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발이 힘차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각양의 구름으로 장관이다. 청명한 하늘 아래 빛살 치는 창창한 소나무 숲을 천천히 걷는다. 태풍이 흘리고 간 바람이 지날 때마다 송뢰가 만들어낸 은은한 소리 돌림, 송운松韻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등에 귀를 대고 듣던 바로 그 소리. 마음이 불안하다가도 당신의 등에 귀를 꾹 누르고 있으면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울림이 되어 심장을 쓰다듬는다. 가장 평온한 순간이다. 살며시 눈을 감는다. 보드라운 바람과 은은한 솔향기, 귓불을 타고 들어오는 송운에 귀를 맡긴다
연둣빛 솔방울들이 다래다래 맞물리듯 솔가지에 매달려 있다. 어린 생명은 언제나 경이로운 희망이다. 하지만 또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지난한 풍파를 겪어야 할까? 비와 바람, 타는 불볕으로 생을 온전히 거친 후 맞는 소멸이야말로 진정한 완성이라는 것을 저 어린 솔방울은 알고 있을까?
천천히 내딛던 발바닥 밑에서 와스락, 소리가 났다. 멈칫 발끝을 내려 보다 비틀댄 발걸음을 급하게 옮긴다. 생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솔방울이 아직도 형태를 버리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발밑에 이지러져 있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 순종하며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 인가보다.
처음 솔방울을 눈여겨보았던 건 지난봄이었다. 겨울을 포도시 이겨냈지만 가지치기당한 찹찹한 솔가지들 사이로 울멍 줄 멍 솔방울이 보였다. 그도 언젠가는 예쁜 꽃이었을 것이다. 완성을 꿈꾸며 열매를 맺었지만 미처 익지도 못하고 가지치기당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봄이 깊어지자 남아있던 소나무 가지에서 꽃이 피었다. 이미 솔방울에 매료된 후라 자연스레 소나무꽃에 방점을 찍었다. 소나무가 얼마나 지혜로운지 처음 알았을 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한 가지에서 핀다. 하지만 남매끼리의 수정은 자손의 질이 나빠진다는 것을 소나무는 본능적으로 체관한다. 암꽃을 우뚝 높게 피우고 수꽃은 손가락 펴듯 암꽃을 둘러싸고 조금 낮게 핀다. 경이로운 모습이다. 꽃가루 스스로 위로 올라가지 못하니 남매간의 수정이 안 되도록 안전장치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러 바람의 세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꽃가루의 길을 소나무는 미리 감지한다. 암, 수꽃은 서로의 수정을 피하려고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핀다. 만의 하나 수정되지 못할 것을 대비해 아주 약간의 수꽃은 암꽃 위에 피운다. 만약의 비상사태를 준비하는 비의를 잊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수정한 꽃들은 이듬해가 되어서야 살팍진 솔방울이 된다. 연두로 시작해서 갈매빛으로 물들다가 서서히 황갈색이 되는 것은 가을이 되어서다.
장마와 태풍이 몰아칠 때 소나무는 타박하게 잎을 늘여 어린 솔방울을 보호한다. 어린 솔방울은 비늘을 여닫지 못한다. 어른이 되어서 제 안에 씨앗을 품는 순간부터 습도에 따라 겹겹이 싸고 있는 비늘을 열거나 닫는다. 습도가 높을수록 도스르며 씨앗을 보호하다가 청명한 날에는 활짝 열어 씨앗을 키운다. 어미가 비늘을 열고 닫기를 수백 번, 어린 씨앗들은 그루잠에 들며 날며 조금씩 새로운 탄생을 준비한다.
