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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Apr 13. 2017

[달.쓰.반] 60편/ 지금은 타이핑 중

작가의 벽과 매체 속 타자기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문화 리뷰 No. 60

'작가의 벽'(WRITER'S BLOCK) 이란  말이 있다.                            

작가가 슬럼프에 빠져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을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작가의 벽을 소재로 하거나 극의 출발점으로 삼는 영화들도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리미트리스'이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화는 리미트리스는 아니다.

이 영화는 아직 나의 낡은 서랍 속에서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서랍 대방출을 하게 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그럼, 작가의 벽에 부딪혔을 때 작가들은 어떻게 하는가?

지난주부터 방영된 TVN의 새 금토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에서는

작가의 벽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를 대신해 글을 써줄 유령 작가가 나타난다.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영화 <유령 작가> 또한 대필 작가 즉 고스트 라이터가

등장한다.)


<시카고 타자기>에 등장하는 유령 작가의 이름은 유진오(고경표).

진수완 작가가 유진오와 한세주(유아인)의 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자못 기대된다.  

사실, 내가 이 리뷰를 쓰게 된 계기 역시 슬럼프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딴짓'을 하고 싶어져서.

개인적으로 작업하던 일이 도저히 진행이 안되어서

최근에 본 드라마 이야기나 해볼까 하고.

그런데 타자기가 드라마의 메인 아이템이다보니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작가들은  대부분 이중 생활을 하고 있다.  생계에 필요한 돈은 본업으로 벌고,  남은 시간은 최대한 쪼개어 글을 쓴다.  이른 아침이나 밤늦게, 주말이나 휴가 때.  윌리엄 칼러스 윌리엄스와 루이 페르디낭 셀린은 의사였다.  T.S. 엘리어트는 한때 은행원이었고,  나중에는 출판업에 종사하였다.



프랑스  시인인  자크 뒤팽은 파리에서 미술관 부관장을 일하고 있었다.  미국  시인인 윌리엄 브롱크는 40년이 넘도록 뉴욕 북부에서 가업인 석탄과 목재상을 경영했다.

돈 드릴로, 피터 캐리, 샐먼 루시디,

엘모어 레너드는  광고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의사나 정치인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쓰는 것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신들의 호의를 얻지 못하면(거기에만 매달려 살아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있을진저),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비바람을 막아 줄 방 한칸 없이 떠돌다가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작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했고

각오도 되어 있었으니까 불만은 없었다.

그 점에서는 정말 운이 좋았다. 물질적으로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었고, 내 앞에 가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겁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한 것은 재능 - 나는 이것이 내 안에 있다고 느꼈다 -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그것뿐이었다.


전 세계를 막론하고,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되겠는가?

퇴근 길에 들은 팟캐스트에서 유시민 작가가 인세 수입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정확한 액수를 말한 건 아니지만,  내 예상보다는 훨씬 적었다.

(인세가 한달에 백만원 정도 들어온다고 쳐도,

그 돈으로는 밥 먹고 살기 힘들다, 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유시민 작가가 전방위 글쓰기를 하는 이유 역시 생계를 위해서라고.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비롯해 수많은 스테디셀러,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유시민 작가도,

단지 '글' 하나만 써서 먹고 살기는 힘든 시대다.

그래서 작가들은 강연과 강의를 통해 부수적인 수입을 얻는다고 한다.


(내가 유시민 작가의 생계에 얼마나 보탬이 됐나, 집에서 책을 찾아봤더니

5년 전에 산 <후불제 민주주의>가 - 과장 좀 보태서- 손때 하나 안 묻고,

서랍 속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이렇게 새 책을 사놓고 몇년 지날 때까지 안 보는 버릇은 쉽게 못 고칠 것 같다.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집에 유시민 작가의 책 몇권이 더 있었다.

내가 바로 읽든, 안 읽든, 백원이라도 통장에 보태주고 싶어서. 이건 팬심이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항소이유서>를 읽고 팬이 됐다.

시카고 타자기의 전설(임수정)처럼 차마 덕질이라고는 못하겠다.)



폴 오스터는 <빵 굽는 타자기>에서 냉혹한 현실과 생계형 글쓰기에 대해 말한다.

