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

by 미소미소
초당.jpg


초당


후끈한 오후다. 여름 볕에 덴 고택이 뜨거운 숨을 몰아쉬고 있다. 시나브로 불어오는 명지바람이 가들막하게 들어앉은 열기를 밀어내느라 난분분하다. 떠밀리지 않으려는 뜨끈한 공기가 바람과 뒤섞여 고샅길을 휘돌았다. 고택은 고즈넉한 정취를 잃어버린 채 허덕인다. 담쟁이가 타고 오르는 낮은 돌담 사이 골목을 지나 한 집, 한 집 들여다보는 느낌이 참 좋다. 여인네의 단아한 모습처럼 같은 듯, 다른 것이 한 채 한 채의 매력이다. 골목길을 걷다가 나지막한 초가를 만난다. 정갈하고 아담한 느낌 내 유년의 집이 이랬었다. 툇마루가 이어진 문턱 높은 집은 어린 내가 드나들기에는 힘에 겨운 곳이었다. 엉덩이를 뒤로하고 깨금발로 겨우 짚어 뒷걸음으로 내려오는 것이 우리 집 문턱이었다.

그러고 나면 문턱에 짓눌린 배가 아팠다.

초가의 느낌은 정겨운 운치도 있지만, 또 다른 면을 보면 좀 초라하기도 하다. 초가집에서 가난했던 지난날의 아픔을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옹기종기 모여 맨살을 비비며 정을 나누던 때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 편이어서 초가집에 대한 좋은 기억이 미동처럼 들려와서 참 좋다. 초가집 처마 아래 낮게 걸린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따사로운 볕이 들던 초당의 잔잔한 추억이 종종이 찾아든다. 오늘은 그 그리움을 즐겨볼 참이다.

펄펄 끓던 고택의 하늘 위로 한 떼의 매지구름이 이글거리던 태양을 빠르게 덮어갔다. 이내 비 올 바람이 불었다. 골목은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꽃들이 일제히 설레는지 까치발을 들고 목을 길게 뺐다. 자연은 신통하다. 보지 않고도 다 알고 있는 듯하니 말이다. 드디어 구름이 복잡한 속내를 쏟아냈다. 비꽃이 성글게 일더니 이내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불각시 내린 장대비에 꽃들은 몸을 가눌 겨를도 없이 허리를 꺾고 고스란히 비를 맞았다. 잠시 후면 이 고통의 시간을 벗어나 가뭄에 시들었던 꽃들은 서서히 생기를 찾을 것이다. 꼼짝없이 초가집 처마 아래 갇히고 말았다. 구름의 눈물을 고스란히 받아 안은 초가지붕의 지푸라기를 따라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굵은 물줄기로 낙하했다. 초가는 후끈하던 몸을 적시더니 지푸라기 향기를 풀어헤쳤다. 오른손을 내밀어 손바닥에 빗물을 받았다. 힘찬 듯하면서도 따뜻하게 닿는 이 부드러운 느낌이 좋아 한참을 그러고 서 있었다. 떨어지는 빗줄기를 따라 아슴푸레 유년이 소환되어 왔다.

큰어머니가 기거하시는 방은 본채와 좀 떨어진 초당이었다. 원래 이 초당은 일꾼들이 쓰던 방이었다. 사촌 오빠가 결혼하면서 일꾼은 더 필요 없게 되었다. 안채에 살던 큰어머니의 생활공간도 초당으로 비접 하여 밀려났다. 문을 열면 당신만의 독특한 향기가 풀썩 일어나 먼저 인사를 했다. 코끝을 몰씬하게 침범해 온 그것은 향기라기보다 지독한 냄새였다. 정확히 무슨 냄새인지도 모르는 것이 적응하는데 한참이 걸렸지만, 더 오랜 세월이 지나 난 알았다. 그것은 고혈이 만들어낸 지독한 외로움의 냄새였다.

나는 큰어머니의 방에서 자주 놀았다. 봄, 여름, 가을에는 들로 산으로 뛰어다녔지만, 겨울이면 화롯불이 발갛게 익어가는 그 방은 나를 포함한 몇몇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당신이 아끼시던 옷가지로 치장을 하고 우리는 가수도 되었다가, 회사원, 시장 골목 아줌마가 되는 1인 몇 역의 역할 놀이를 했다. 들까부는 시끄러움 속에서도 큰어머니는 싫은 내색 없이 옆에서 유일한 친구인 화투장을 가지고 노셨다. 그러다 싫증 나면 가으내 주운 알밤을 화롯불에 구워 우리를 빙 둘러앉혀서 옛날이야기를 해 주곤 하셨다. 성가셨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맛있는 것들을 챙겨주며 우리의 발걸음을 부르셨다. 그것은 외로움을 이겨내는 큰어머니만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집안의 종손으로 시집와서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자 시동생들을 다 키워 장가를 보냈다. 나이 마흔도 되지 않아 금쪽같이 키워서 서울의 유명한 대학까지 보냈던 큰아들을 병으로 잃었다. 큰아버지도 서둘러 아들의 뒤를 따랐다. 여자로 살면서 그보다 더 고통스럽고 저린 가슴이 또 있을까?

