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껴안아 드릴까요?"
이것은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에서 주인공격인 메리가 처음 만난 로니에게 한 말이다. 로니는 부인을 잃은 후 잠시 동생인 톰의 집에 와있었다. 메리는 톰 부부를 만나기 위해 방문했다가 혼자 집에 있던 로니와 마주친 것이다.
결혼에 실패하고 홀로 살고 있는 메리는 외롭고 우울하고 고독하다. 삶의 좌절에서 오는 불안에서인지 그녀의 행동은 자주 산만하고 정신이 없다. 위로가 되어줄 톰 부부 대신 낯선 남자와 맞닥뜨린 메리는 당황하여 안절부절못하는 태도를 보인다. 자신의 내적 불안과 긴장으로 몸을 미세하게 떨며 어쩔 줄 몰라하던 메리가 로니를 향해 불쑥 말한 것이다. "껴안아 드릴까요?"
하지만 메리의 마음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저를 좀 안아주시겠어요? 너무 춥고 두렵고 고통스러워요." 그녀는 자기의 마음을 로니에게 투영했고 자기의 바람을 로니의 바람으로 표현했다. 로니는 메리를 향해 정신 나간 여자라는 비난은 당연히 하지 않는다. 대꾸 없이 메리를 볼뿐이다. 그 역시 이미 아픔을 경험한 사람이었기에, 메리의 고통을 직감적으로 알아챈 듯하다.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의 감정은 교감되었다. 두 사람 모두 누군가의 따뜻한 포옹이 지금 이 순간 절실히 그립다는 사실을. 불행의 나락에서 헤매고 있을 땐 실낱같은 온기라도 붙잡고 싶어 진다. 그 대상이 누구인가를 생각할 여지가 없다.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그 시간들을 어찌 일일이 열거할 수 있으랴. 한 가지 기억만 적어야겠다. 내 몸뚱이가 흔적 없이 사라졌으면 싶을 때가 있었다. 아니 지나는 사람 아무나 붙들고 펑펑 울고 싶었다. 그가 누구이건 잠시라도 허락한다면 그의 어깨에 기대어 통곡을 토해내고 싶었다.
그런 날들이 지나갔다. 영화 속의 메리처럼, 또는 그 시절의 나처럼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있을 또 한 사람이 있다. 몇 달째 연락을 끊고 있던 그녀를 찾아갔다. 매우 수척해진 그녀는 티슈로 눈가를 몇 번 훔쳤지만 덤덤한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잠깐이었지만 그녀의 눈물을 보긴 처음이었다. 그녀는 늘 씩씩하고 에너지 넘치고 활기찼었다. 그녀는 소규모의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이다.
거친 세상에 온몸을 던진 채 밤잠을 쪼개가며 치열하게 살면서도 힘들다고 말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한숨 흘리듯 말했다. "차에서 혼자 엄청 울었어" 그녀가 자신의 사연을 구구절절 열거하지 않아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마음 상태가 지금 어떠하다는 것을. 삶에 대한 회의와 무력감으로 그녀의 얼굴이 도색되어 있었다. 그녀는 어이없게 작아져버린 자신을 감당하기가 너무나 고통스러운 듯했다.
그녀는 버팀목이 되어주던 어머니를 얼마 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업적 타격도 막대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거기까지다. 그녀는 허탈하게 말했다. "잘못 살아온 것 같다. 사람에 지쳤다." 누구든 앞만 보고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주저앉을 때가 있다. 그녀의 상태가 그랬다. 그녀의 충격은 인간관계와 관련되어있었다. 모친을 잃은 데다,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입은 좌절과 상처들이 겹치고 덧나면서, 그동안 팽팽히 당기고 있던 안간힘의 끈을 놓쳐버린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강한 척 자신을 몰아붙이곤 했지만 참아왔던 두려움과 억울함, 서러움이 봇물 터지듯 그녀를 덮친 것 같았다.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그녀는 힘없이 말했다. 사람이 싫다고 했다. 당분간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내 경험상 절망의 밑바닥에 닿아있을 땐 누구의 어떤 말도 위안이 되질 않는다. 진정 어린 위로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말을 나는 가슴으로 공감했다. 그녀, 혹은 그가 바닥에서 몸을 일으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조용히 기다려주는 것 또한 주변 사람들이 할 일이다. ‘견딤의 시간’을 뚫고 나와야 하는 것은 오직 자신밖에 할 수 없다. 아기가 스스로의 힘으로 산도를 통과해서 나와야 하듯이 말이다. 다만 너무 오래 어두운 밑바닥에 자신을 팽개쳐 두지 말기를. 스스로를 다독이며 용기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삶이란 대체로 누구에게나 견뎌야 할 과제와 시간을 던져준다. 그러므로 삶은 잔인해 보인다. 다행인 것은 우리들은 또한 견딤의 시간을 통과하고 밝은 햇살과 마주할 능력과 인내력을 장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걸 믿는다. 어둠의 고통을 경험한 사람은 한 줌의 햇살이라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안다. 어쩌면 가느다란 빛이 머지않은 곳으로부터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활과 직결된 최소한의 소통을 제외하고는 세상과의 단절을 택함으로써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의 친구인 그녀와, 영화 엔딩 장면에서 외로움과 소외, 슬픔 등의 복잡 미묘한 표정을 드러내던 메리에게도 머지않아 세상은 살만하다면서 밝게 웃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기대한다. 그들의 ‘견딤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