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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과 가슴속에 오고 가는 말

아버지의 노래 1

by 민들레

순옥아 네 마음을 내가 모르랴

차라리 모르는 게 행복이구나.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에서 아버지의 청량한 목소리가 흘렀다. 나는 아버지가 부르는 제목도 모르는 노래를 듣고 있었다. 아버지....... 이 단어를 써 놓고서 2개월이 지나도록 뒤이은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늘 가슴에 찌르는 듯한 통증 같은 것이 번졌다.


‘순옥아...’는 아버지가 생전에 녹음해둔 테이프에 저장된 몇 곡의 노래 중 한곡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수년이 흘렀지만 이 테이프를 며칠 전에야 발견했다. 그동안 시골에 홀로 계시던 어머니를 자식들이 살고있는 서울로 모셔오려고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것이다.


테이프 안에 아버지의 노래가가 담겨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테이프를 틀고 아버지의 목소리를 확인한 우리는 깜짝 놀랐다. 감동으로 한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흘러간 노래를 가수처럼 맛갈지게 부르는 아버지의 노래를 묵묵히 듣고 있던 동생과 내가 말했다.

“아버지가 가수를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가수가 되지 못한 아쉬움 이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 당신 살아생전의 못다 한 사연이기라도 한 듯이 아버지는 노래를 불렀다.


가슴과 가슴속에 오고 가는 말

그것은 행복보다 더 높은 행복


이 노랫말은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아버지의 마음 깊은 곳에 수 천, 수만의 이야기들이 존재했지만, 단 10개의 이야기도 세상을 항해 꺼내지 못한 채 살아온 분으로 나는 아버지를 기억한다. 10곡 가까이 저장된 노래 가운데 이 노래가 유독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노래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니 1942년에 태성호라는 가수가 부른 < 사랑>이라는 제목의 노래였다. 짧은 가사에 리듬이 쉬워서 나는 노래를 금새 익혔고, 조용할 때면 혼자 부르곤 했다. 부르다 보면 아버지가 생각났다.


내 나이 40 초반쯤이었던가. 어느 가을 오후, 햇살 고인 마당에 늙으신 아버지가 의자에 앉아계셨다. 친정에 왔다 돌아가는 내게 당부하셨다.

“ 잘 살아야 한다.”

아버지는 내 결혼생활이 매우 걱정스러우셨던 것 같다. 나는 그때 얼마나 철이 없었던지 이렇게 대꾸했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살아계실 동안은 이혼 안 해요.”


그 말은 ‘결혼생활이 힘들지만 아버지 살아계시는 동안은 참고 살게요’라는 뜻이었다. 내 말에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지만 그날 아버지의 표정과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가슴에 날카로운 못 하나를 더 박아드린 셈이었다. 아버지는 얼마나 안타깝고 마음 아프셨을까. 나이를 10년쯤 더 먹은 후에 나는 그때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겨우 헤아려졌다. 철없던 딸은 너무 늦어버린 다음에야 눈물을 삼키며 아버지의 노래를 불렀다.


순옥아 네 마음을 내가 모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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