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만 쉬는 기타.

by 승민

대학교 3학년 시절. 우연히 ‘태양의 노래’라는 영화를 보았다. 색소성 건피증이라는 병으로 태양을 보지 못하는 소녀와 서핑을 즐기는 소년의 로맨스. 소녀는 소년에게 기타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 바닥에 앉아 초에 불을 붙이고 조용히 노래를 시작한다. 'Good-bye Days'. 바로 이 노래에 빠져 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마침 같이 학교를 다니고 있던 동기 형이 부천에 음악교습소를 운영하고 있어 그곳을 자주 드나들며 코드와 스트로크를 익혔다.


그렇게 한참을 기타에 푹 빠져 있을 때쯤 난 또 다른 한 편의 영화와 만났다. ‘Once'. 영화 속 악기를 파는 가게 안에서 남자 주인공은 기타를 연주하고 여자 주인공은 피아노를 치며 함께 노래하는 ’Falling Slowly'는 그야말로 내가 기타를 쳐야만 하는 이유에 방점을 찍었다. 그 당시 기타를 친다는 사람들은 모두 이 노래를 연주할 줄 알았고 기타를 못 치는 사람들도 배워서 사랑 고백을 할 정도로 이 곡은 큰 인기를 얻었었다.


그렇게 한동안 그 곡에 빠져 기타를 들고 다녔으며 자작곡으로 4곡 정도가 만들어졌을 때쯤 길거리 공연을 결심했고 실행에 옮겼다. 서툴기에 실수도 많았지만 공연은 끝까지 이어졌으며, 이 공연을 끝으로 나의 기타 인생은 뜻하지 않게 멀어져 갔다. 그동안 기타를 치며 배겼던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왼손 네 손가락의 굳은살은 그렇게 떨어져 나갔으며 기타는 기약 없이 휴면 상태에 돌입했다.


한때 무한한 애정을 주었던 나의 기타.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 방안 가장 구석에 방치되어 수북하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조용히 숨만 쉬고 있는 듯하다. 한때의 영광을 뒤로한 퇴역군인처럼 쓸쓸히 등을 벽에 기댄 채 주변의 변화에 관심도 없고 누가 날 찾아줄까라는 희망 또한 버린 듯 그렇게 조용히 숨만 쉬고 있다.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듯.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처럼.


그러던 올해 초 새로운 결심이 생겼다. 아무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무얼 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기타를 다시금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시커멓게 녹슨 기타 줄을 새롭게 갈았고 곁에 있으면 자주 만지겠다는 생각에 주로 앉아있는 의자 옆에 두었을 뿐만 아니라 교제도 서점에서 새로이 사와 그렇게 열심히 기타를 연습하고 있던 찰나. 어느 순간 유일하게 남은 피크 하나가 도망치고 말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피크는 도무지 보이지 않고 그 계기로 기타는 또다시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숨만 쉬고 있다. 빛나는 황금 옷을 입고.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었다는 시선으로 코로 숨을 뿜으며 나를 바라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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