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P] 16편/ 惡女(악녀)

by 이야기술사

Madam Movie Poster No.16

惡女(악녀)

2017년 6월 8일 개봉/ 감독 정병길


정체성이 확실하다.

포스터 한 장으로 영화의 기·승·전·결을 모두 알 수 있다.


제70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분에 초청된 포스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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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시리고 푸른 복도에 그녀의 뒷모습이 눈에 띈다.

뜯어진 천장에서 굵은 전선들이 무슨 덩굴 식물 마냥 늘어져 있다. 복도는 좁고 지저분하다. 망가진 기계나 깨진 유리, 폐전선 더미 그리고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제야 보인다. 그녀의 오른손에 들린 작은 총이. 늘어진 전선 상태로 보아 전등은커녕 전기 자체가 흐를 것 같지 않지만 형광등이 켜져 있다. 용케도 불이 들어와 있지만 어쩐지 그녀의 앞에 놓인 길 역시 그녀가 지나 온 길 못지않을 것 같다.


오프닝.

“뭐 하는 년이야?”

퍼렇게 날 선 칼을 든 남자들이 묻는다.

대답 대신 총알이 날아간다. 총알이 박히고 피가 튄다.

순식간에 남자들이 우수수 쓰러진다.

카메라는 그녀의 시선이다. 그래서 그녀는 보이지 않고 그녀의 숨소리만 들린다.

총탄을 갈아 끼우는 잠깐 동안 멈추는 것 말고는 쉼 없이 남자들이 달려든다.

누군가의 반격에 총을 떨어뜨린다. 이제 칼이다.

그녀에 맞춰 남자들도 칼을 들고 덤벼든다.

이제 피는 화면을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 넘친다.


영화의 정체성은 분명하되 장르는 좀 불분명한 것 같다. 액션보다는 호러에 가깝다. 그만큼 피가 강같이 흐른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악당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아이가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폭력의 구현자로 거듭난다. 그녀를 둘러싼 세계는 너무나 폭력적이어서 다른 어떤 것이 스며들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녀는 아버지를 죽인 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았다. 폭력에 둘러싸여 성장하다 보니 결혼도 출산도 그 안에서 이루어진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남편의 원수를 갚는다. 그 도중에 국가권력에 노출된다. 국가 역시 그녀의 쓰임을 알아본다. 이제 그녀는 사적 폭력집단에서 국가 폭력 집단으로 넘겨진다.


그녀를 둘러싼 세상은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그런 세상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녀를 사용하는 사람의 ‘총’또는 ‘칼’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그녀에게 ‘악녀’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개인 혹은 집단의 정체성도 없어 보인다. 그녀는 철저하게 ‘수단’ 또는 ‘도구’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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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프닝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뭐 하는 년이야?”

대답은 필요 없다.

그녀를 만나 그녀에게 저렇게 물을 수 있다면 다음은 없기 때문이다.

총알에 맞거나 칼을 맞거나.


※ 그나저나 요즘 영화나 드라마 속 악역은 하나같이 특정 지역 출신이다.

분단 직후 38선 이북의 친일파들이 남쪽으로 내려왔을 때와 비슷한 실정이란 말인가?

19C 후반, 생존을 위해 만주로, 간도로 이주했던 사람들이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나 그들 중 악인들만 대한민국으로 내려오기라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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