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미소미소


봄 햇살이 너무 강한 탓일까? 자꾸만 눈물이 난다.

머릿속에는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눈엔 그렁그렁 눈물방울을 달고 팔짝 팔짝 뛰며 춤을 추던 딸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 거린다. 말이 없던 남편도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둘 모두 말이 없었고 나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고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바라 보았다.

생각해 보면 슬픈 일은 아니었다. 대견한 일이다. 작은아이가 대학에 입학해 기숙사로 들어간 지 2주일 만에 딸아이도 짐을 챙겨 이사를 했다. 작은 녀석은 남자아이, 더구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대학생활이라 좀 아쉽긴 했지만 마음이 이렇게 아리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 한 골목 귀퉁이에 딸아이를 혼자 두고 가려니 마음이 아렸다.

스물 두해를 품안에 안고 살았으니 어찌 보면 대학에 입학하면 자식들을 분가시키는 다른 부모들에 비하면 오랜 기간 동안 품고 살았고 그만큼 기쁨도 컸다. 유난히 애교가 많고, 집안의 분위기 메이커인 듯 사명감을 가지고 딸아이는 수시로 우스꽝스런 말, 우스꽝스런 행동, 그리고 요즘 젊은 아이들에게 유행하는 말들을 물고 들어와 우리 부부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물 했다. 그런 아이가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독립을 하게 된 것이다. 즐거움과 기쁨이 그 아이와 함께 떠나 버리는 느낌이었다. 딸아이를 두고 오는 내내 아린마음에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 멈추지를 않았다. 남편과 나는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날 이었다. 내 스무 해 봄날.

영주 기차역 플랫폼 에서 난생 처음으로 초조해 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 을 본 날이. 수원에 있는 병원 원무과에 취업이 되어 집을 나서는 내 마음은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사회 초년생 의로써의 설레임에 부풀었었다..

가방을 들고 기차역 까지 배웅오신 아버지는 길조심, 사람조심, 차 조심 하라 시며 당부하고 또 당부하셨다. '남에게 해가되는 일은 해서는 절대 안되며, 월급 받은 만큼 진심으로 열심히 일 해야 한다고'도 일러 주셨다. '직장 어른이 뭐라고 하시면 억울한 일이 있어도 무조건 죄송하다고 말 하라'고 하셨다. 차후에 기회가 되면 진실을 밝혀도 늦지 않는다고도 말씀해 주셨다. 가방을 들고 돌아서 담배를 피워 무신 아버지의 쳐진 어깨위에 내려앉은 진한 걱정이 가슴으로 전해지며 처음 아버지의 아린 사랑을 느꼈다.

그때 아버지의 마음이 이랬을까? 어린 자식을 세상 밖으로 내 놓으시는 두려움이 어쩌면 오늘 내가 느끼는 이 알지 못하는 마음과 같았을 내 아버지는 그때 답을 찾으셨을까? '못 배운 아비 만나 가진 것 없어 공부 많이 못시켜서 미안하다'시며, 술 한 잔 하시는 날이면 내 손을 잡고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시고 또 하시던 아버지의 진심이 어쩌면 가난한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아닌 이해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게 하셨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그렇게 당신을 낮추시며 우리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가르치셨다.

열심히는 살았지만 가진 것 없이 시작해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생활이었다. 무리하게 시작해 실패한 사업 탓에 빚더미에 올라 힘든 생활이었다. 딸아이가 수학이 부족하다며 몇 개월만 과외를 시켜 달라 졸라도 시키지 못했다. 나 또한 무능한 부모가 되어버린 것 같은 처참한 심정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눈물을 찔끔거리며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과외 받아보고 싶다’는 아이를 억지로 설득하며 가슴으로 울었던 지난날들, 말로써 아이를 설득하는 일은 쉬운 일이었지만 때로 억지 말을 하는 나를 돌아보는 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이었다.

수능시험을 보고 꽤 괜찮은 성적을 얻었지만, 학비걱정에 국공립이 아니면 아예 원서조차 쓰지 못하게 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고,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더 좋은 많은 방법들이 있었을 텐데도 그럴 여유조차 없는 살아가기에만 바쁜 엄마라는 핑계를 대며 나의 무지를 대신 했다.