어머니의 사랑이 이랬다. 봉긋하게 꽃이 핀 어머니 안으로 아버지가 들어왔다. 그 자리에 씨앗이 맺혔다. 어머니는 자궁 안에서 그것을 정성스레 키웠다. 열 달 동안 어머니의 것을 야금야금 빼앗아 먹으며 씨앗은 몸을 부풀렸다. 어머니의 속삭임을 듣고, 아버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가족을 알아갔다. 지독한 고통의 산고를 거쳐 만지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비눗방울 같은 생명이 태어났다. 오물거리는 입술과 움켜쥔 손으로 어름 없는 용기를 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여린 아기를 위해 기꺼이 곡절 하는 송자松子가 된다. 자연으로 내보낼 솔 씨앗을 품에 안고 키우듯 사랑으로 넓힌 품에 우리를 안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야물게 닫아 보호하고, 맑은 날에는 햇살을 쬐어주려 타는 갈증 속에서도 한껏 비늘을 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박에 활짝 열진 않는다. 씨앗들이 놀랄까 봐 신중하게 주변을 살펴가며 천천히 연다. 어쩌다 눈치 없는 바람의 장난에는 심장을 졸이기도 했을 것이다. 천지도 모르는 아기들은 밖을 기웃거렸다. 통통하게 살을 올리며 준비하는 솔 씨앗처럼 엄마의 품에서 자라던 씨앗들의 분가도 준비되어 갔다. 비꽃 한 방울에도 두려움에 떨었고, 부드러운 바람조차 조심스러웠던 날이 지났다.
쩍말없이 자라 이제 세상 밖에 내놓아도 된다고 생각했을 때 바람이 많은 날을 목밑으로 잡고 그제야 솔방울은 잘 익은 씨앗부터 땅으로 내보낸다. ‘얘들아 어서 나가거라. 멀리멀리 날거라. 돋을양지에 자리 잡아 무럭무럭 자라거라.’ 솔방울은 씨앗들을 떠나보내며 간절히 기도한다.
씨앗들이 다 떠나고 나면 솔방울은 가벼워진다. 하지만 정작 마음은 그때부터 더 무거워진다. 잘 자라 줄까 노심초사하는 것이 어미로써의 당연한 마음이다. 방마다 가득 채웠던 씨앗들이 떠난 자리는 황량하다. 텅 빈 품 사이로 송뢰가 인다. 웅, 웅, 울리는 소리는 어쩌면 어미의 빈 가슴이 우는 애끓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씨앗이 떠나도 빈 솔방울은 성근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면 습관처럼 비늘을 닫는다. 그러다가 들피진 삶을 자각했을 때 비로소 바르쥔 손을 놓는다. 자신의 소임을 다 하고 이제 자연으로 자리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바람이 없어도 송그리던 손아귀에 힘을 푼다. 툭, 몸을 내던지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불귀한다. 어쩌면 속 알을 다 빼먹고 짝을 찾아 나서는 자식을 다 내보낸 어머니가 그럴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골수염을 앓았다. 뼈에 찬 고름을 긁어내고 그 빈자리를 거즈로 가득 채웠다. 엄마는 나를 업고 1시간이 넘는 길을 걸어 병원을 다녀와서는 밭일을 나가셨다. 밤이면 통증으로 잠 못 이루는 내 다리를 주무르느라 온밤을 지새우셨다. 간간이 깜박 졸기라도 하면 나는 아픔을 못 참고 엄마를 불렀다. 엄마도 나도 지옥 같은 밤들이었다. 밤낮없이 나를 꼭 끌어안고 걱정의 시간을 보냈던 엄마의 가슴은 애가 말라 까맣게 타고도 남았을 것이다.
결혼 전날 밤 수없이 교차되는 희비의 쌍곡선을 타던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신은 그 순간부터 가슴속에 또 다른 불덩이 하나를 안고 살았을 것이다. 불꽃이 이면 이는 대로 또 사그라지면 사그라지는 대로 걱정의 나날이다.
첫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을 때, 그 아이가 아파서, 때로는 내 속을 태우며 자랄 때, 나도 엄마의 마음을 배워갔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 깊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사는지도 모른다. 대지 속으로 스며드는 물처럼 태초에 어머니와 연결된 태의 고향으로 찾아드는 마음을 보면 안다. 작지만 한없이 너른 게 어머니의 품이다. 온 마음 다해 그러안았다 놓았다 하는 것도 그 유일한 사랑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도 비늘을 여닫는 고절한 솔방울처럼 마지막 그 순간까지 자식에 대한 사랑과 걱정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의 삶, 또 다른 누군가의 어머니가 소나무 가지 끝에, 우리의 현실 속에 서로 다른 심장을 팔딱거리고 살아간다. 마치 희생을 준비한 전령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