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구름은 머물지 않습니다.
어린 날, 어떤 시간에 파란 하늘바다에 떠있는 하얀 뭉게구름을 오랫동안 쳐다보았습니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테지요. 구름은 토끼 모양에서 강아지 모습으로, 강아지에서 할아버지 얼굴로 서서히 형태를 바꾸었습니다. 나는 구름에서 눈을 떼지 않았지만 형태가 바뀌기 전엔 구름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순간 구름 얼굴이 할아버지에서 고양이 얼굴로, 혹은 커다란 곰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구름을 닮았습니다. 꽃 같은 청춘도 초 단위로 흘러갑니다. 0.1초의 머무름도 없습니다.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죠. 구름의 형태가 달라진 뒤에야 아는 것처럼, 우리의 모습이 변한 다음에야 세월이 흘렀음을 자각하지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착각이라는 무기를 가졌습니다. 인생이 즐겁고 유쾌할 땐 세월을 잊고 삽니다. 또한 지겹고 싫증 나는 삶이 반복된다면 시간이 영원히 정체된 듯해서 화가 납니다. 이럴 때 구름이 머문다는 착각을 하게 되지요. 그러나 지구가 공전하듯 시간의 초침은 쉬지 않고 흐르고 우리 몸을 이루는 100조 개 가까운 세포는 하루에도 수없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므로 삶은 소중합니다. 불행으로 이끄는 온갖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합니다. 나를 괴롭히는 직장상사는 마음속에서 펀치 한번 날리고 툭 털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수십 번은 바꾸고 싶은 배우자는 그에게서 한두 가지의 장점이라도 찾아내어 예뻐해야 합니다. 자식 또한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지요. 그럴수록 나 자신과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한 실천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우선되는 것이 나 자신의 행복입니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배우자도 행복합니다. 불행한 아내의 남편이 행복할 리 없고, 행복한 남편의 아내가 불행할 리 없습니다. 부부의 행복은 곧 그 자녀의 행복입니다. 한 가족의 행복은 곧 사회의 행복으로 확대될 테고요.
아니 그걸 누가 몰라? 행복이 무슨 마트에서 아이스크림 사 오듯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사는 데 정신없고 힘겨워 죽겠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행복 타령이람. 이런 원성이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왜 모르겠어요, 당장에라도 내던져버리고 싶게 속이 부글부글 끓는 때가 어디 한두 번인 가요. 다 팽개치고 해외여행이라도 한 달쯤 떠나면 좋겠죠. 아니면 2박 3일 정도의 호캉스라도 다녀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굴뚝같을수록 앞을 가로막는 산더미 일들로 머리만 복잡합니다.
나는 삶이 버겁다고 느낄 때마다 구름을 떠올립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쥐고 있던 욕심과 불안과 고민이 손가락 사이로 흐르듯, 몸과 마음에서 불필요한 힘이 빠져나갑니다. 습관이 된 과도한 긴장에서 놓여납니다. 그리고 깨닫곤 합니다. 머물지 않지만 머문다는 착각이 누적되는, 그 시간들이 사실은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요. 내가 존재하는 소중한 순간들을 혼란이나 괴로움 속에서 흘려보낸다면 얼마나 낭비인가요.
중년도 다 지난 이즈음에 돌아보니, 나의 지나온 세월은 산봉우리에 잠시 머무는 구름 같은 것이었어요.
영국 수상이었던 사람이 임종을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게는 두 가지 소원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수상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닷가에 오두막을 짓고 사는 것이었다. 수상은 되었지만 바닷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보지 못한 것이 원통하다.” 고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아니 생각하기에 따라 시간은 충분합니다. 자기만의 ‘오두막’이 무엇인지 찾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나의 ‘오두막’은 베풀고 감사하고 사랑하고, 순간이 행복임을 알고 만끽하는 것입니다. 머지않아 흩어질 구름이 아직 산허리에 머물고 있는 지금이라는 시간이 정말 귀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지요. 구름이 ‘머무는’ 지금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