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고등학교 시험 때가 왔다. 출근길에 차를 빼는데 뭔가 충격은 없었는데 '퉁'하는 소리가 났다. 혹시 긁었나 해서 계속 신경 쓰이고 두려웠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다행히 긁은 건 아닌 것 같았다. 저번 시험에서도 실수해서 두려운 일이 있었는데, 시험주간만 되면 가해자 마음이 올라오는 것 같다. 가해자 마음은 나와 남을 힘들게 해서 가해하는 마음이다.
시험 감독 중에 내 가해자 마음을 보려고 노력했다. 가해자가 나라고 인정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니 잘 인정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나와 남을 가해하는 마음을 보는 게 두렵고 수치스러웠다. 계속 인정하려고 하다 보니, 피해자 마음이 올라왔다. 피해자가 나라고 인정해 볼 때, 가해자보다는 쉬웠다. 피해자인 내가 슬펐고 더 확실하게 나라고 느껴졌다. 나는 가해자와 피해자 중에 가해자는 많이 거부하고 피해자 쪽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 알아차렸다.
마음을 인정할 때, 거기에 빠지기가 쉽다. 가해자 마음을 느끼다 보면 되게 두렵고, 피해자 마음을 느끼다 보면 또 서럽다. 이런 때 과학 지식을 기억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진공에서 물질과 반물질로 갈라졌다가 또다시 소멸되는 쌍생성과 쌍소멸이 떠올랐다. 피해자 마음만큼, 가해자 마음이 있다 생각하니 그것이 나임을 인정하기 더 쉬워졌고, 둘이 합쳐 사라진다 생각하니 또 가해자, 피해자 마음이 또한 내가 아니라는 것도 인정하는 데 있어 더 쉬웠다.
나는 물리에 대해 항상 두려움과 열등감이 있었고, 내게 잘 맞지 않는 과목이나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리는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 있고, 수학은 내게 너무 어렵게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최근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교수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강의 중 교수님은 물리란 어떠한 대상이라기보다는 물리학자의 시선이라는 말씀이 인상 깊었다. 물리학은 암기할 것 투성이인 공식의 집합이나 수의 체계라기보다는 어떤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찾는 고민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본 뛰어난 물리학자들은 이미 어떤 현상의 이유에 대해 직관적으로 답을 알고 있고, 그 뒤 수학적으로 이를 확인해 본다는 자신의 경험담을 말씀해 주셨다.
확실히 이렇게 보니 좀 더 편한 것 같다. 누구나 어떤 일을 할 때 좀 더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다. 수학적 계산이나 엄밀함이 떨어지더라도 누구나 물리학을 할 수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신입들은 잘하려고 하다가 실수하고, 잘 못할까 봐 두려워하다 실수하지만, 숙련자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한다. 그냥 할 때 효율과 결과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떠한 마음을 주로 쓰고 살든, 그것은 나이지만 또 그것은 내가 아니다. 집착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좀 더 자유로워져도 된다. 삶이든 물리든 그냥 살되, 또 즐겁게 고민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