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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Feb 27. 2017

[달쓰반] 56편/미식견문록

요네하라 마리 지음/이현진 번역/마음산책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문화 리뷰 No. 56

터키쉬 딜라이트. 얼마전 회사 업무 때문에 처음 알게 된 단어이다.

그때 터키쉬 딜라이트의 사진을 보면서 이런 과자 종류도 있구나, 한번 먹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이 말을 들은 동생은 동네의 홈플러스에서 자신이 사다준 터키쉬 딜라이트의 맛을 벌써 잊었냐고 했다.

동생은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뭔가 새로운 것을 보게 되면 그냥 지나치질 못하는 성격이다.

최근 대만에 가게 되신 어머니한테는 누가 크래커를 좀 사다달라고 졸랐다.

그런 동생이 터키쉬 딜라이트라는 과자의 패키지를 보자  이게 뭐지? 라는 호기심이 들어서

몇 통이나 집에 사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쫀득쫀득한 식감에 무지 달았던 과자 있잖아. 그게 터키쉬 딜라이트야.

동생이 식감을 이야기해주자, 이제서야 기억이 조금 난다.)




그런데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에

터키쉬 딜라이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관심있게 읽었다.

요네하라 마리는 '진짜 할바를 찾아서'라는 챕터에서 터키꿀엿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부모님의 일 때문에 소녀시절 살게 된

프라하에서 먹게 된 터키꿀엿의 맛에 반했는데 러시아에서 온 친구 이라가

"흥, 할바가 백배 더 맛있을 걸?" 이렇게 말하며,

모스크바에 다녀올 때 구해오겠다고 한다.

여름방학이 끝난 후 이라는 약속을 지켰고,

요네하라 마리는 납작한 파란색 구두 약 통 같은 용기에 들어있던

연갈색 연고와 같은 그것, 할바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맛있는 정도가 아니다. 이렇게 맛있는 과자는 난생처음이란다.


그 이후로 요네하라 마리는 아버지가 모스크바로 출장을 떠나실 때도

할바를 구해달라 부탁드렸고,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나 히바의 바자르,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등지에서

할바라고 불리는 것을 구해보았지만

늘 낙담하게 되었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24h3150a

그 어느 것도 이라가 사다준 그 할바의 맛에 견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공항 내 상점에서 산 할바 역시 이라의 할바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런데, 그리스에 여행갔다온 친구가

"네가 늘 말하던, 할바라는 과자 아테네에서 발견했어"라며

초콜릿 같이 생긴 것을 전해주었다.

빨간 바탕에 금색으로 'XAJIBA'라고 인쇄되어 있는 과자였다.

동시통역사인 요네하라 마리는 키릴 문자는 그리스에 기원을 두었다고 배웠지,

라고 생각하며 할바를 입에 넣었다.

 "와~!"

바로, 이라가 맛보여준 할바의 맛이었다.


요네하라 마리는 그때부터 할바의 판도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할바는 러시아의 과자라기보다는

구소련의 이슬람권 사람들이 만드는 과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소련 땅에 있는 이슬람 지역에서부터

동유럽의 옛 오스만투르크 지배 아래 있던 나라에까지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불가리아의 소피아, 루마니아의 부큐레슈티에서도 할바를 본 적은 있다고 했다.

그러나 20년 전에 친구가 그리스에서 사다 준 할바의 맛과 견줄만한 것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디시어로는 halva, 터키어로 helva, 아라비아어로는 helwa라고 쓰는데

모두 다 똑같은 과자를 일컫는 말이다.

요네하라 마리는 추측건대

독일인이나 체코인은 할바를 흉내 낸 과자를 터키 꿀엿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 아닐까 하고 말한다.


할바의 기원을 찾던 요네하라 마리는

랜덤하우스 영어사전에서 'Turkish Delight'라는 표제어를 찾았다.

'터키과자. 젤라틴에 가루설탕을 뿌린 젤리. 규히엿의 일종."

이 대목에서 혹시!를 외친 요네하라 마리.

할바를 먹었을 때의 그리운 맛은 여기에서 유래된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한 요네하라 마리는

주변인들에게 터키쉬 딜라이트의 품평? 을 요청했는데

모두 입을 모아

"그딴 건 두번 다시 먹고 싶지 않아요!"

라며 질색했다.

