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철학자

지하철에서 3

by 민들레

코로나19가 오기 전, 그를 종각 지하철역 3번 출구 쪽에서 오전이면 볼 수 있었다. 오후엔 다른 곳으로 가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처음 볼 때부터 줄곳 검정과 빨간색의 두꺼운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한 여름이었는데도 여전히 같은 차림인 그는 40대 전후의 나이 같았다. 긴 머리카락에 큰 키와 비쩍 마른 얼굴의 그는 언제나 통로 벽에 비스듬히 기대고서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졸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마치 사색에 잠긴 듯도 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거나 지나는 사람을 쳐다보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보았다.


역사 내에 설치된 수돗물로 세수를 하는지 얼굴은 매번 깔끔했다. 긴 다리를 벽 쪽을 향해 뻗고 있거나 양반다리를 한 때가 많았다. 어떻게 배를 채우는지 궁금했는데 오가는 사람들이 김밥이며 빵 등을 사주어 허기는 면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그를 유심히 보게 된 것은 일주일에 세 번 종각역 근처에 나갔는데 그때마다 그를 본 어느 날부터였다. 잠에 취한 것 같지도 않은데, 눈 뜬 모습을 보지 못했고 더구나 구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표정에는 비굴함이나 슬픔, 불행 같은 감정도 없어 보였다. 다만 무심‘함이 묻어있었다고 할까. 절망과 자포자기와는 살짝 다른 것이었다.


아무튼 그가 어떤 까닭으로 그곳까지 밀려오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알 도리는 없었다. 늘 뭔가 골돌 한 생각에 빠진 듯한 그에게 나는 철학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물론 부를 일이야 없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는 모든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한때는 꿈에 부푼 열정과 의욕으로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을지 모른다. 무언가를 성취하겠다는 희망으로 마음이 뜨거웠으리라. 그러나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깨지면서 점차 무기력에 빠진 것일까. 두꺼운 콘크리트 벽과 긴 시간 대항하다 보면 정신적 에너지가 소진되게 마련이다.


그럴 때 무너지지 않을 어떤 방법이 없을까. 한 때는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남편이었고 아빠였을 그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했을까. 어쩌면 정말 진지한 철학도였을지도 모를 그를 어떤 논리로 다시 '삶' 속으로 데려올 수 있었을까.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어려움 등등, 더욱 위기에 처해있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때의 '지하철 철학자'를 떠올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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