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by 미소미소

이른 봄, 스스로 사랑할 수 없는 꽃들은 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면서 향기도 함께 풀어 벌들을 불러 모은다. 욕심 많은 벌들은 이 꽃 저 꽃 위를 날아다니며 꿀을 모으느라 정신없는 사이 꽃들은 사랑의 밀알들을 옮기며 완성을 준비한다. 한차례 사랑의 날이 지나면 쇠해진 꽃잎은 온몸을 추스르며 열매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들은 미련도, 억울함도, 성급함조차도 없다. 초연하게 기다림을 배울 뿐이다. 연두 빛 열매가 살짝 엉덩이를 내 밀면 그제야 가지를 넘겨주고 꽃보라가 되어 미련 없이 나무를 떠난다.


몇 년 전 이사를 하면서 집 뒤 낮은 언덕배기에 복숭아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 황도라며 상인이 어찌나 그 맛을 자랑하는지 나무를 사면서 우리는 벌써 누런 황도의 달콤함에 입맛을 다시면서 설렘에 젖었다.

첫해 연분홍 꽃을 소담스럽게 피우더니 한 나무에 대여섯 알 정도의 복숭아가 달렸다. 아이들과 같이 보는 것은 작은 기쁨이었다. 조금씩 살을 올리며 하루가 다르게 알을 키웠다.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바쁜 일상에 나무말미나 지났을까? 다시 찾아간 나무에는 복숭아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들은 울상을 지었다. 묘한 일이었다. 누가 요술을 부려도 이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가끔 언덕을 무대 삼아 칼싸움도 하고 더러는 쉬운 길을 두고도 재미 삼아 미끄러지며 다니더니 녀석들이 장난을 했나? 온갖 추측을 하며 우리는 나무 아래서 한참이나 복숭아가 모두 떠난 휑한 가지 사이로 눈을 굴렸다.


다음 해가 되었다. 이번엔 꼭 달콤한 복숭아 맛을 보고야 말겠다고 겨울 동안 모았던 음식 쓰레기를 발효시켜 나무 아래에 뿌렸다. 영양분을 많이 먹고 잘 자라 탐스러운 복숭아를 맛볼 수 있기를 바랐다. 꽃이 피었다. 벌들이 다녀갔다. 새끼손톱만 한 복숭아가 봉긋이 엉덩이를 내밀었다. 작년보다 좀 더 많은 알이 달렸으므로 올해엔 분명 맛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아이 주먹 크기가 되었을 무렵 봉지 속에서 잘 익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헌 책을 잘라 보호막을 씌웠다. 비록 눈앞에서는 숨어 버렸지만 보지 않고도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가끔은 잘 익어 가리라 기대하면서 기다림의 시간을 채워 갔다.


지루한 장마가 끝났다. 태양이 뜨거워졌다. 덩달아 날씨도 더워졌다. 복숭아는 아주 잘 익어 갈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탐스러운 열매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야무진 꿈이라는 걸 곧 알게 되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복숭아는 봉지 속으로 떨어져 소 오줌보처럼 축 늘어져 있거나 그도 못 견뎌 똘기가 되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행여나 하고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마지막 남은 하나마저 떨어지고 말았을 때의 실망을 아직도 기억한다. 너무 허무한 일이었기에 보지 않았더라면 또 누가 장난을 했다고 우겼을 것이다. 채 익지도 않고 떨어져 뒹구는 것을 보면서 이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며칠 인터넷에 찾아 헤매다 실패한 후 복숭아 농사를 짓는 지인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이야기를 들은 그분은 너털웃음으로 거저먹으려 든다며 우리의 공짜 마음을 나무랐다. 남편과 나는 몸에 좋은 유기농으로 먹는다고 약을 하나도 치지 않고 그저 바라보며 기다리기만 했었다. 하지만 복숭아는 꽃이 피면서 벌레가 들고, 그 벌레를 처리하지 못하면 꽃이 지고 열매가 맺혀도 여전히 그 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그 속에 자리 틀고 앉아 집을 짓고 속살을 파먹으며 몸집을 키운다. 성충으로 자란 후에야 먹을 양이 부족하게 되고, 영양가를 빼앗긴 복숭아는 더 이상 나무에 매달려 있을 힘조차 없어 떨어지고 만다. 그때서야 벌레는 기지개 켜며 또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미련 없이 떠난다. 그 사실은 잃어버린 복숭아에 대한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한 알의 복숭아라도 일찍부터 병균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면 실한 과실의 역할을 할 수가 없다.


