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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Mar 10. 2018

[SF를 찾아서] 3편/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관내분실,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外/허블/2018년 3월

그때그때 생각나면 찾아오는 비정기적 SF 장르 리뷰 No.3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출간되었다. 2016년 첫 공모를 시작한 한국과학문학상은

2017년 진행한 제2회 공모전에 장편부문을 신설하고, 중단편 부문 가작을 5편으로 늘려

규모를 확대했다.

이름, 성별, 직업 등 모든 응모자의 정보를

비공개한 블라인드 심사로 최종 심사까지 진행했다.

그중 선발된 중/단편 부문 대상작 1편과, 가작 4편(우수상은 미선정)의 작품이

이번에 도서출판 허블에서 출판되었다.

<관내분실>이라는 작품으로 중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한 김초엽 작가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라는 작품으로, 중/단편 부문 가작을 동시 수상했다.


P.43

"있지, 유민아."

"응?"

"엄마가 하나도 없어"

유민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지민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유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야... 우린 별로 사이 좋은 가족도 아니었잖아."

"하지만, 엄마랑 우리는 20년을 같이 살았는데, 어떻게  흔적이 없지."


P.54

만약 그때, 엄마가 선택해야 했던 장소가 집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중략)

그도 아니면 파일의 만드는 사람 서명만으로만 남는 형편없는 존재감으로라도.

자신을 고유하게만드는 그 무언가를 남길 수 있었다면.

(중략)

그래도 엄마는 분실되었을까.


김초엽, <관내분실> 中


대상작인 <관내분실>은 '마인드 업로딩'이 가능해진 시대를 배경으로

죽은 사람들의 기억을 보관하는 '도서관'에서 '관내분실'된 엄마를 찾아나서는

딸의 이야기이다. 마인드 업로딩이라는 개념 설명이 나오긴 하지만 작품에 나오는 기술은 특별히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SF는 결국 인간의 이야기,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SF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같은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우주 공간을 연결하는 웜홀의 발견으로 항성 간 이동방식이 달라지면서

가족과 이별하게 된 여성 과학자의 이야기다.


P.87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일 같이 올려다보았다.

정거장 로비의 천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우주 정거장'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사람 사는 곳의 양상은 우주정거장이라고 다르지는 않은지, 우주정거장에도 회사들이 귀찮은 관리의 책임을 떠넘기는 파견직이 있고

아직도 비좁은 지구 때문에 우주정거장의 수는 점점 늘어만 간다.

 어떤 남자가 안나씨라고 부르게 되는, 한 노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처음에는 별로 관계없어 보이던 두 사람의 진짜 목적이 대화가 거듭될수록 드러나게 된다.

한편의 짧은 SF 영화를 보듯, 두 사람의 대화를 집중해서 읽었다.

'먼 우주'와 '가까운 우주'를 가르는 개념은 뭘까.

단지 물리적 거리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가족과의 재회를 꿈꾸며, 마지막 선택을 하는

안나씨를 응원하게 되는 그런 소설이었다.

 

김혜진의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는 인공지능이 간병로봇이 된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돌봄대상1과 돌봄대상2 사이에서 고민하는 간병로봇의 이야기가 울림있게 다가왔다.


P.122

TRS는 '로봇일 뿐이다'라는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간은 그야말로 돌봄이 필요한 약한 존재라서 자신이 도와야했다.

그러니 자신이 인간을 도울 수 있는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로봇일뿐이라니?"


김혜진,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中


오정연의 <마지막로그>는  주인공이

'안락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원 실버라이닝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를 그렸다.

살아야겠다는 욕구는 어떤 환경에서 지속되는 것일까, 라는 질문거리를 던진 작품이었다.


P.142

은퇴자를 위한 리조트 혹은 유람선 같은 공간을 요양객인지 안락사 희망자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느릿느릿 유영하듯 오가는 모습은

묘하게 초현실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 사이에서는 안드로이드들의

활기찬 걸음걸이가 오히려 눈길을 끌었다. 완벽하게 조율된 무심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시설투어를 마친 직후 조이가 화장실 위치를 알려주듯 엄마의 이름을 말했을 때

그 당혹감이 더욱 크게 느껴진 것은.


오정연, <마지막 로그>


김선호의 <라디오 장례식>은 세계 종말 이후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한 자루 총에 의지에 홀로 생존하는 삶을 사는 노인과 우연히 노인의 공간에 들어오게 된 청년,

그리고 라디오가세상의 전부인 안드로이드가 등장한다.


P.191

"라디오를 고쳐주십시오."

노인은 인간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거대한 머리와 얼굴에 검은색 화면이 달린 것은

아무리 봐도 안드로이드밖에 없었다. 노인은 이 난데없는 최신 문명의 산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난감했다. 당황스럽기는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김선호, 라디오 장례식 


이야기술사 멤버 중 한명이기도 한 이루카의 <독립의 오단계>는 이 책의 마지막 수록작이다.

<독립의 오단계>는 인간의 신체 일부를 사이보그화할 수 있게 되면서,

'기계권'을 보장받기 위해 법정에서 소유주이자 창조주인 가혜라를 상대로 투쟁하는 오.단.계의 이야기다.

기계의 독립을 위해 법정 투쟁을 벌이는 만큼

재판 장면이 많다.


P. 258

"그렇다면 기계권은 부정하시는 겁니까?"

"기계와의 공생은 인류를 위해 지켜야 할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을 위해 어떤 것을 보존하고 어떤 것을 없애야 할지, 결정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기계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권리를 주는 것은 오직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루카, <독립의 오단계>


책의 말미에는 각각의 심사평이 실려 있어,

다섯명(박상준,김보영,김창규,배명훈,이정모)의 심사 위원이 각각 어떤 기준으로

이들 작품을 선별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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