 UX 디자인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음을 밝혀둔다. 소심소심

**이 과정을 효율화하기 위해 UX 디자이너는 (다시 읽어보니 손발이 오그라들고 발행 취소해야 할 것만 같은) 이전 글에서 밝힌 것과 같이 양적/질적 리서치부터 UI 설계와 디자인, 그리고 프로토타이핑까지 본인 역량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나는 채용공고에 UX/UI 디자이너를 퉁쳐서 뽑는데 리서치 역량에 대한 언급이 없는 회사에는 거부감이 있는 편이다.


마치며

대학원 시절부터 그동안 꽤 많은 리서치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돌이켜보면, 리서치는 꽤 고된 작업이다. 문항 하나하나를 고심하며 만들어야 하고, 참여자들과 일일이 스케줄을 맞춰야 하고, (꼭 당일 취소하는 사람들 있다. 깊은 빡침.) 막상 어렵게 부른 사람이 스크리닝을 통과한 아웃라이어일 때의 허탈함, 수많은 리서치 결과를 보며 언제 정리하지 싶은 막막함 등... 늘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게 그동안 리서치에 대한 기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증 과정에서 "이거 좋은데요?", "제가 생각하던 게 이거에요."와 같은 말을 들었을 때 느끼는 쾌감은 지리하고 고된 디자인 과정의 피로감을 싹 날려주는 효과가 있다. 정말 큰 위로가 된다.


다음 주에는 조금 일정을 미루더라도 사용자 리서치를 해 보자고 말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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