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염주의 기도

by 미소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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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염주의 기도


집안을 까치 뒤짐 했지만 흔적 없이 사라졌던 염주를 발견한 건 베란다 구석 작은 상자 안이었다. 예수교를 기웃거리는 며느리가 걱정되어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물려주셨다. 새벽마다 정갈하게 차려입고 불경을 외며 108개의 염주를 굴려 당신의 업보에 대한 죄사함과 평온한 미래를 소원하셨을 것이다.

스물다섯에 결혼을 했다. 막내이던 남편은 세상 물정이 어두웠고 포실하지 못했다. 수도권에서 시작된 신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시누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혼자 계신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남편의 고집으로 우리는 결혼해 고향을 떠난 지 6개월 만에 부메랑이 되어 어머니 삶 속으로 귀속되었다. 막내인 우리가 어머니를 모신다는 것이 마뜩하지 않았지만 남편의 뜻에 억지춘양으로 황금기와도 같던 그곳 생활을 정리하려니 미련이 꼬리를 물었다. 희망으로 봉긋하던 신혼생활의 꿈은 조금씩 이울어졌다. 상심이 크셨던 어머니에게 곰살 맞은 남편은 든든한 기둥이고 위로였다. 새 며느리 들고 1년도 안 되어 딸을 잃은 어머니는 며느리의 뒤꿈치조차 미우셨나 보다. 나비눈을 뜨며 말끝에 칼날을 달았다. 어머니 앞에서는 숨소리조차 편하게 낼 수가 없었다. 마음이 상하면 입문을 닫아버리는 남편도 사람 사이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침묵이라는 것을 답습시켰다. 아들을 에두르는 어머니를 보며 두 사람 사이에 어울리지 못하고 후미진 삶을 안도는 마음은 조금씩 사위어갔다. 주변에서는 맏이를 두고도 막내 내외를 얹어 사는 시어머니의 처사에 쑥덕거렸다. 처음엔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수긍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만에 뿔이 돋았다. 마음 어귀에 단단하게 빗장을 걸었다. 사랑과 신뢰는 가물어졌고 후회의 질퍽한 진창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즈음 삼신할머니의 점지로 큰 아이가 찾아왔다. 임신은 또 다른 굴레일지도 모른다는 절망과 새로운 시작이라는 희망이 저울질되었다. 어느 날, 얼음 알처럼 키운 막내딸의 임신소식을 듣고 찾아와 사돈의 눈치만 살피다 가신 엄마의 눈물을 보았다. 당신의 몸 밖에서 뛰고 있는 또 하나의 심장에 그늘이 지는데 당신의 심장인들 성할 수 있었을까. 친정엄마의 아린 마음을 엿본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났다. 그 눈물 사이로 임신 소식을 듣고도 도둑눈에 묻으시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의 너울도 함께 일었다. 축하의 말도, 잘 키우자는 말씀도 덮으셨다. 다가갈 수 없는 살천스러움으로 혹시나 하는 기대마저 상실시켰다. 어머니의 행동은 서운함을 우듬지 꼭대기에 매달게 했고 이전보다 더 탄탄한 빗장을 채우게 했다. 누구의 방문도 허락지 않을 비밀번호도 걸었다. 배가 불러 만삭의 며느리와 아침저녁으로 이마받이를 하고도 외면하며 지내던 어느 날 갑자기 자주 가시던 절에 기도를 가신다며 집을 나섰다.

어머니의 부재는 해방이었다. 예쁜 딸아이가 태어났고 친정엄마의 바라지로 삼칠일이 지났다. 돋을볕이 뜰 무렵 햇살 냄새를 가득 달고 어머니가 오셨다. 목에 걸린 잿빛 염주가 햇발과 함께 물결처럼 일렁였다. 표정 없는 얼굴에 노랑꽃을 피운 채 사시랑이 같은 몸으로 어머니는 손주를 가만히 내려다보셨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기쁨 속에 숨은 불안한 두려움을 보았다. 아이의 손에 염주를 한참 동안이나 쥐여 주며 어머니는 오랜 기도 후 다시 집을 나가셨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머니께서 머무시던 절에 공양주 보살로 계시는 먼 친척 고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과 함께 절로 향하는 발걸음이 그리도 무거울 수 있었을까? 등굽잇길을 지나 절 마당을 들어서던 남편과 나는 망부석이 되어 버렸다. 사시랑이 같은 어머니가 108 염주를 손에 쥐고 절 마당에서 힘겨운 발걸음으로 탑을 돌며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불쑥 나서려는 남편을 붙잡았다. 친척 고모님의 손짓으로 우리는 작은 방에 마주 앉았다. 도둑눈 속에 묻어 두었던 어머니의 진실에 등잔이 켜지는 순간이었다. 당신께선 신이 내렸지만 받지 않으셨다. 무당으로서의 삶이 결코 허락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신기를 없애려 혼자 애면글면 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며느리가 들면서 떠나버린 딸을 생각하면 당신의 업보이며 죄라고 생각하면서도 새 며느리의 복을 탓하게 되었다. 나비눈을 뜨며 지내던 날들 속에서 어느 날 문득 불러오는 배를 보며 당신의 그 마음이 얼마나 더 많은 죄를 지을까 더럭 겁이 났다.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으려 절에 머무르시며 기도에 전념하셨다.

