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호를 타고 싶어
차창으로 보이는 여름날의 풍경이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산봉우리들과 푸른 나무들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내가 탄 KTX 열차는 산천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며 달리고 있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열차여행이다. 열차가 목적지까지 천천히 오래 가주었으면 좋겠다. 시간 단축을 위해 최대한 빨리 달리는 KTX를 탄 행위와 모순되는 마음이지만 말이다. 요즘이야 열차를 탈 일이 거의 없으나, 예전엔 열차를 탈 때마다 내게 그 시간만큼 여분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차 내에서 읽으려고 책 한 권을 챙기기도 하지만 몇 페이지 읽지 못할 때가 많았다. 차창 밖 풍경이 내 시선을 빼앗기 때문이다. 창밖에 눈을 사로잡을 특별한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보고 있을 뿐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불멍’ ‘물 멍’처럼 ‘창 멍’이라고나 할까. 논에 심어놓은 푸른 벼들이 파란 융단을 깔아놓은 모습으로 ‘창 멍’에 빠져있는 내 시야에 다가왔다 멀어지곤 한다.
아스라한 어느 가을, 그 들판은 황금빛깔이었다. 어떻게 해서 그곳을 가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경기도 부근의 어느 간이역 근처였던 것 같다. 알맞게 익은 곡식들이 수확을 기다리며 넓은 들에 시원스레 펼쳐져 있었다. 목적 없이 그곳에 간 나는 마치 미아 같았다. 당시 그런 기분은 내 안에서 늘 나를 버겁게 하는 감정이었다. 어떤 갈증과 절망으로 내 몸과 마음은 이미 생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가슴속은 모래알이 가득 찬 것처럼 버석거리고 답답했다. 그 답답함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길을 나섰고 어딘지도 모르고 도착했던 곳이 그 들판이었다. 오후 3,4시쯤이었을까. 가을 햇살이 내리쬐었으나 덥진 않았다.
드넓은 벌판에 덩그러니 혼자이던 나는 하릴없이 논둑길을 산책하듯 걸었다. 마침 나무 한 그루가 있던 어느 둑길에 앉아 사위어가는 햇살에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살찐 벼의 알곡을 훔치려는 새떼들을 호령하며 서있던 군데군데의 허수아비들이 무언의 몸짓으로 나의 외로움을 위로해 주었다. 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나무에 앉았던 수십 마리의 참새들이 우르르 날아올랐다가 다시 나무에 내려앉았다. 날아오르는 순간마다 경쾌하게 재잘거리는 참새들의 화음이 신선한 공기처럼 꽉 막힌 내 가슴속의 숨구멍을 잠깐씩 열어주었다. 낯선 내게 친구 해준 참새들이 고마웠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휠체어를 탄 젊은 남자가 내 앞을 지나갔다. 그와 눈이 마주쳤던가. 잘 모르겠다. 그는 어쩌면 나를 조금 전부터 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웬 여자가 대낮에 논둑길을 어슬렁거리는 걸 보고 궁금해서 와본 것일 수도 있었다. 내가 그 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 금방 알아챘을 터이다. 그 황금들녘이 기억의 밑바닥에서 건져 올려질 때면 허수아비와 참새 소리와, 휠체어를 탔던 남자도 함께 떠오른다. 지금은 모두 개발되어 흔적도 사라져 버린 예전의 그 들녘이 여전히 내 기억 깊숙한 곳에 머물다가 이따금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 무렵의 암담함을 얼마쯤 위로해준 장소였기 때문인 것 같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돌아보면 그 당시엔 나를 괴롭혔던 거친 풍랑이던 그것들이 잔물결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어지간한 상처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딱쟁이로 변하기도 한다. 시간이라는 약을 바르지 않더라도, 삶을 기습해오는 파도를 잔물결쯤으로 치부하는 배짱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잔물결엔 노출되어도 상처를 덜 입을 테니까. 물론 어려운 일이다. 문득 영화 <심플 라이프>에 나오는 대사가 떠오른다.
"인생의 달콤한 즐거움은 모두 상처의 결과물이고
인생의 아름다운 것들은 고난에서 얻은 것들이요.
우리는 직접 고난을 겪으며 남을 위하는 법을 배우죠."
달콤한 결과물과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많은 이들이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들 앞에 무엇이 올지라도 평정심과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단단한 마음과 긍정적 사고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잊힌 줄 알았던 젊은 날의 기억 속에 빠져들다가 '남을 위하는 법'을 잠시 생각하는 동안, KTX 열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읽으려고 가져온 책은 역시 한두 장 펼쳐본 게 다였다. 다음에 또 열차를 탈 기회가 오면 가능한 느리게 가는 무궁화호를 타야겠다. ‘창 멍’, 독서, 그리고 잠깐의 졸음까지 곁들일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