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른 한낮이 지났다. 하늘 갓 위로 붉은 노을이 내리는 시간, 분주한 발걸음들이다.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이른 마음이 돌아가는 시간, 퇴근 준비를 하는 다른 직원들과는 달리 다시 자리를 고쳐 앉는다. 오늘은 야간 근무 차례다. 갑자기 주위가 시끄러워졌다. 다급하게 경적을 울리는 앰뷸런스가 응급실 앞에 멈추었다. 드문 일이 아니므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조금 있으면 누군가 와서 접수를 할 것이다. 떨리는 음성으로 다급하게, 혹은 생각이 하얘져 환자의 이름조차 기억이 안 나 말을 더듬을지도 모른다. 늘 그래 왔던 일이다. 하지만 오늘 접수창구 앞은 조용하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응급실의 기류가 내려앉은 것도 같고 이리저리 분주한 것도 같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르는가 싶더니 다시 잠잠해졌다. 가끔 있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다.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다. 경험으로 보아 분명 좋지 않은 징조라는 싸인이다.
어린아이 밥 먹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응급실은 다시 평화로워졌다. 대기실 천정 불빛이 껌벅이며 졸고 있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텔레비전에선 오늘의 사건사고가 전해지고, 어디선가 또 누가 교통사고로 이승과의 인연을 끊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지루함이 몰려왔다. 나긋한 졸음이 살금 거리며 다가왔다. 면회를 끝내고 가며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이 잠시 웅 웅 거리며 대기실을 올린다. 다시 적막이다.
출입문 이 열린다. 다급하게 들어오는 늙은 촌부의 얼굴이 보인다. 어깨너머로 엉클어진 머리에 허름한 옷을 정성 없이 걸친 여자의 얼굴이 비친다. 그녀의 왼 손에 맥없이 매달려 있는 손전등이 가늘게 떨린다. 금방이라도 쿵 하고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것 만 같다. 발을 끌며 걸어오는 그녀의 두 다리가 후들거림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모자를 쓴 남자가 접수창구 앞으로 한걸음에 다가왔다.
“여기 좀 전에 교통사고로 누가 오지 않았어요?”
떨리는 목소리, 흔들리고 있다. 그의 어깨너머로 간절한 여자의 눈빛이 보인다. ‘없었어요’ 하고 싶은걸 간신히 참았다.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바랬다. 맞은편 응급실을 가르쳤다. “저기 가서 물어보세요”
근육이라고는 없는 그의 구부정한 하체가 허우적거리며 뛰듯이 걸어갔다. 금방이라도 풀썩 내려앉을 것 같다. 그 뒤를 옷자락을 잡은 여자가 뒤 따랐다. 드르륵 둔탁한 응급실 문이 열린다. 두런두런 몇 마디. ‘터 덕’ 손전등이 떨어지는 소리다. 누군가 풀썩 주저앉는 소리도 들린다. 울음소리는 나지 않았다. 주저앉은 여자를 보지 못한 걸까? 남자는 돌아서 멀거니 창밖을 응시한다. 어둠이 덮은 창으로 그의 얼굴이 비쳤다. 깊은 주름이 일그러지며 일렁인다. 한참이 지났다. 이제야 생각이 났는지 그는 뒤돌아 여자를 챙긴다. 그녀가 말없이 허리를 꺾고 어깨를 들썩였다. 아픈가 보다. 아니 아파 보인다. 아주 많이 아파 보인다.
어둠이 조금씩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있다. 학교를 마친 아이는 마음이 바빴다. 점심시간에 산 카네이션 두 송이가 혹시 시들지 않을까 물이 든 컵에 꽂아놓고 시간 수만 세고 있었다. 마지막 종이 울리고 아이는 두 송이 꽃을 비닐봉지에 곱게 넣었다. 공기를 넣어 봉긋하게 묶었다. 꽃이 눌려 모양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 한달음에 운동장으로 내려온 아이가 자전거 세움대로 간다. ‘철컥’ 자물쇠가 열리고 자전거에 몸을 얹었다. 비닐을 자전거 핸들에 단단히 걸었다. 바람이 귓전을 스치며 수다를 떨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달뜬 마음으로 카네이션을 받아 든 아버지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필 미소 꽃만 온 머리에 가득해 연신 웃음이 났다. 매끈한 포장길을 지나 덜컹거리는 비포장 길로 들어서니 오르막길이 기다린다. 숨이 차도록 페덜을 밟는 장딴지가 뻐근하게 아파왔지만 마음이 바빴다. 구수한 된장찌개를 놓고 온 가족이라 고는 고작 셋이지만 오랜만에 함께 앉아 저녁을 먹게 될 것이다. 30분이면 된다. 고등학교 3학년 야간자습으로 집에서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시내에 작은 방을 얻어 자취를 하며 열심히 공부를 했다. 올 한 해만 지나면 고등학교를 졸업을 한다. 힘든 부모님을 생각하면 대학생활은 뒤로 미루고 싶었지만 부모의 바람이 워낙 간절했므로 좋은 성적으로 장학생이 되어 힘겨운 삶에 보탬이라도 되려는 생각에 열심히 노력했다. 가능성이 보인다며 선생님들은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그 마음엔 늘 부모 걱정뿐이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오늘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저녁상을 마주하리라. 내일 아침 정성껏 아침상을 차려 드리고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며 낳아 주심에, 깊은 사랑으로 길러주심에 감사를 드리리라’는 다짐을 에너지로 자전거 패덜에 힘을 실었다.