그 중 F씨라는 지인은 끈적끈적하고 텁텁한 단맛이 나는

터키쉬 딜라이트에 독극물을 넣어 살인을 저지르는 내용의

추리 소설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죽은 피해자 외에는 터키쉬 딜라이트를 아무도 입에 댄 사람이

없었다는 설정이었다고 한다.

요네하라 마리의 지인 중 루마니아 전문가는

터키쉬 딜라이트가 로쿰(Loukoum)이라 불리는 과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래서 요네하라 마리는 인터넷의 영영 사전에서

로쿰을 찾아보았더니 터키쉬 딜라이트와 같은 것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하지만 속시원히 할바의 기원에 대해서는 찾지 못했던

요네하라 마리는 외교사연구자이자 요리연구가인

W. 포흘레브킨의 마지막 저서

<요리예술대사전-요리법 첨부>라는 책에서

할바에 대해 한쪽이나 할애하여 상세하게 기술한 페이지를 발견한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다.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발칸반도에서 먹고 있는 달콤한 과자.

이란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되며 할바 기술자들은 갓다랏치라고 불렸다.

할바 제조는 특수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현재 기술자들이 손수 만드는 할바가 아직 남아있는 곳은

이란, 아프가니스탄, 터키 뿐으로

이 지역에서만 최고의 할바를 먹을 수 있다.

공업생산된 할바는 수제에 비해 질이 형편없다.

할바의 성분은 지극히 단순하다.

설탕과 꿀, 비누풀의 뿌리줄기, 유분이 많은 재료(아몬드 등의 땅콩 종류나

해바라기씨나 참깨씨), 거기에 녹말가루가 끈끈이 역할을 하고

그외 많은 향료를 가미한다. 이 평범한 재료가 할바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모든 재료가 포말 상태가 되어야 하며 바로 여기에 갖가지 기술이 동원된다.'


포흘레브킨의 저서를 읽게 된 요네하라 마리는

각 나라의 전통과자로 불리는

누가와 터키 꿀엿과 할바와 규히엿과 라쿠간과 폴보론이

혈연 관계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고대와 중세에 걸쳐 유라시아 대륙에서 손에서 손으로

그 제조비법이 전해지며

각 나라에서 저마다의 다른 이름을 갖게 된 과자, 할바.


그야말로, 미식견문록이라는 책 제목에 걸맞는 이야기를 들려준

<진짜 할바를 찾아서>는 이 책에서 매우 재미있게 읽었던 챕터였다.


언젠가 터키에 가게 된다면, 진짜 할바를 먹어보고 싶다.

최근 터키의 불안정한 정세 때문에

지금 당장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터키는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중 한 곳이긴 하다.

터키는 동서고금의 교차로인 곳이 아닌가.


그 다음으로 기억나는 챕터는 <여행자의 아침식사>

요네하라 마리는 러시아 사람들이 듣기만 자지러지는 우스갯소리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했다.


'남자가 숲속에서 곰을 만났다. 곰은 당장 남자에게 물었다.

넌 뭐하는 놈이냐?

여행자인데요.

아니, 여행자는 나다. 넌 여행자의 아침식사고."


처음에는 뭐 이런 싱거운 농담에 아랫배가 흔들릴 정도로 숨이 넘어가는지

의아했는데, 아무래도 '여행자의 아침식사'와 관련된 게 아닐까 하고 짐작하게 되었다.

그 발단이 된 건 다음과 같은 싱거운 이야기였다.


'밀림 투어 참가자들은 첫날부터 불만을 터뜨렸다.

모집 광고에는 아침식사도 포함된다고 하지 않았소. 도대체 어찌 된 거요.

그래, 맞아. 우린 배고파요. 이건 사기 아니야?

화가 치민 참가자들을 앞에 두고 가이드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숲속에는 여기저기에 나무 열매와 버섯이 많이 있어요. 맑은 개울에는

물고기가, 나무 그늘에는 짐승들이 숨어 있고요.

아무튼 밀림에는 여행자의 아침식사가 지천으로 널려 있답니다."


'여행자의 아침식사'라는 단어에서 러시아인들은 또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렸다.

요네하라 마리와 그녀의 통역을 들은 일본인들만 이 폭소에 동참하지 못했다.

자신의 통역 실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조바심이 난 요네하라 마리는

사전 뿐만아니라,  이반 크르일로프 우화집도, 관용어구 사전도 고사상어 사전도

조사해봤지만, '여행자의 아침식사'라는 어구를 찾을 수는 없었다.

