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쌓인 가을 길을 걷는다. 내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밑에 누운 낙엽들이 소리를 낸다. 누군가 물었다.
“ 낙엽 밟는 소리가 어떻게 들려요?”
“ 일반적으로 ‘바스락’이라고 하지 않나요?”
내가 대답하자 그는 반문했다.
“ 그런데 정말 바스락으로 들릴까요?”
낙엽 밟는 소리가 실제로 ‘바스락’으로 들리는가?
나는 낙엽을 밟으며 새삼스레 귀 기울여봤다.
사각사각, 사락사락, 삭삭....... 에 가까웠다. 소리를 어떻게 표현하든 무슨 상관이랴. 자연의 오묘함을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로 다 담으려 하는 것은 무리이며 오만이다.
이 가을이 가기 전, 나는 깊고 내밀한 가을과 만나기 위해 가을 숲으로 왔다. 가을 나무들은 이미 덜어낼 것들을 내려놓아 한결 가벼워졌다. 숲은 낙엽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나무들이 수북한 낙엽을 뚫고 올라와 쑥쑥 자란 것처럼 보였다.
나란한 두 개의 벤치 위에 낙엽이 한가득 쌓여있다. 지금의 이 벤치는 오가는 사람의 잠시 쉬는 장소가 아닌 그냥 한 폭의 그림으로 보존되었으면 싶다. 그러므로 누군가 이 벤치 위의 가랑잎을 쓸어내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한 곳에 이른 나는 걸음을 떼지 못한다. 허리를 굽히고서 한참을 내려다본다. 떨어진 잎사귀들이 이토록 매혹적이라는 데에 감동한다. 곱디고운 단풍잎들로 엮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카펫이 펼쳐져 있다. 내게 이토록 고급스러운 카펫이 생긴다면 사용하지 못하고 곱게 모셔두기만 할 것 같다.
나는 모든 꽃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꽃은 ‘가을꽃’인 단풍이다. 마음을 더 잡아끄는 것은 소슬한 바람에 몸을 뒤채며 할 말을 참는 듯하는 낙엽들이다. 봄에 피는 화려한 꽃들에 사람들은 이목을 집중하면서 밝고 들뜬 기분을 경험한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시든 꽃잎을 보며 감격해하는 사람은 별로 못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에 의지하여 한 해를 살다가 때가 되어 작별하고 땅 위로 내려온 나뭇잎들은 어찌하여 마음을 파고드는 것인지. 잎의 형태가 온전하고 빛깔이 매혹적일수록 애잔한 감상을 더 자극한다. 나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이끌리듯 붉은 잎 하나를 집어 손바닥에 올려놓고 바라본다. 커다란 눈물 한 방울. 얼마나 아팠으면 이토록 처연한 눈물로 피어났을까. 아니 얼마나 벅찬 환희를 지나왔을까. 핏빛 단풍을 마주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열정을 토하는 것 같아 기특하고도 안쓰럽다.
소슬한 바람이 나무들 몸을 휘 훑고 지나간다. 순간 나뭇잎들이 꽃잎처럼 흩날린다. 흩날리는 낙엽들은 몸을 주체하지 못하며 방황한다. 나는 그 이파리들 중에 하나가 된 것 같다. 그저 텅 빈 마음으로 바람이 데려가는 대로 따라간다.
또 다른 ‘낙엽 동산’을 만났다. 나무 아래 둔덕을 이룬 듯 두텁게 쌓인 낙엽들의 침묵을 마주한 순간, 숨을 한번 깊이 몰아쉬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른 까닭이다. 빈틈없이 포개어진 수많은 잎사귀들은 마지막 돌아갈 곳이 바로 여기라는 듯 고요하고 평화롭다. 어떤 숭고미 같은 것이 켜켜이 쌓여있는 듯하다. 한편으로, 쓸쓸한 연민과 애잔한 감상이 가슴에 번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푹신한 ‘낙엽 동산’에 잠시 앉아본다. 또 한 차례의 가벼운 바람에 나뭇잎들이 저항 없이 떨어진다. 그렇게 불어주는 바람이 좋다. 낙엽 향기 짙게 배인 바람 냄새, 바람을 타고 정처 없이 가는 가을 나뭇잎, 나의 친구들. 나의 내면과 깊이 소통하고 공감하며 위안이 돼주는 아프고도 감미로운 가을,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