어둠 때문에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나 오고 갔던 길인가? 중학 3년 고등학교 2년을 아침저녁으로 다닌 길이라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었다. 정미소를 막 지나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오른쪽 길을 막 들어설 때였다. 멀리서 불빛이 번쩍거렸다. 눈이 부셨다. 잠깐 턱을 왼쪽 아래로 내리며 시선을 피했다. 불빛으로 보아 버스일 것이다.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수년간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셨던 눈이 서서히 돌아오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아까보다 더 큰 불빛이 와락 다가왔다. “쾅!” 전류가 흐르는 듯 감각이 없다. 온몸이 하늘로 높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깃털처럼 가벼웠다. ‘날개 없이도 날 수 있구나. 이 기분은 뭐지?’ 정신이 든 것 같아 눈을 뜨니 눈 아래 두 송이 카네이션이 따라 올라오고 있다. ‘떨어지면 안 되는데. 아빠 엄마 드려야 하는데. 망가지면 안 되는데……’ 손을 뻗었다. 몸이 아래로 꼬꾸라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몸을 바로 세우려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아래로 내려가던 몸은 땅을 만나고 나서야 겨우 멈추었다. “쿵” 불빛 때문에 눈이 부셨다. 눈에서는 눈물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렀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다가오고 있다. 눈앞에 얼굴 없이 보이는 커다란 다리는 마치 거인의 육중한 발걸음 같았다. 먼 소리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빨리 가야 하는데. 아빠랑 엄마가 기다리시는데……. 온몸에 힘이 없어지며 눈이 감겼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절규였다. 가슴 안에서 피멍이 터져 피를 토하는 절규였다. 남자는 그녀를 쓸어안았다. 그의 눈에서도 굵은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렀다. 꿈이길 바랄 것이다. 제발 꿈이길 바랄 것이다. 어쩌면 꿈속 꿈이길 바랄 것이다. 꿈속에서라도 자식을 잃고 난 후면 잠이 깨고 나서도 가슴이 저리고 아픈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 아픔은 비할 것이 아닐 것이다. 꿈이 아닌 현실 앞에 그들은 절망했다.
간호사가 남자를 불렀다. 검은 가방을 전해 주었다. 반쯤 열린 지퍼 사이로 몇 권의 책 귀퉁이가 삐죽 고갤 내 민다. 구멍 난 비닐봉지 사이로 빨간 카네이션이 짓이긴 체 들어 있다. 누군가 아이의 마음을 알았던 걸까? 저 꽃을 챙긴 걸 보면. 저 붉은 꽃을 가슴에 달아 주려고 가던 길, 결국 주인을 만났지만 제가 가야 할 자리를 찾아줄 손길을 잃어버렸다. 영안실이 없는 병원에서는 아이를 영안실이 있는 다른 병원으로 보냈다. 정신이 든 남자는 아내의 손을 이끌고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이 떠난 대기실에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후일에 소식을 들었다. 아이는 부부의 늦둥이 외동이었다. 속이 깊고 인성이 반듯하고 학교에서도 최 상위권의 성적으로 기대의 대상이었다. 물리치료사가 되어 굳어가는 아버지의 몸을 풀어주겠노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말 못 하는 엄마에겐 통역사이기도 했다. 깊은 어둠이 그들에게서 푸른 희망을 삼켜 버렸다. 앰뷸런스의 경적이 울릴 때 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날의 일이 오랫동안 기억 속을 떠나지 못하는 건 이제 나도 아이들의 엄마인 탓에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기 때문이 아닐까?
꽃무덤으로 사라진 그 아이의 깊은 마음은 두 부부의 마음속에 영원히 지지 않은 꽃으로 피어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