폴 오스터는 젊은 시절 폴 벤자민이라는 필명으로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장르도 가리지 않았다. 그에게 타자기는 빵을 구워내는 생계 도구였다.


"그는 얼마 전부터 포르노 전문 출판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면서,  외설 소설 쓰는 솜씨를 시험해 보고 싶으면 작품 한 편 당 1500달러에 사줄 테니 한번 써보라고 말했다. 나는 기꺼이 그 일에 덤벼들었지만, 30장정도 쓰고 나자 영감이 차츰 사라졌다. 나는 포르노를 쓰는 대신, 겉만 요란한 학생용 잡지에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내 기사에 필명을 사용했다. 폴 퀸. 고료는 서평 하나 당 25달러였다."


폴 오스터라는 명성을 얻기까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글을 써왔는가,

<빵 굽는 타자기>에서 그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타자기 얘기를 하다보니까,  또 한편의 영화가 생각났다.

<사랑은 타이핑 중>이라는 프랑스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타이핑이 스포츠였던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사랑 영화다.


'독수리타법'을 구사하던 로즈는 훈련을 거쳐 세계적인 타이피스트로 성장한다.

물론, 그녀의 멘토가 되어준 사장 루이와 '연애'도 한다.


타자기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고전적인 타자기 한대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 한글박물관에서 공병우식 타자기를 본 적이 있다.

종로 공안과의 설립자 공병우 박사는 한글 타자기 개발에 앞장 서며

평생 한글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다.

공병우 박사가 개발했다는

투박한 모습의 타자기가 인상 깊었다.


지금은 태블릿PC, 혹은 휴대폰과

블루투스 키보드를 이용해

지하철에서도 별도의 저장매체 없이

 바로 웹상에 글을 쓸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한 디바이스들 덕분에 깊은 사고를 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막 쓰기도 한다.

(이를 테면 바로 지금처럼)


하지만, 아날로그식 타자기로 작업을 할 때는

한자 한자 정성을 들여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정 테이프를 끼우는 것도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고.

이런 기능조차 없는 타자기라면 오탈자가 생겼을 때는 처음부터 다시 타이핑을 해야 할 테니까.


이 글을 쓰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출근을 하기 전에는

개인적인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는 관계로

여기서 그만 이 글을 접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작가의 벽이든, 화가의 벽이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이 슬럼프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은,

강제적인 마감 환경을 설정해보는 것이다.


직장인에게는 '출근'이라는

매일 매일의 빅 이벤트가

시간적 여유를 빼앗아주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딴짓하지 말고 작업하자,

일단 뭐라도 하자.  

- 토하고 다시 삼키더라도, 일단 토하고 보자는, 너무 안일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다보면 김중혁 작가의 에세이 제목 대로

뭐라도 되겠지


 (  <시카고 타자기> 에서는 한세주가 슬럼프에

빠지기 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글이 막힐 땐 어떻게 하냐고요?
글 막힘은 투덜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기 위해 꾸며낸 변명이 아닐까요?
하하하. 제 말이 아니라,
영화배우이자 각본가인 스티브 마틴이 한 말입니다. )


밤새워 작업하고 출근하면,

커피 일곱잔으로도 버티기 힘들다,

그러니 잠을 잘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일단 뭐든 시작하고 보자.

(회사에 내가 퇴근 후에 개인적인 작업으로 바쁘다는 걸 티 내봐야 좋을 거 하나 없으므로

졸지 않으려면 무조건 시작부터 하자.)

라는 무시무시한 결론을 내려줄지도 모른다.


Ps. 마지막으로

지금도 타자기를 사용하는 작가가 있는지 궁금해

웹서칭을 해보았다.

영화 감독인 우디 앨런은 지도 대본을 쓸 때 컴퓨터 대신 40달러를 주고 산 올림푸스 타자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10대 시절, 구입한 타자기를, 환갑을 넘은 지금까지도 매일 아침 글을 쓸 때 사용하는 것이다.                                                

개그 대본부터, 영화 대본, 신문 칼럼까지

모두 이 타자기로 써냈다니

그야말로 '빵 굽는 타자기'다.

이미지 및 내용 출처

http://www.openculture.com/2013/01/woody_allens_typewriter_scissor_and_stapl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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