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깊숙이 들어있는 지갑 속에서 낡은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백발의 아버지와 쪽진 머리에 옥색 한복을 차려 입고 60대 초반에 희방사 폭포 앞에서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이다. 서랍 속에 꽁꽁 숨겨두시고 수시로 꺼내보신다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말씀이 덤으로 얹혔다. 아흔아홉의 엄마가 가장 기억하고 싶은 순간인가 보다.
학교 2학년 때 학교를 마치고 들어서는 집은 골목 어귀부터 굿 소리가 요란했다. ‘둥, 둥, 둥, 챙, 챙, 챙.’ 일곱 계단을 올라 빗장 대문을 들어서는 눈앞에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알록달록 굿 복을 차려입은 무당이었다. 마루 위에서 겅중겅중 뜀을 뛰며 번쩍이는 칼날에 방울 소리를 ‘챙그랑’ 거리고 있었다. 큰 올케와 사촌 올케가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아 빌고 구경꾼들이 마당에 늘어서 있었다. 작은 어머니는 축 늘어진 엄마를 쓸어안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두 손을 마주 비볐다. “고만 화 푸시고 새댁 몸에서 나쁜 귀신 좀 데려가 주소!” 힘없이 기대 있는 엄마 얼굴은 희다 못해 푸른빛에 생기라고는 없이 무표정했다. 축 늘어져 마치 산송장 같았다.
한참을 삐걱거리는 마루 위에서 널뛰던 무당이 기진맥진한 듯 쓰러져 울기 시작했다. “나는 가기 싫다, 나는 진짜 가기 싫다, 네가 이렇게 이쁜데 너를 두고 어디 가노 안 간다, 나는 안 간다 왜 나를 자꾸 좇아 보내려고 하노, 나는 절대로 안 간다.”
걸걸한 남자 목소리로 헛기침을 하며 무당이 목 놓아 울었고, 작은 어머니는 무당을 보고 할아버지라며 빌었다. “아뱀요! 새댁 이제 고만 좀 예뻐하소, 이제 새댁 좀 놓아주시고 아뱀은 저승으로 가소, 아뱀은 이제 거기서 살아야 해요!” 손에서 서걱서걱 소리가 날 만큼 작은어머니의 마주 비비는 손놀림은 빨라졌다. 사랑방엔 아버지께서 연신 담배를 피워 물며 초조한 얼굴로 앉아 계셨다.
유방에 커다란 멍울이 생겨 몇 개월 동안 엄마를 모시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니셨지만, 병원에서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며 집에서 맛있는 것 많이 드시게 하라며 사실상 사형선고를 내렸다. 더 이상 의술로도 안 된다고 하니 무당의 힘이라도 빌어 풀어보자는 작은 어머니의 제의에 마지못해 허락을 했다. 하지만 시끄러운 무당의 굿 소리와 낫기는커녕 점점 더 기력을 잃는 엄마의 모습이 아버지의 심기를 많이 불편하게 했다. 나는 아버지 옆에 서 있다가 벽에 스르르 미끄러져 앉으며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아버지 저런 거 꼭 해야 돼요?" 아버지는 아무 대답이 없으셨다. 간간이 담배를 피워 물었고 깊은 숨을 내 쉴 뿐이었다. 밤이 늦도록 굿은 끝나지 않았다. 밤새 할아버지 흉내를 내는 무당은 새벽이 되어도 할아버지 영혼이 엄마에게서 떠나기를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새벽이 되어서야 무당은 지쳐 쓰러졌다. 엄마도 지쳐 물에 젖은 솜처럼 누워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다시 시작한 굿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던 아버지는 더 이상 참지 못해 불같이 화를 내셨다. ‘괜찮아질 테니 기다려 보라’며 작은어머니는 아버지를 달랬다. 그러나 아버지는 무당을 돌려보냈다. 불안해하는 작은어머니를 보고 ‘내가 살릴 테니 걱정 말라’며 나지막하게 타이르셨다.
그날부터였다. 아버지는 포대를 메고 산을 오르셨다. 농사일은 뒤로 하고 날마다 산에 올라 약초를 캐 그늘에 말리셨다. 앞마당 멍석엔 약초들이 점점 늘어났고, 저녁이면 엄마가 누워있는 사랑방에 아버진 걱정스러운 얼굴로 망부석처럼 앉아계시곤 했다. 가지처럼 마른 몸에 힘없이 늘어져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은 낯설었다. 나를 보듬어주던 생기 있고 사랑 많던 엄마가 더 이상 아니었다. 엄마가 돌아가실까 봐 두려움에 떨던 어린 나는 날마다 하나님께 ‘엄마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약초가 어느 정도 모였을 때 아버지는 약초를 마당에 불을 지피고 정성스럽게 달이셨다. 그리고 엄마에게 그 약초 물을 삼시 세 끼 먹여주셨다.
그 덕분이었을까? 어느 날부터 엄마는 차츰 자리를 털고 신기하게 일어나셨다. 얼굴에도 살이 붙고 생기가 돌았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께 간절하게 했던 기도 덕분에 엄마의 병이 나았다’고 생각했고, 작은 어머니는 ‘굿을 해서 본 덕이라며 점쟁이가 참 용하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셨다. 엄마는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일상으로 돌아오셨다.
십여 년 전 90에 가까운 엄마가 혼자 지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근처 요양시설에 모시게 되었다. 시설에 엄마를 모시자 형제들이 번갈아 다녀갔고, 따사로운 봄날 엄마를 만나러 온 큰언니의 이야기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가망 없다는 판정을 받으셨고, 굿에도 바랄 수 없게 되자 어느 날부터 아버지는 농사일을 뒤로하고 산을 오르셨다. 100가지 약초를 캐서 달여 먹으면 무슨 병이든 낫는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험산 산을 오르내리며 약초를 캐다가 씻어 말리셨다. 밤이면 매운 연기 마셔가며 부채질로 정성껏 약초를 달여 엄마를 먹이셨다. 그 약의 효과인지 엄마는 가시 문 앞에서 다시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엄마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지고지순했다. 엄마가 아프기라도 하면 아버지는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 근심 어린 눈으로 밤새 그 곁을 지키셨다. 엄마가 약초 덕으로 나은 것이 아니라도 좋다. 점쟁이의 굿으로도, 나의 기도로도 나으신 것이 아니어도 좋았다.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회복하신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기로 했다. 그렇게 엄마를 살려 놓으시고 아버지는 일흔 살에 뇌졸중으로 먼저 엄마 곁을 떠나시고 말았다.
“엄마 혼자 살기 외롭잖아. 멋진 할아버지 소개해 줄까?” 깔깔 거리며 엄마에게 농담할 때마다 ‘나는 너 아버지밖에 없다.’며 몇 번을 물어도 ‘죽으면 꼭 아버지 곁에 묻어 달라’고 하신다.
수시로 꺼내 보았을 아버지와의 사진, 인생의 늦은 가을 아낌없이 주고 떠난 아버지의 햇빛 같은 사랑은 마지막 꺼져가는 엄마의 삶에 그리움의 불씨를 댕기는 특별한 의미는 아닐까? 엄마의 지갑 속에 보금자리 틀고 앉아 늦은 가을 시들어 가면서도 가장 뜨겁게 내리쬐며 완성을 꿈꾸는 들꽃처럼 이승에서의 못다 한 해로를 먼저 가신 저승에서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보며 윤회가 있다면 다른 생에서 다시 만나 서로의 깃털을 골라주며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두 마리 원앙처럼 재회를 꿈꾸는 엄마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