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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미소 Dec 09. 2021

면회

코로나19가 시작된 후로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위문다운 위문을 해 본 적이 없다.

엄마의 맨살을 만져본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98세의 엄마를 2012년 8월에 요양원에 모셨으니 벌써 만 9년이 지났다.


면회를 가면 이중창 밖에서 엄마를 만난다.

풍경이 드리워진 창문에 엄마의 얼굴이 덧 얹혀 희미하게 보이면 나는 몸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엄마가 선명하게 보이도록 한다. 엄마가 선명하게 보이면 눈높이를 못 맞추고, 눈높이를 맞추면 엄마가 흐리게 보인다.


더러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통역사 노릇을 해 주기도 하고, 또 더러는 얼굴을 마주 보며 통화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선생님의 통역이든 전화 통화든 이 상황을 알리 없는 엄마는 늘 의아해하신다.

"들어온나, 들어와서 놀다가 가~"

"엄마! 안된대. 못 들어간데. 나쁜 병을 엄마한테 옮길까 봐 지금은 안된대."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엄마는 손짓으로 나를 부르신다.


처음 면회를 갔을 때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엄마 괜찮아? 아픈데 없어? 미안해 엄마!"

아마 이 말만 백번도 넘게 한 것 같다.

멈출 줄 모르고 흐르는 눈물에 창문에 손바닥을 대니 엄마도 내 손을 잡으려고 손바닥을 마주 대셨다.

차갑고 딱딱한 느낌의 유리창에서 보드랍고 따뜻한 엄마의 체온을 느낀다.

"야가 왜 이래노, 왜 우노, 울지 마라!" 하는 감정 없는 엄마의 말 끝에

엄마의 두 볼에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다.

지금 엄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실까?


자주 오지 못하는 큰언니와 큰 형부는 벌써 하늘나라로 갔다고 하시고

나 바로 위의 언니는 존재조차 까맣고

유일하게 알아보시는 게 나 뿐이다. 아마도 엄마의 아픈 손가락 막내이기 때문인가 보다.

누가 물어도 내 이름을 부르신다.

"누군지 알아요? "하고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물어보시면

"내가 모를라꼬? 우리 막내 영임이!" 하신다.


자주 못 찾아뵙고, 가도 만질 수 없는 엄마를 유리창 안에 두고

유리창 밖에서 까맣게 마음만 태우다 오는 날들.....


저 얇고 투명한 유리가 이렇게 아득할 줄 몰랐다.


언제쯤 이 상황이 끝이 날까?

예방접종을 2차까지 맞으면 맨살을 만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 아득하게 멀어져 간다 그날이..


벌써 98세인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안아볼 수는 있을까?

마음이 탄다 매일매일

그러면서도 자주 가지 못한다.

가도 안타깝고 못 가면 죄스럽고.....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


보이지 않는 세균 때문에 보이는 엄마를 만지지 못하는 현실이

참 슬픈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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