다음 해에는 부지런히 약을 쳤다. 이른 봄 목 밑을 기억해 두고 꽃이 피기 전에도 꽃이 핀 후에도 벌레들의 근접을 어림없게 하려 철저하게 예방했다. 그러나 꽃잎이 맥없이 떨어졌다. 약의 독성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복숭아는 원래 꽃이 피기 전과, 꽃이 지고 난 후 열매가 맺혀 충분히 가지에 매달릴 힘이 있을 때 약을 치는 것이라는 걸 늦게서야 알았다.

내리 이태를 너무 이르게 약을 쳐서, 너무 독하게 쳐서, 또 너무 자주 쳐서 복숭아 맛을 구경조차 할 수 없었지만 실패의 경험으로 박식한 지식을 얻어갔다.


복숭아와 씨름질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던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며 나름대로의 지론이 있었다. 어릴 때는 엄하게 키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버릇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아이를 소유물이라 착각하며 지낸 때도 있다. 잘못에 대한 대가를 회초리로 다스리기도 했다. 남의 물건을 탐하는 일에 대해선 아주 엄하게 다스렸다. 세 살쯤엔가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의 가방 속에 든 친구의 장난감을 보고 남의 것을 가지고 온 잘못을 나무라는데 초롱한 눈의 아이는 “무엇을 잘못했느냐”라고 자꾸 묻는다. ‘가지고 싶은 장난감이고 우리 집에는 없어서 가지고 왔단’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왜?"를 묻는 아이에게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또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어느 날은 문방구 바닥에 떨어진 수첩 하나를 들고 온 아들을 혼내며 ‘남의 물건을 탐낸 거라’ 나무라고 파출소 앞까지 데리고 간 나를 울먹이는 눈으로 쳐다보던 아이의 눈빛이 기억난다. “엄마 문방구 안에 진열된 게 아니라 문 밖에 떨어져 있어서 주워 온 거예요”라며 말하는 아이는 억울한 듯 소리 내어 엉 엉 울었다. 잘못에 대해 인지 시켜주는 시기와 강도의 조절이 부족했던 탓이다. ‘떨어진 물건은 내 것이 아니며 분명 주인이 있음’을 타 일렀더라면 아이는 아마도 훨씬 쉽게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습관이 중요하고, 생각의 기준이 중요하다. 개념이 바로 선 후에는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주는 것이 좋지만 그 이전에 옳은 개념을 심어 주는 것은 부모와 교육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옳은 인성을 심어주고, 행동에 대한 책임을 알려주고, 도덕성의 기본도 가르치려 노력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일찍 아이들의 기본 인성에 관심을 두고 노력했던 일은 반듯한 청년으로 자랄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아이들은 존재 자체가 기쁨이고 행복이다. 하지만 바르게 성장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하려면 복숭아꽃 속에 벌레가 들지 않도록 미리 처방을 하듯 심성에 올바른 씨앗을 심어 줄 때 분명 도덕성과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직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는 가르침이 아닌 행동하는 가르침으로 아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가장 깨끗한 거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드디어 우리는 달콤한 꿀물이 흐르는 누런 황도를 맛보았다. 알맞은 시기와 적당한 관심과 무관심의 분배를 고루 나누며 지켜본 만족한 결실이었다.


내년 봄 고추바람을 이긴 나무는 연분홍 복사꽃을 변함없이 활짝 피울 것이다. 꽃이 피기 전부터 정확한 시기와 적당한 용량의 약을 치며 벌레의 침입을 예방할 것이다. 고른 한낮의 태양 아래 건강하게 자란 나무는 튼실한 열매를 맺고 햇살의 사랑으로 포실하게 익어갈 것이다. 내년 여름 좀 더 맛있게 익어갈 황도의 맛을 한걸음 미리 음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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