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by 미소미소



가족



페스탈로치는 “가족들이 서로 맺어져 하나가 되어 있다는 것이 정말 이 세상에 유일한 행복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기쁨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빛나는 기쁨은 가족들의 웃음이다.”라고 했다.

가족 모임이라고는 했지만 누구하나 반가움에 해맑은 웃음을 짓는 사람들은 없었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그 아슬아슬한 기류, 저녁을 먹고 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조카들의 노래를 들으며 손뼉을 치면서도 마음과 몸은 분리되어 있었다. 어울림이 없는 어색한 시간이 흐를 때 큰언니의 눈짓을 시작으로 우리는 하나둘 숙소 밖 평상으로 모여 앉았다.

15년은 되었을까?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수술을 받으셨다. 회복이 빠르긴 했지만 심한 어지러움에 일어서는 것이 힘들었다. 가족 중 아무도 모실 형편이 되지 않았으므로 엄마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시설에 모셔야 한다는 의견이 모여져 모기기전 마지막 가진 가족 모임이었다. 그랬기에 가족 모두의 마음은 무거웠다. 엄마에게 알리지 않은 상태였고 그랬기에 모두들 힘들어 했다.

평소 말씀이 없으시던 백발의 아버지는 오늘 우리들의 결정을 뭐라고 하실까? 아버지는 작은 키와 새처럼 가는 다리에 키보다도 더 큰 지게에 짐을 나르셨다. ‘집에서 키우는 소 수레하나 달아서 짐 실어 나르시라’는 어머니 말씀에 ‘밭갈 기도 힘든 소 어떻게 무거운 짐까지 나르게 하냐! 시며 직접 짐을 져 나르셨다. 어쩌다 술 한 잔 드시는 날이면 8남매 자식들 불러 앉히시곤 그동안 못 하셨던 칭찬 한꺼번에 풀어 놓으시며 쓰다듬고 안아주시던 속정이 깊은 분이셨다. 행여 엄마가 아프기라도 하면 온 밤을 새워 곁을 지키시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이시던 아버지는 오늘 우리들의 선택을 건널 수 없는 강 너머에서 안타까워하시지는 않을까?

이야기를 끝내고 들어오니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느라 신이 났고, 엄마는 그 옆에 앉아 손뼉을 치며 미처 부르지 못한 아이들의 노래 순서를 정해주고 계셨다. 늦게야 우리들을 보시고는 “이실이도 불러라, 장실이도 불러라, 이서방도 부르게” 라시며 우리를 독촉하신다. 한 차례 노래가 끝나갈 때 “엄마도 노래해야지”라며 노래책을 앞으로 내밀었다. “내가? 나는 노래 못해!” 라시며 노래책을 떠미시는 엄마께 제목만이라도 말씀하시라며 졸랐다. “그러면 나는 여기 있는 노래를 못하고 마이크나 다고” 라시며 손을 내미신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니 모양이 처량하다…….” 엄마가 노래를 하신다. 지금까지 우리 가족 중에 누구도 엄마의 노래를 들어 본 사람은 없었다. 항상 “나는 노래 못해”라고 하셨기에 노래를 할 줄 모른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엄마가 노래를 부르신다. 가사도 정확하고 또렷하게, 평행의 음이었지만 가끔 높낮이도 있게. 울컥 명치끝으로 올라오는 벅찬 감동이 입에는 웃음으로, 눈에는 눈물로 대신 이야기 하고 있었다. 엄마의 노래는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들 귀를 통해 가슴깊이 새겨지고 있었다. 아프고도 행복한 시간이 가족 모두의 가슴에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자리매김 하는 순간이었다.

자리가 정리 되어갈 무렵 엄마가 큰언니랑 둘째 오빠를 불러 달라고 하셨다. 얼마 후 우리 7남매는 엄마와 함께 둘러앉았다. “나 때문에 다들 걱정 많이 했제? 너희들 큰 외삼촌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더니 8남매 모두 반듯하고 우애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걸 보니 동생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네’ 라며 늘 부러워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더라. 돌아가신 너희 아버지도 형제간의 우애를 첫째로 꼽으셨고, 먼저 간 너희 큰형도 동생들 우애 있게 지내는 모습이 맏이로써 제일 뿌듯하다고 하더라. 나는 너희들이 모두 하나같이 우애 있게 지내는 모습이 참 좋았고 자랑스러웠다.”

우리는 엄마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훌쩍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 때문에 서로 마음이 흔들리면 어쩌나 걱정 했었다. 너희들이 주고받은 결정 나는 안다. 나는 괜찮다. 너희들 걱정만 안 시키면 된다. 나는 어딜 가도 상관없다. 그러니 내 걱정은 말아라. 다들 이렇게 모여 나를 위로해 줘서 고맙다.” 엄마는 이미 아시고 계셨다. 내 뱃속으로 나은 자식들이 들며 날며 몰래 이야기 한다고 한들 그 속을 모르실수 있을 까? 사실을 미리 아시고 가족 하나하나 불러 노래하게 하시고 마지막으로 생전 처음으로 엄마의 노래가지 들려주신 것이리라. 누군가 말했다. ‘하나님이 집집마다 신을 보낼 수 없어 천사인 어머니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기에 어머니는 모두를 주고도 줄 것이 없어 애타하시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자식들은 모두 자기가 진 짐이 가장 무거운 줄만 알고 누군가 대신 져주길 눈치 보느라 엄마의 마음을 읽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 엄마를 시설에 모시고 집 정리를 하던 우리는 다시 한 번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물을 흘렸다. 4계절 옷 두벌식을 보따리에 싸 넣으시고 그 옆에 하얀 비닐봉지에 일일이 이름표가 붙여진 비빌 봉투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양말 두 켤레, 목캔디 두 개, 초콜릿 그리고 돈 만원‘ 엄마의 선물이었다. 모두 자기 이름이 붙여진 선물을 하나씩 들고 눈물을 흘렸다. 언제나 그랬듯 90여년을 살아온 엄마의 깊은 사랑이었고, 우리는 엄마의 그 깊은 마음 앞에 다시 한 번 가슴을 쓸어안았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니 모양이 처량하다…….’ 셋째 언니가 틀어 놓은 카세트에서 엄마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이전 05화108염주의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