러시아 친구들도 이 단어만 들으면 크크크크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왠일인지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건 말야, 소련에서 생활을 해야 우스운  말이야. 모르는 사람한테는

이유를 설명해야 통하지도 않을 거고. 흐흐흐흐."

이런 식이라 러시아인들이 '여행자의 아침식사'에 그토록 숨넘어가게 웃어대는지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었던 요네하라 마리는

마침내 그 까닭을 알게 된다.

모스크바 대학의 한 교수로부터 들은 우스개 하나 때문이다.


'일본의 어느 회사가 여행자의 아침식사를 우리나라에서 대량으로 사들일 모양이라던데

아니, 그 맛없는 걸 먹는 국민이 러시아 말고 또 있단 말인가?

아니, 통조림 내용물 때문이 아니라 깡통 품질이 좋아서라네'


러시아인들이 그 단어만 들으면 까르르르 자지러지는

여행자의 아침식사는 바로 통조림이었던 것이다.

요네하라 마리는 퉁명스런 작명법까지 소련답다고 말한다.

보통명사가 그대로 상품 이름이 되다니.

소련 시절에는 백화점 이름조차 GUM이던 시절이 있었단다.

이름하여, 국립백화점. GUM은 국립백화점의 이니셜이다.


요네하라 마리는

'여행자의 아침식사' 역시 생산을 신성시 하고,

상업 특히 판매 촉진을 죄악시하는 금욕주의적 미의식을 반영한다고 꼬집는다.


그런데, 도대체 그 맛은 어떠한가?

'여행자의 아침식사'의 맛이 궁금해진

요네하라 마리는 러시아 출장길에 들렀던 슈퍼마켓에서

우연히 한 통을 구입하게 된다.

고기를 콩과 채소와 함께 삶아 굳힌 것 같은데

내용물이 곱게 다져져 있지 않아, 이건 강아지용 통조림이 아닌가

생각했던 요네하라 마리는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 먹고 산속을 헤메다가

곯은 배를 움켜쥐고 밤을 지새운 이틀날에 이것을 먹는다면

맛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솔직한 시식평을 내놓는다.

최근에는 여행자의 아침식사가 통 보이지 않기에

시장경제로 이행한 뒤로는 통조림 생산을 그만두었나 생각했는데

러시아의 배우가 기고한 글을 읽고서

그동안 러시아 사람들이 숨넘어가게 웃어댔던 이야기가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인기상품과 묶어 판매해야 할 정도로

인기없는 통조림을 야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임

깨닫게 된다.


맛없는 통조림의 생산과 판매를 방치한 채

그것을 야유하고 풍자하는 우스개를 만드는 쪽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

러시아인들을 보고, 요네하라 마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막히게 비생산적인 열정, 그야말로 지극히 문학적인 재능에 감탄을 금지 못하겠다고.


요즘은 러시아 식료품점에서 이런 통조림들은 찾아볼 수 없고

화려한 모습의 수입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한다.

시장 경제화 라는 이름 아래

멋없고 촌스러운 러시아의 통조림들이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고보니, '여행자의 아침식사'마저도 이제는 그리워질 지경이라고

회상하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나도, 그 통조림 한번 구경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번역한 이현진씨는 저자의 사후,

출간을 기념해서 열린 모임에서 우연히 여행자의 아침식사를 맛보게 되었는데

'이 정도면 먹을만 하지 않아요?'라는

요네하라 마리의 동생, 유리씨의 견해에는 솔직히 수긍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입에서 바로 뱉어낼 정도는 아니었던 것은

이 책을 읽으며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역자 후기를 적었다.

이현진씨의 말에 따르면 콘비프보다는 조금 느끼한 맛이라고 한다.


가끔 회사에서 각종 수입과자들의 사진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각 나라의 과자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주는 책이 있으면 좋을 텐데, 라고.

(물론, 그런 책이 이미 있을 수도 있다. 내가 모를 뿐)


어쨌든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은 나의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는 책이었다.

아니, 오히려 과자보다 더 넓은 범위의 세계 음식 사전이 아닌가.

캐비어, 감자, 인도 핫케이크, 양배추, 주먹밥, 보드카 등등


<로쟈의 인문학 서재> 저자인 이현우가 쓴 추천사 중 일부로

이 리뷰를 마무리한다.

'먹는 것과 산다는 것에 대한 이 유머스러운 성찰의 기록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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