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동심
내 손이 멋진 예술작품으로 탈바꿈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를 위해 만들어진 팔지와 반지로 장식된 내 손은 내 손이 아닌 듯 특별해 보였다. 친구와 함께 안양천변을 걷던 중 보랏빛 토끼풀을 뜯어 팔지와 반지를 만들어 친구가 내게 끼워주었다. 나는 친구의 모자에 풀꽃을 꽃아 주었다. 어린 시절 풀밭에서 뛰놀며 꽃반지, 꽃목걸이를 만들던 추억을 회상하며 우리는 잠시 동심으로 돌아갔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서 한 말이다. ‘동심을 잊지 않은 어른은 별로 없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른으로 살아가려면 동심을 보존하기란 차려진 밥상을 두고 배고픔을 참는 일만큼이나 어려울지 모르겠다.
동심, 어린아이 마음, 어감만으로도 참 예쁜 단어다. 동심을 상상하면 나는 먼지 한 톨 없는 맑은 물이 연상된다. 인간의 모든 내적 사고나 감정의 얽힘 같은 것들은 먼지 알갱이들이다. 알갱이들이 크고 거칠어지면 맑은 물의 기능은 상실된다.
아이가 자라 청년의 시기를 지나서 어른으로 살아가는 동안 자기를 보호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가하지 않으려면 순수한 동심만으로는 살아내기 어렵다. 맑고 투명했던 물이 어느새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 거칠어진 상태라는 사실도 잊은 채 앞을 향해 전진한다. 그러나 온 힘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으며, ‘잡동사니’들이 사실은 필수 불가결한 삶의 요소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그러기에 맑음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비난할 수 없다. 오히려 처절하게 건너온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삶의 한가운데서, 문득 깊숙이 넣어둔 어린 날의 일기장 한 페이지를 펼치듯 잊었던 동심을 길어 올리면 어떨까. 뻑뻑하고 막막한 생활에 숨구멍을 틔워 주듯이 말이다. 작은 꽃 한 송이에 감탄하며 오래 들여다보거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린 왕자의 별은 어디쯤에 있을까 무심히 헤아려보는 빈 마음의 시간 같은 것. 물론 이때 지적 사고나 합리적 해석 따위는 던져버려야 한다. 맑은 물은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까닭이다.
나와 친구는 인생의 중요하고 무거운 주제들은 이미 지나온 나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도 성장하여 떠났고 일을 향한 나의 열정도 내려놓았다. 무엇을 향해 달리는 줄도 명확하지 않은 채, 꽉 짜인 스케줄에 쫓기며 허겁지겁 숨 가빴던 시기는 지나갔다. 이젠 멈추어서 깊고 멀리 보는 시간을 가질 때가 되었다. 그러므로 다시 어린아이 마음으로 돌아가는 일이 조금은 쉬울 듯도 하다.
지나버린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유일한 오늘이다. 둘이 함께여서 자연이 더 풍요롭게 느껴진다고 친구는 말했다. 우리는 황금빛 금계국 꽃밭에서 소녀 같은 표정을 흉내 내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으로만 기억될 이 순간을 위해서. 장미꽃이 만발한 안양천변 화원에서는 마음껏 꽃향기를 즐겼다. 삶이 녹녹지 않을수록, 나이가 들수록 내면에서 잠자는 동심을 깨워보자. 어쩌면 나는 앞으로 아이 어른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