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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Feb 15. 2017

[오늘의 휴가]18편/슈리성의 정전을 찾아서

류큐의 왕궁 슈리성

"오늘" 생각난 장소에 대한 비정기적 매거진 No.18


오키나와의 첫번째 목적지, 슈리성.

슈레이몽(수례지문)까지는 잘 찾아왔다. 해외에서 매우 요긴하게 쓰인다는 구글맵을

보겠다는 계획 아래 이번에는 데이터로밍을 해갔지만 생각보다 신통치 않다.

호텔에서야 무료 와이파이가 빵빵 터지지만, 길을 나서니 SNS로 메세지 주고 받는 것조차

답답할 지경이다. 차라리 유심칩을 구매할 걸 그랬나, 포켓와이파이를 대여할 걸 그랬나

후회하는 것도 잠시, 내겐 며칠 간의 폭풍 검색으로 저장된 머릿속 지도가 있었다.

우리나라 블로거들이 아니었다면, 나 같은 길치는 실시간 인터넷 연결이 잘 안될 때

같은 자리를 뱅뱅 맴돌며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슈리성에서 슈리역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랬다. 결국 슈리역이 어디인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길 건너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만약 길을 물어보지 않았다면, 나는 또 엉뚱한 방향으로 계속 직진했을 것이다. 슈리성에서도 분명히 직접 두 눈으로 표지판을 보고도 엉뚱한 길로 가버렸으니까.)

모노레일(유이레일)을 타고 종점인 슈리역에서 하차, 남쪽 출구로 나가서,

직진하다 보면, 곳곳에 이러한 안내판들이 나온다. 안내판을 따라 계속 직진하여 걷다가

로손 편의점이 보이면,

로손 편의점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간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슈리성 맛집으로 손꼽히는 아시비우나도 보이고,

(원래는 슈리성 방문 후 아시비우나에서 저녁 식사를 할 계획이었으나,

이날 식당이 쉬는 날이라 가지 못했다.)

붉은색의 슈리성 모습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아, 드디어 슈레이몽의 모습이 보인다.

류큐 왕국의 왕궁이었던 슈리성은 우리나라로 치면, 경복궁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경복궁을 흥선대원군 때 중건한 것처럼

1945년 태평양 전쟁 때 전소된 슈리성을

1992년 일본의 국가 주도 사업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1992년 미국으로부터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반환된지 20주년 되는 해.

오키나와는 1945년부터 1972년까지

27년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슈례이몽은  슈리성 공원으로 입장할 때 가장 먼저 통과하는 문이니,

그러니까 굳이 비교하자면 광화문쯤 되려나.

다들 슈례이몽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남기느라 분주하다.

편액의 수례지방은  (류큐는) "예의를 중시하는 나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슈리성 성곽의 정문은 환희문(칸가이몬)이었다.

환희문을 지나야만 유료 관람 구역인 정전(조회 등 왕의 집무공간)이 나오는데,

나는 이 사실을 잊어버린 채 슈레이몽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고 돌아도, 보이는 건 주차장 표지판 뿐.

결국 관광 안내소에 가서, 티켓 오피스가 어디있냐고 물어보니까

내가 지나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면 된다고 한다.

슈레이몽을 등지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칸가이몬으로 향하는 입구 표지판이 있었는데,

나는 슈레이몽을 보자마자

"와,슈레이몽이다. 다 왔다. "

신나게, 슈레이몽을 통과해서 칸가이몬의 반대방향으로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슈리성 공원은 일부 유료 관람 구역을 제외하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기 때문에 티켓 오피스가 어디있는지 모르는 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슈리성에서 꼭 정전을 보리라 다짐했다.

경복궁을 관람 할 때도 정전(正殿)인 근정전을 안 보면 왠지 서운하니까.


우여곡절 끝에 관광안내소 직원의 도움으로 드디어 칸가이몬을 찾을 수 있었다.

칸가이몬을 지나면,

유료 규역의 입구이자, 매표소로 사용되는 광복문이 나온다.

원래 슈리성 입장료는 성인은 1인(820엔)인데,  매표소에

모노레일 1일권을 보여주면 할인 적용, 660엔으로 입장 할 수 있다.

(모노레일 1일 승차권은 티켓 구입 시각부터 24시간 동안 무제한 승차할 수 있는 교통 패스로, QR코드 부분을

지하철 개찰구에 찍으면 된다. 후쿠오카 여행 때 남았던 동전 700엔으로 승차권을 구입했는데,

슈리성 공원 입장료까지 할인 받아서 기분이 UP되었다!)

티켓을 끊고 안으로 들어가니,  때마침 류큐 전통 무용 공연이 시작되었다.

류큐의 전통 무용 공연 시작시간은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4시로

하루 총 세번 열린다.

공연 관람을 마치고 정전에 입장하려고 하는데

입구에서 비닐 봉지를 준다. 정전 내부에서는 신발을 벗고 관람해야 한다.

옥좌 위 '중산세토'라는 편액은 청의 강희제가 내린 것이라고 한다.


슈리성의 정전(세이덴)을 둘러보면서 든 생각은,  

일본과 중국의 문화가 배합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오키나와의 문화를 흔히 찬푸르(퓨전)라고 한다는데,

슈리성의 건축 양식 역시 그러했다.

붉은색의 치장은 중국을 떠올리게 했고,

목조로 지어진 건물은 일본을 연상시켰다.

류큐 처분으로 일본에 강제 병합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왕국 류큐,

그 바스라진 역사의 흔적을 되살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침략자들이었다.

아라사키 모리테루의 <오키나와 현대사>라는 책에 따르면,

슈리성 복원 프로젝트는 일본에 반환된 이후에도

좀처럼 동화되지 않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이벤트였다고 한다.

오키나와는 태평양 전쟁 때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곳이었으며,

패전 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집단 자결을 강요했다.

이후 27년간 미군 통치를 받으며,

오키나와는 미군 기지화 되었고,

다시 일본으로 귀속된 지금도, 미군은 여전히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다.

원래 정전 앞에 걸려있었다는 '만국 진량의 종'

만국진량이란 세계를 잇는 가교라는 뜻으로,

이 단어에서 동아시아의 해상 무역 거점으로

번성했던 류큐 왕국의 정체성과 자주성이 엿보인다.

스스로를 세계를 잇는 가교라고 부를 만큼으로

지리적 요충지였던 류큐,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류큐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되었다.

슈리성 관람을 마친후에는 킨조초 이시타다미미치 돌담길을 걸었다. 입구에 흥선사가  보이면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길에서 만난 분들은 모두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셨다.


돌담길 초입에는 테라스에 앉아 나하 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카페도 있지만

내가 카페에 도착했을 무렵은 이미 문을 닫았다.

카페의 폐장 시간은 오후 다섯시.

한때는 독립 왕국의 수도였던 곳.

슈리성 공원 일대에서는 나하 시내를 조망할 수 있었다. 만약 류큐 왕국이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완전한지배를 받지 않았다면  혹은

제2차 대전 이후 일본으로부터

독립했다면 ?  

한 나라를 이루는 요소인 국민,주권, 영토

빼앗기기는 쉬워도

되찾기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현재 오키나와의 독립을 주장하고 염원하는 정당이 있다고 들었다.

만약 우리가 8.15에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하지 못했다면?

오키나와의 역사에 우리 나라의

역사가 겹쳐보였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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