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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초롱꽃 04화

종달새 소리

초롱꽃 1

by 민들레


학교에서 돌아오는 송이는 잰걸음으로 걸었다. 집에 혼자 있을 엄마가 생각났다. 텃밭 귀퉁이 밤나무 아래에서 엄마는 늘 송이를 기다렸다. 큰길에서 모롱이를 돌아 저만큼의 엄마 모습을 미처 발견하기도 전에 엄마는 벌써 송이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송이 엄마는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송이가 아직 밭언덕을 돌아가기 전, 큰길을 조그만 모습으로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을 때부터 송이의 발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송이가 학교에서 돌아온 뒤에도 엄마는 거의 마을 앞길이 내다보이는 밤나무 아래에 오롯이 앉아있었다.


밤나무 근처 밭고랑 옆에 몇 그루의 해바라기도 해마다 자랐다. 아직은 엄마 키보다 작았지만 해바라기는 금세 훌쩍 자라서 구름을 이고 서 있게 될 것이다. 비가 내린 다음 하늘이 거울처럼 맑은 날이면 엄마는 손을 뻗어 해바라기꽃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노란 해바라기꽃 빛깔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구나.

송이는 대답했다.


-내가 크레파스로 그린 해바라기보다 더 노랗고 예뻐.


송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송이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면 할머니는 칭찬인지 꾸지람인지 모를 소리를 했다.


-씨도둑은 못한다더니 콩알만 한 것이 제법일세. 제법이나마나 그깐 그림 잘 그려서 뭐에 쓰겠냐. 환쟁이밖에 더 되겠냐.


송이네 집은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집 뒤로는 솔밭이었고 왼쪽은 아카시아 숲이었다. 텃밭 옆 빈터에는 해마다 온갖 잡초가 송이의 키와 맞먹었다. 사람 손길이 가지 않아 마음 놓고 자란 잡초들은 햇볕 영그는 가을이면 제 나름의 꽃을 피우기에 열심이었다. 그 잡초들 속에서 함초롬히 피는 초롱꽃은 저 혼자서 더 예뻤다. 읍내에서 조그만 건어물가게를 내고 있는 할머니는 송이네 세 식구가 먹을 만큼의 텃밭을 가꾸는 대에도 시간이 딸렸다.


송이는 엄마의 하모니카소리가 듣고 싶었다. 최근 들어 엄마는 하모니카를 불지 않았다. 요즘 부쩍 짜증이 많아진 할머니 때문인지 몰랐다. 하모니카 소리가 끊긴 송이네 집은 더 적막했다.

송이는 올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엄마는 송이만큼이나 좋아했다. 할머니는 그날도 기회라는 듯 또 아빠를 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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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세상을 꿈꿉니다. 명상과 글쓰기가 업이자 취미. 출간 도서<행복을 위하여>가 2013년 문체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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