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몇 글자-
어제 내린 비로 대기는 물처럼 맑고 투명하다. 푸른 공원의 맑은 공기로 내 머릿속이 깨끗이 비워졌다. 바람이 향기롭다. 막 샤워를 마치고 난 것처럼 가뿐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다. 무리 지어 핀 보랏빛, 노란빛 붓꽃들이 살포시 웃는다. 나도 미소를 짓는다. 또 한줄기 달콤한 바람이 불어와 마음까지 적셔준다. 좋다. 정말 좋다.
참새들이 자주 놀러 오라며 재잘거린다. 새들이 작은 나뭇가지 사이를 오르내리며, 그동안 들려주지 못한 노래를 한꺼번에 불러주겠다는 듯 쉬지 않고 재잘거린다. 새들의 열정적인 합창에 푸른 나뭇잎들이 저절로 춤을 춘다. 좋다. 정말 좋다.
내 머리는 완전히 텅 비워졌다. 대신 깨끗한 하늘처럼 맑음으로 가득 찼다. 생각도 비워졌다. 느낌만 충만하다. 행복이다. 환희다. 행복만이 존재한다. 지금 여기에서!
‘나’는 본다. 느낀다. 걷는다. 멈춘다. 이 완전함, ···좋다.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이 정말 좋다.
저만큼, 투명한 노란빛이 화사하다. 자세히 보니 이우는 햇살이 나무들 사이에서 손짓하는 모습이다. 만개한 때죽나무의 하얀 꽃들이 수줍은 듯 고개를 떨구며 햇살의 미소를 훔친다. 그 예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꽃향기를 탐내는 한 마리의 벌도 함께 담는다. 바람도 담는다. 물방울 같은 바람이 꽃잎 끝에서 대롱거린다.
산책 나온 이웃들의 느긋한 발걸음도 정겹다. 얼마 전까지 화사한 영산홍 꽃들의 향연으로 공원은 들떠있었다. 꽃들의 향연이 끝나고 난 뒤의 신록은 더욱 푸르다. 감미로운 바람과 손을 맞잡으며 향기로운 5월, 늦은 오후를 즐긴다. 측백나무 열매가 이렇게 예쁜 줄 몰랐다. 막 피어나는 푸른 꽃봉오리 같다. 울타리진 장미의 싱그러운 넝쿨들은 화사하게 피어날 초여름을 기다린다.
하얀 꽃잎 위로 땅거미가 살며시 내려온다. 햇살이 집으로 돌아간 시간, 나도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다시 사고하고 생각하고, 몸을 먹이고 입히기 위하여. 인지적이며 감각적인 조건들을 또 만들기 위하여. 그러나 그때에도 이때에도 나는 늘 ‘여기’에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