당신으로 인해 상처 받고 있는 며느리의 애달픔도 보였다. 그날부터 어머니는 새벽마다 108배를 올리며 기도 하셨고, 아침저녁으로 탑을 돌며 업보를 달랬다. 염주 한 알에 소원을 올리고 빌며 날마다 탑을 돌며 기도하는 모습은 간절함 그 자체였다.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뼈 마디마디가 휘어 병원을 다니며 겨우 통증을 이기시던 상황에서도 오직 자식들을 위한 기도를 미룰 수 없었던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모래주머니를 달고 걷는 어머니의 무거운 발걸음은 살아온 길 당신의 업보의 무게로 여겼을 것이다.

쇠약해지는 몸을 보며 아무리 만류해도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으셨다고 한다. 혹여 당신의 업이 자손에게 대물림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에서 더 이상 말릴 수도 없었지만 이대로 볼 수 없어 전화하셨다며 고모님은 마른 눈물을 훔치셨다. 상처 가득한 가슴으로 한 간절한 기도는 어머니의 삶에 또 다른 진통이었다.

슬기로운 토끼는 세 개의 굴을 준비한다고 한다. 조금만 더 지혜롭고 현명해서 어머니의 마음을 미리 마중했다면 좀 더 빨리 그 깊은 심연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임을 깨달았다. 깊은 후회와 함께 비밀번호가 해제되고 빗장이 풀리며 마음이 홈홈해졌다. 우리는 그날 마다하는 어머니를 겨우 집으로 모시고 왔다.

시집살이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잘 숙성되어 가는 삶인지도 모른다. 자연의 재료와 인공의 재료가 적절하게 섞여 적당히 성분을 나누며 듬쑥하게 익어 갈 때 가장 잘 발효된 효소를 얻을 수 있듯,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랑과 존경과 배려가 잘 합방할 때 가장 향기로운 시집살이가 될 것이다. 무수한 날들 꽃들이 피었다 이울듯이 그렇게 서로 아픔과 위로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삶 속에 온전히 융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몰랐던 나는 빗장을 채운 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자식을 잃은 당신의 아픔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내 생각으로만 어머니를 판단하고 진정한 가슴으로 보는 눈에 덮개를 씌우며 되술래를 잡았었다. 이제야 마음이 유연하고 낫낫해지며 한 줌 햇살이 들었다. 서로의 마음이 푼푼해졌다. 어머니는 남녘 햇발을 안고 막 들어온 명지바람처럼 따사로운 눈빛으로 우리를 애만지셨다. 나도 어머니의 돌 곪은 마음에 따뜻한 가슴을 얹었다. 세상의 모든 상처는 덧나고 나서야 새살이 돋고 더 단단해지듯 어머니와 나의 일상에도 돋을양지가 들었다. 당신은 평소 죽으면 산천에 뿌려 흔적 없이 보내 달라고 유언하셨다. 산새들의 모이로라도 보시하고 싶다 시던 어머니를 아버님이 잠들어 계신 주변에 뿌렸다.

어쩌면 당신의 업보가 자손에게 대물림 될까 한평생 걱정하셨던 어머님의 완전한 예방책은 아니었을까? 108배의 기도를 몇 만 번이나 올린 걸까? 염주알이 모지랑이처럼 다 슬어 반질거린다. 어머니와 함께 모든 삶을 함께 겪어온 분신과도 같았던 염주는 그동안 세상 구경 한 번 시키지 않았던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햇살이 새어들어 염주 위에 살포시 자리를 틀었다.

세상 밖에서도 어머니의 기도는 결코 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를 위한 기도가 아닌 당신이 고통받았던 번뇌에 대한 평온을 위해 기도하시면 좋겠다. 아니, 이제는 내가 어머니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할 때이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는 어머니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며느리의 속 깊은 마음을 보여 드려야 할 때이다.

나의 마음고름을 눈치챈 걸까? 은빛 108 염주가 사르르 품 안으로 내려앉는다.(19.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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