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 생각해본 적 있나요?
가을이 익어가는 어느 날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자작나무숲을 걸었다. 아니 걸었다기보다 네 명이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깔깔거리며 놀았다. 죽파리자작나무 숲은 입구에서 걸어가면서 보는 계곡이 정말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계곡을 걸어가다 보면 끄트머리에 선물처럼 자작나무숲이 있다. 새하얀 수피가 창백하도록 웃어주는가 하면 그 사이사이 빨간 단풍이 얼굴을 빠꼼 내밀고 생긋 웃는다. 가을 자작나무 숲이 더 아름다운 이유다. 돌아오면 눈앞에 가물거리고 이듬해가 되면 다시 마음을 끄당기는 이유다.
그 자작숲길을 내려온 카페에서 시집 한 권을 만났다. 굳이 소개를 하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고 말 그런 시집, 나는 그 책 제목을 보고 금방 알아봤다. 왜냐하면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시집의 제목이었고, 그 이유로 이런저런 자료로 시인에 대해 알아봤고, 또 그 제목으로 쓴 수필이 너무 아름다웠고, 그것보다 아름다운 가족들의 이야기를 티브이에서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라고 열네 살 소년이 묻는다.
돌아와 우연히 그 소년과 시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는 그에게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라고 물었다.
언제나 선 듯 대답하지 않는 그는 그냥 말을 흐린 체 묵묵히 운전을 했다. 침묵이 어색한 내가 다시 말했다.
"내 마음의 온도는 수시로 아주 급격하게 변해. 늘 같지 않아. 급 뜨거워졌나 싶으면 또 금방 급랭하는 것 같고, 나도 내 마음의 온도를 모르겠어. 하도 오락가락해서.. 그래서 내 마음은 힘이 많이 든가 봐"
그의 옆자리에 앉아 독백하듯 내뱉았다.
"그렇지? 맞아 그러네. 수시로 변하는 게 사람 마음의 온도인 것 같아."
나는 이때 그래 글 하나 쓸 정도의 소재는 되겠다 생각했다. 내가 해놓고도 그 말이 참 좋았다.
금방 기분이 좋아 뜨거워지다가 서로 맘이 상하면 금방 살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게 사람 마음이란 걸
그래서 마음이 힘든다는 걸 그 제목하나로 깨우쳤으니 말이다.
그러다 며칠 지난 어느 날 대학생 세 명에게 물었다.
"자유롭게 대답해 봐, 정답은 없어"라는 전제를 깔고 물었다.
"너희들 마음의 온도는 몇 도 일 것 같아?"
한 남자아이가 말했다. 우리 육체처럼 36.5도가 아닐까요?
한 여자아이가 말했다. 저도 36.5도라고 생각해요.
" 가만있던 남학생이 말했다. 저는 지금 여자친구랑 사귀느라 마음이 뜨거우니까 한 40도 같아요. "
그래 맞다. 마음의 온도는 36.5도이기도 40도이기도 한가 보다
"선생님 마음의 온도는 몇 도예요?"
"나?"
"네"
"난 100도? 난 지금 마음이 막 끓어. 앞으로 죽어야 할 날이 자꾸 다가오니까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마음이 막 끓는 것 같아."
그러고 우리는 웃었다.
그렇다
지금 내 마음은 막 끓고 있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일들을 이젠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므로, 그리고 마음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므로, 그 일을 할 때 즐겁고 에너지가 넘쳐나므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으므로, 그리고 내 인생의 계절도 가을로 접어들고 있으므로, 충분히 들끓을 수 있는 이유가 될 것 같았다.
캄캄한 길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한다.
지금 내 마음의 온도는 100도라 밤낮없이 들끓지만, 쉬이 지치진 않을까? 빨리 피는 꽃이 빨리 시들어 떨어지고, 불꽃이 뜨거우면 또 쉬이 식는다고 하던데, 나는 모든 상황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고 욕심내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내 마음의 온도가 평정을 찾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따뜻한 온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그 느낌을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뜨거우면 곁에 있기 부담스러울 테고, 또 차가우면 마음이 안 갈 것 같아서
적당히 따뜻한 사람이 되어 차가운 사람은 따뜻하게 데워주고, 뜨거운 사람은 적당하게 식혀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마음의 온도를 신체보다 좀 높은 50도쯤 맞춰볼까?
그러자면 마음 체온계가 필요한데,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