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혼 당할 할아버지

지하철에서 4

by 민들레

2,3년 전 낯 시간의 1호선 전철 안이었다. 서 있는 승객은 많지 않았고 양편 좌석엔 주로 어르신들이 앉아있었다. 그때 비옷을 팔던 중년 남자가 물건이 담긴 상자를 끌며 불만 투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늙으면 죽어야 한단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녀~ 늙으면 빨리 죽어야 한다니께!”


상인이 승객들에게 비옷을 홍보하는데 근처에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비난하며 잔소리를 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쳐다봤고 남자는 투덜거리며 다음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30초 정도 지났다.

“ 예수를 안 믿으면 불신지옥! 예수를 안 믿으면 불신지옥!”

위아래 검은 복장에 병색이 완연한 초로의 여자가 반대편 칸에서 건너와 외쳤다. 그러자 경로석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큰소리로

“시끄러!” 했고, 조금 전의 비옷 상인을 타박하던 할아버지는

“시끄러 죽겠어! 너나 지옥 가!” 라며 호통을 쳤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승객들이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초로의 여자는 꿋꿋했다.

“ 예수를 안 믿으면 불신지옥··· ”

반복하면서 건너 칸으로 이동했다. 그러고서 또 30초가 넘지 않았다. 마치 다음 차례는 자기라는 듯이 가방을 든 청년 한 사람이 뭔가를 팔기 위해 나타났다. 그 남자가 팔려는 물건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가 물건을 펼치기도 전에 앞서의 할아버지와 시비가 붙은 것 같았다. 나는 몇 발작 떨어진 거리에 있어서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듣지 못했다. 청년이 억울하다는 듯 대들었다.

“ 안 한다고요, 안 해요. 안 할 거라고요.!”

두 사람이 옥신각신 하는 사이 승객들이 드디어 참고 있던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첫 번째 남자로부터 시작된 시추에이션이 영락없는 코미디극이나 각본에 짜인 무슨 연극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도 그랬다.


할아버지 등쌀에 밀린 청년은 물건을 꺼내보지도 못하고 열차가 정류장에서 멈추자 가방을 들고 내렸다. 아마 그날 장사는 글렀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그들이 사라진 후에도 사람들의 웃음은 좀 더 이어졌다. 나를 포함한 승객들은 관객의 입장이 되어 한바탕 웃었지만, 사실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불신지옥을 외쳤던 초로의 여자를 뺀 두 남자는 성깔 사나운 할아버지에 못 이겨 쫓겨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하루 일당이나마 벌어보려고 변변치 않은 물건을 가져왔던 것이겠지. 그 짧은 시간을 참아주지 못하는 유별난 노인이 누구에게든 좋게 보일 리 없었다. 내 옆좌석에 나이 지긋한 남자분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불쌍한 사람들이 물건 좀 팔아보겠다는데···, 저런 영감은 집에서도 똑같애. 그러니까 황혼이혼이 많은 거야.” 나는 조용히 킥킥 웃었지만, 웃음 뒤끝은 씁쓸했었다. 내 마음도 그분의 마음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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