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시작된 후로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위문다운 위문을 해 본 적이 없다.
엄마의 맨살을 만져본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98세의 엄마를 2012년 8월에 요양원에 모셨으니 벌써 만 9년이 지났다.
면회를 가면 이중창 밖에서 엄마를 만난다.
풍경이 드리워진 창문에 엄마의 얼굴이 덧 얹혀 희미하게 보이면 나는 몸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엄마가 선명하게 보이도록 한다. 엄마가 선명하게 보이면 눈높이를 못 맞추고, 눈높이를 맞추면 엄마가 흐리게 보인다.
더러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통역사 노릇을 해 주기도 하고, 또 더러는 얼굴을 마주 보며 통화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선생님의 통역이든 전화 통화든 이 상황을 알리 없는 엄마는 늘 의아해하신다.
"들어온나, 들어와서 놀다가 가~"
"엄마! 안된대. 못 들어간데. 나쁜 병을 엄마한테 옮길까 봐 지금은 안된대."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엄마는 손짓으로 나를 부르신다.
처음 면회를 갔을 때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엄마 괜찮아? 아픈데 없어? 미안해 엄마!"
아마 이 말만 백번도 넘게 한 것 같다.
멈출 줄 모르고 흐르는 눈물에 창문에 손바닥을 대니 엄마도 내 손을 잡으려고 손바닥을 마주 대셨다.
차갑고 딱딱한 느낌의 유리창에서 보드랍고 따뜻한 엄마의 체온을 느낀다.
"야가 왜 이래노, 왜 우노, 울지 마라!" 하는 감정 없는 엄마의 말 끝에
엄마의 두 볼에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다.
지금 엄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실까?
자주 오지 못하는 큰언니와 큰 형부는 벌써 하늘나라로 갔다고 하시고
나 바로 위의 언니는 존재조차 까맣고
유일하게 알아보시는 게 나 뿐이다. 아마도 엄마의 아픈 손가락 막내이기 때문인가 보다.
누가 물어도 내 이름을 부르신다.
"누군지 알아요? "하고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물어보시면
"내가 모를라꼬? 우리 막내 영임이!" 하신다.
자주 못 찾아뵙고, 가도 만질 수 없는 엄마를 유리창 안에 두고
유리창 밖에서 까맣게 마음만 태우다 오는 날들.....
저 얇고 투명한 유리가 이렇게 아득할 줄 몰랐다.
언제쯤 이 상황이 끝이 날까?
예방접종을 2차까지 맞으면 맨살을 만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 아득하게 멀어져 간다 그날이..
벌써 98세인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안아볼 수는 있을까?
마음이 탄다 매일매일
그러면서도 자주 가지 못한다.
가도 안타깝고 못 가면 죄스럽고.....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
보이지 않는 세균 때문에 보이는 엄마를 만지지 못하는 현실이
참 슬픈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