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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Feb 12. 2017

[오늘의 휴가] 17편 /츄라우미, 아름다운 바다

오키나와 북부 모토부 반도 해양박공원, 수족관, 오키짱극장, 매너티관 

"오늘" 생각난 장소에 대한 비정기적 매거진 NO.17

이번 여행은 그야말로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인생의 중대한 거사를 앞두고,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심각하다면 심각한 몇 번의 의견 다툼이 있었고,

나는  짧게나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이 아닌

나 혼자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


하지만, 현재 나는 직장인이고 항공권을 끊을 당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연차는 딱 하루뿐이었다.

연차가 생기는 족족 이런저런 이유로

 써버린 것을 탓할 시간도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인천에서 비행시간 2시간 내외인 곳(칭다오, 블라디보스토크, 대만, 마카오 등)을  

검색하다가 문득 오키나와가 떠올랐다.

2박3일은 너무 짧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일단 떠나고 싶었다. 아주 잠시만이라도 좋으니,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 앞으로 다가올 미래 등은 잠시 머릿속 밖으로 던져두고

비행기에 올랐다. 

츄라우미 수족관 때문에 오키나와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예전부터 오키나와라는 지역엔 조금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일본의 침략에 의해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린,

해상 왕국 류큐.

이제는 과거의 흔적만이 남은 그 땅에 한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오키나와를 소개하는 모든 정보 매체에서 츄라우미 수족관을 언급한다.

말하자면, 파리의 에펠탑, 로마의 콜로세움 같은 곳인건가.  오키나와의 시그니처.

츄라우미 수족관 때문에 오키나와에 간 것은 아니지만

이번 오키나와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라면 단연 츄라우미.

명불허전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츄라우미 수족관이 있는 해양박 공원에 머무는 동안에는

날씨가 맑았다. 해양박공원 저 너머로 보이는 섬도 평화로워보였다. 

츄라우미는 오키나와 말로

아름다운 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형 수조 바로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는 경험은, 색달랐다.

내가 물고기들을 구경한다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물고기가

밥을 먹는 나를 구경할 줄이야.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던 물고기 사진은 차마 찍지 못했다.

(잠시 동안,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도망을 갔다. 1분 뒤 다시 자리로 돌아오긴 했지만ㅜ)

 


물고기와 사람의 시각 정보가 다르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인지했지만.

수족관을 유영하는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나와 한참 동안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는 물고기는 정말 나를 구경하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서 고래 상어를 홀로 한참 동안 바라보던, 드라마 <상어>의 남자 주인공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츄라우미 수족관 때문에 오키나와에 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 장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점심을 다 먹은 뒤에는 오션 카페를 나와 계단을 걸어올라갔다.

대형 수조 뒤쪽으로 마련된 높은 좌석에 앉아 고래 상어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대형 스크린에 펼쳐지는 아이맥스 영화를 감상하는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한다.

츄라우미에서 고래상어 만큼이나 유명 인사는

오키짱. 나는 점심을 먹고 오후 한시부터 시작하는 돌고래쇼를 보기 위해 오키짱 극장으로 슬슬 걸어올라갔다.

돌고래 쇼가 시작되려면 십여분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오키짱 극장은 사람들로 꽉 찼다.

본격적인 쇼에 앞서 리허설을 하는 돌고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른 살이 넘은, 커다란 돌고래의 이름이 바로 오키짱이라는 풍문을 들었다.

오키짱쇼가 시작되자 너도 나도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기 시작한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20여분의 오키짱 쇼가 끝나고, 박수 갈채가 쏟아진다.

못내 아쉬운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지만,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오키짱 극장으로 분주하게 걸어오느라, 매너티 관을 그냥 지나쳤기 때문이다.


이 녀석, 배추와 당근을 먹느라 열심이다. 바다에 사는 초식 동물로, 듀공과는 친척뻘이라고 한다. 