삼시 세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당신은 늘 초당의 지킴이셨다. 본채에 아들과 며느리가 있었지만 참 묘한 것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였다. 시어머니의 눈에 며느리는 곱지 않았고, 며느리의 눈에 시어머니는 고약하여 늘 서걱거렸다. 서로 밀고 당기는 신경 줄을 어린 나도 느꼈으니 말이다. 내 눈에 큰어머니는 늙고 나약한 존재였고 사촌 올케는 젊고 예뻤다. '얼굴보다 마음이 더 예뻐서 큰어머니에게 좀 더 잘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어린 나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불온한 사촌 올케와 못마땅해하는 큰어머니의 추임새가 맞부딪칠 때마다 보는 나마저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중,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큰어머니와 멀어졌다. 하지만 우리 집만의 독특한 예의가 있었다. 아버지가 여덟 살이 되던 해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래서 큰어머니께서 아버지를 키우셨는데 당신께선 큰어머니를 늘 친어머니로 모셨다. 오빠나 언니들이 타지에서 집에 올 때도 언제나 아버지 것과 똑같이 큰어머니 선물을 사서 왔다. 엄마 또한 장에 가시면 큰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과자를 사서 챙겨 주곤 하셨다. 또 내가 월급을 받아 아버지와 엄마의 빨간 내복을 사드리던 날도 큰어머니의 빨간 내복을 잊지 않은 건 굳이 누가 시킨 일은 아니었다. 당신은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든 자별한 존재였다.

큰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아직도 그날의 일이 선연하다. 내가 결혼식을 하는 날 아침이었다. 땅을 짚어야 걸을 수 있을 만큼 꼬부랑 허리로 큰어머니께서 오셨다. 속곳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원 지폐 두 장을 신혼여행 가서 쓰라며 몰래 챙겨 주기 위해서였다. 큰어머니한테서는 들씩일 때마다 지독한 지린내가 났는데 그 돈을 건네주시는 손에서조차 지린내가 났다. 하지만 그날은 그 냄새가 역하지 않았다. 큰어머니의 진심을 읽은 울컥해진 마음이 초당의 옛 향기를 기억했던 것일까? 그 냄새는 사랑을 주기만 했던, 하지만 어린 눈에도 외롭고 가엽게 보였던 당신의 향기였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초당에 환하게 켜진 불을 보았다. 큰어머니가 신행길이 어두울까 봐 켜 두신 불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를 태운 택시가 초당 앞을 지나갈 때 방문 밖에서 큰어머니를 불렀다. 하지만 초당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툇마루는 조용했다. 굽은 등으로 문을 열고 송곳니 하나만 버티는 잇몸을 보이며 환하게 웃어줄 큰어머니는 그곳에 계시지 않았다.

내 결혼식에 하객으로 왔던 사촌 언니들을 모두 돌려보낸 후 당신께선 쓸쓸하게 혼자서 눈을 감으셨다. 결혼식 덕에 딸들과 대소가 식구들을 모두 만났다고 친척들은 좋은 해석을 했다. 습관처럼 신혼여행에서 사 온 큰어머니의 선물은 결국 주인을 잃어버렸다. 초당도 주인을 잃고 빈집이 되었다.

오랜 세월 빈집으로 허물어져 가던 초당은 어느 날 친정 나들이를 갔을 때 허물어지고 없었다. 큰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허전했다.

내가 초당에 애당기는 건 아마도 큰어머니와의 특별한 추억들이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무조건의 사랑을 주셨고, 결 여문 척하셨지만 깊은 두려움과 외로움을 품고 사셨던 당신에 대한 애잔함이었던 것 같다. 가족에게서 밀려나 오랜 세월 초당에서 너덜겅 같이 살았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상상해 본다. 하늘나라에서는 초당이 아니니 본채에서 큰아버지와 큰오빠와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시길 바라본다.

나에게 고택은 고향이다. 초당은 사랑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선비촌'을 서성이며 설마른 그리움의 바다를 유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있었다. 생기를 얻은 꽃들이 부는 바람에 물기를 털며 화사하게 생글거리고 있었다. 한줄기의 비로 꽃들은 다시 살았고, 고택은 열기를 식혔다. 그동안 나는 초당에서 시절 넘치는 사랑을 주였던 큰어머니를 만나고 왔다. 심호흡을 해 본다. 초당 문을 열면 몰씬하게 풍겨오던 큰어머니의 향기가 아직도 코끝에서 맴돌고 있다.


이전 03화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