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by 미소미소

열아홉살 차이의 오빠가 내게는 있었다. 8남매의 맏이, 가난한 집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서점에 일 하시다가 부산의 신발공장에서 40 여년을 지내오신 우리 오빠. 결혼을 했지만 지나치게 무심한 올케의 성격탓에 마음놓고 부모님 한번 챙기지 못한, 그러면서도 늘 마음아파하신 오빠였다. 그저 아무 탈 없이 자라 결혼하고 잘 사는 동생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에 술 한잔 하시면 전화해 ‘미안하다’ ‘고맙다’를 말씀하시던 오빠. 몇 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되신 어머니를 영주에 계시게 한 것과, 그 곁을 내가 지키고 있는것만으로도 미안해 하시던 오빠.

어슴프레 어둠이 내리던 어느날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막둥아! 잘있나?” “아~ 오빠세요? 글검요 오빠는요?” “나야 잘 있지. 우리 막둥이 어무이 모시고 사느라 힘들재? 미안하데이. 손서방 한테도 고맙다고 해라” “미안하기는요. 뭐 내가 잘 하는것도 아닌데” 사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나는 큰 오빠에 대한 원망이 있었고 때때로 그 불만을 오빠에게 이야기 하기도 했었다. “우리 막둥이 오빠가 오늘 하모니카 한번 불어줄까?’ “하모니카요?’ 그러고 보니 그랬다. 오빠는 하모니카 불기를 좋아 했다.

그리고 사진 찍기도 좋아해 내게는 유난히 어린시절 사진이 많다. “그래, 오늘 내가 술도 한잔했다. 우리 막둥이 내 하모니카 소리 한번 들어 봐래이”

그 노래였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 설 때에……’ 그 하모니카 음이 얼마나 구슬프고 그 순간은 오빠의 마음인 것 같아 눈물이 흘렀다……. 함께 모시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한 마음을 느끼며 사시는 8남매의 맏이 60을 바라보는 오빠셨다.

몇 년전 엄마가 뇌 출혈로 쓰러지셨다. 다행히 대구에 있는 작은 언니 집에서 쓰러지신 탓에 가까운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셨다. 엄마가 쓰러진 후 우리집에는 작은 분란이 시작 되었다. 맏이가 제노릇을 못한다느니 서로가 서로의 삶에 바빠 마치 TV에 나오는 드라마 처럼 엄마를 책임져야 할까봐 올케들은 서로 미루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서도 오빠는 한 마디 말도 못하셨다. 그저 맏이 도리를 못 하는 죄인이라는 말 밖에. 결국 며느리를 제외한 딸들이 돌아가면서 엄마의 병 간호를 했고 내 차례가 되었던 어느 주말 오빠가 축쳐진 어깨로 병원을 오셨다. 엄마를 찾아 뵙고 우리는 병원앞 식당으로 갔다. “엄마! 뭐 먹을래?” “오빠 국수 좋아 하세요? 우리 국수 먹을래요?” “어이구 우리 막둥이가 내가 국수 좋아하는건 어떻게 알았노? 그래 먹자” 국수 두 그릇을 마주하고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오빠가 내게 작은 고백을 하셨다. 몇 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싶었지만 올케의 반대로 번번히 다투기만 하셨다고 한다. 늘 동생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아무도 몰래 엄마가 돌아 가시면 장례 비용에 쓰시려고 8백만원을 모아 두셨다고 말씀 하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명치끝이 꽉 막히는 아픔을 느꼈다. 한순간 오빠의 괴로움이 모두 전해지는 것 같았다. 아프신 엄마 못 모시겠다는 올케 동생들의 원망. 그 앞에서 오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셨고 결국 오빠만의 방법을 택하셨나 보다.

엄마의 퇴원 하시던 날 오빠는 엄마를 우리집에 모셔다 놓고 가시면서 빨갛게 충혈된 눈을 들킬까봐 눈빛 한번 맞추지 않으셨다. 그저 꽉 잠긴 목소리로 “미안하데이…… 정말 미안하데이……’만 되 뇌이시고 엄마의 손을 꼭 잡으시곤 “어무이 죄송합니다. 불효자식 용서 하이소” 하시며 고개를 떨구셨다.

누가 알았을까? 그것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뵙게될 오빠의 모습일줄……

두달이 지났을까? 오빠의 부고를 들은 날이. 뇌출혈이 이유인지 뇌진탕이 이유인지 오빠는 59년의 삶을 그렇게 마감 하셨다. 새벽차를 달려 부산에 도착해 영안실에 사진으로 남아있는 오빠의 모습을 보면서, 상복을 차려입은 두조카와 슬프게 울고있는 올케를 보면서 이제 오빠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느껴졌다. 오빠는 가족과의 갈등을 어떻게 이겨 낼 수가 없으셨나 보다. 그렇게 혼자 괴로워 하시다가 홀로 고요히 먼저 이 세상을 떠나버리셨다. 그제서야 나는 가족들에게 오빠의 속 마음을 이야기 할 수 있었고 두 오빠는 오빠의 영정앞에 목놓아 우셨다. 그저 맏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맏이로써의 도리를 다 하지 못하는 죄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음속의 진실조차 말하지 못했던 천사 같은 오빠.

그 오빠를 이제는 맘 편히 저승에서나마 부모님을 모실 수 있도록 고향의 아버지 무덤옆에 모셨다.

나는 아직도 오빠의 하모니카 소리가 그리울때면 10여분 거리의 아버지와 오빠가 계시는 곳을 찾는다. 그리고 조용히 오빠에게 말해본다. “오빠 이젠 맘껏 아버지 모시고 가까이 있는 어머니 모실 수 있으니 그 무거운 짐 내려 놓으셔도 되요. 이젠 제가 더 잘 할께요라고.” 멀리서 대답이라도 하듯 아련한 하모니카 음이 들리는듯 하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 설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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