옛날 뱃 사람들은 듀공과 매너티의 모습을 보고, '인어'라고 여기기도 했다고. 

특히 어린 새끼를 안고 젖을 먹이는 모습이 마치 사람을 연상시켰다고 한다.

원래  바닷속에서는 해초를 먹는 동물이라지만, 이곳에서는 당근과 배추 등을 먹고 있는 모습이,

이곳이, 진짜 세계(바다)를 모방한 가짜 세계(수족관)임을 실감나게 했다.

진짜 바다에는 (아마도) 당근이 없을 테니. 

여행을 다녀와서 어머니께 고래 상어와 매너티 등의 모습을 찍은 위 사진들을 보여드렸더니, 

제 아무리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의 대형 수조를 갖춘 아쿠아리움이라고 해봐야, 

그 드넓은 바다에 비할까, 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평범한 감성의 소유자인 나는, 

빛(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오는 대형 수조에서 헤엄치는 고래 상어와

관람객들이 제 사진을 찍든 말든  무심히 먹이를 

먹던 매너티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바다거북관도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아직 도전해 볼 엄두는 안나지만, 언젠가 스쿠버 다이빙을 하게 된다면

바닷속에서 꼭 만나고 싶은 바다 생물이 바로 바다거북이기 때문이다.

바다거북관까지 구경한 다음에는 오키나와 향토 마을로 향했다.

이곳은 17~19세기 오키나와의 민가를 재현한 곳이라고 한다.


한편, 해양박 공원에서는 꽃 축제가 한창이었다. 

형형색색의 꽃들을 보자니,

벌써 봄 내음이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떠나온 곳은 한파주의보에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어야만 하는데,

현재 걷고 있는 이곳의 햇볕은 따가워지기 시작한다. 목덜미에는 벌써 땀이 줄줄 흐른다.

더위 앞에서 장사는 없는 법.

어느 정도, 구경도 했겠다 이제는 시원한 에어컨이 켜져 있을 

투어 버스로 돌아갈 시간인 듯 했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뒤를 한번 돌아보았다.

여전히, 그곳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츄라우미 수족관의 입장료는 성인 1,850엔.

나하 시내에서 츄라우미 수족관까지 운행되는 얀바루 고속 버스는 편도 2,000엔.

왕복 교통비 등을 고려해보면, 

수족관 입장료가 포함된 일일 투어 버스를 신청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인듯 하다.

나는, 숙소가 위치한 겐쵸마에 역에서 출발하는 일일 투어 버스를 신청했다. 


현재, 한국인 가이드가 있는 투어 버스는 

최소 4인 이상 출발인 지노 투어 버스, 최소 2인 이상 출발인 유투어 버스 등이 있다.

한국인 가이드는 없지만 오키나와 현청에서 직접 운영하는 점보 투어 버스(힙합 버스)도 

많은 뚜벅이 여행자들이 이용하는 투어 버스다.

대부분의 일일 투어 버스들이 오키나와 현청 앞을 경유해 출발하기 때문에

나하 시내에 숙박을 할 예정이라면, 

현청 역(겐쵸마에) 역에 숙소를 잡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나 역시 이러한 점(조식을 먹고, 여유 있게 걸어가서 일일 투어 버스를 탈 수 있는 조건)을

고려해 숙소를 선택했다.


무엇보다, 츄라우미 수족관을 포함해 해양박 공원에서 3시간 정도 머물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다.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로는 모두 자유 시간이었고. 

물론 렌트를 해서 왔다면, 더 많은 자유를 만끽 할 수도 있었겠지만,

뚜벅이 여행자인 나에게는 일일 투어 버스를 이용한 것이 

시간적인 면에서나 비용적인 면에서나 꽤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츄라우미에서 보낸 시간이 조금 부족했다고 여겨진다면,

그땐 렌트를 해서 다시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저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이에" 섬이라는 곳에 가볼 수도 있겠지. 

진짜 바다를 보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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