다행히 큰아이는 간호사의 꿈을 꾸며 지역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을 하였고, 원망 없이 열심히 학업을 마쳤다. 학교를 다니는 와중에도 주말이면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은 스스로 해결하는 대견스러움을 보였지만, 그것보다도 더 기특한 일은 단 한 번도 힘들다고 불평한 적이 없는 아이였다. 언제나 밝고 경쾌한 언어로 오히려 힘든 상황 에서도 우리 부부에게 빛나는 에너지를 끊임없이 가져다주는 햇살 같은 아이가 되어 주었다.

일 년 동안 쉬는 날이 없을 정도였고, 한번쯤 늦잠을 자고도 싶었을 텐데도 투정한번 없는 그 아이를 어느 날 꽃바람이 일던 둔치에 앉아 "존경 한다"고 조심스럽게 눈물어린 고백도 했었다.

풍족하지 못한 살림에 아이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 맘대로 사 줄 수 없었고,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 맘껏 하게하지 못했다. 돈으로 해결해주지 못하는 많은 부분들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보상하려 했고 아이들에게 많은 추억을 심어주려 애썼다. 어린 시절 내가 놀던 강가를 찾아가 물놀이도 하고 밤이면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외며 밤하늘의 별을 세기도 하고, 바람이 거센 바닷가를 찾아 텐트를 쳐 놓고는 밤새 텐트가 날아갈까 네 귀퉁이를 발로 꼭꼭 누르며 걱정하는 밤을 보냈었다. 특별하지 않은 날 밤을 달려 동해의 바닷가에 이불을 펴 누운 체로 눈부신 해를 맞기도 했었다. 결혼 전 남편과 해돋이로 자주 가던 여행지를 찾아 우리 부부의 사랑이야기도 들려주는가 하면 컴퓨터와 티비에 매달린 아이들을 이끌어 윷놀이와 게임으로 깔깔거리며 밤을 새우기도 했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따라주었고 이제 두 아이는 우리 품을 떠났다. 스스로를 낮추시며 우리에게 사랑과 존경을 가르치셨던 아버지와 달리 집안사정 숨기지 않고 이야기 하며 이해를 가르쳤다. 생각이 깊은 아이들은 큰 반항 없이 반듯하게 자라주었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나또한 아이들에게 '사람조심, 길조심, 차 조심'하라며 가르쳤고, '어디에서나 인정받을 수 있는 기본을 갖춘 반듯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면 즐기면서 최선을 다하자'며 노파심으로 두 아이의 두 손을 꼭 잡았었다. 아이들은 이해해 줄까? 그리고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존경했듯이 아이들은 나의 부족한 사랑을 올바르게 느끼고 있을까?

"커피 한잔 마시고 갈까?" 침묵을 깨며 약간 잠긴 듯한 목소리로 남편이 물어온다. 그러고 보니 멀리 휴게소가 보인다.

남편도 나도 딸아이를 두고 오는 허전한 가슴으로 한동안 서로의 생각에 잠겨 한마디 말도 없이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침묵으로 달려온 것 같다.

" 잘 적응 하겠지? 그래도 집이 깨끗하고 햇살이 가득해서 다행이야"

남편의 말에 멈췄던 눈물이 주책없이 또 흐른다.

"그러게 종일 해가 머물러 있을 것 같아. 집이 포근하고 환해서 참 좋더라" 말하는 내 목소리가 자꾸만 잠겨온다.

눈물이 그렁그렁 한 체 두 팔을 벌리고 팔짝거리며 우스꽝스런 춤을 추며 두려움을 숨기며 우리를 위로하던 딸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그때 핸드폰의 문자 음이 울린다.

"엄마 어디쯤이야? 잘 가고 있지? 내 걱정은 하지 마 잘 할게"

‘딸은 나의 가슴밖에 뛰고 있는 또 다른 나의 심장’이라고 했던가?

또다시 왈칵 눈물이 솟아 글이 아닌 속 깊은 딸아이의 마음을 가만히 읽고 또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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