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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Dec 21. 2018

[달.쓰.반] 82편 / 언젠가,아마도

김연수 여행산문집/2018년 7월/컬처그라퍼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문화 리뷰 No. 82

소설가 김연수의 여행산문집 <언젠가, 아마도>를 읽었다.

4년간 론리플래닛코리아에 연재하던 글에 새로 더한 8편을 묶은 책이라고 한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은 물론 <청춘의 문장>, <여행할 권리>, <소설가의 일>, <지지 않는다는 말> 등 의

에세이까지 소위 나만의 '김연수 컬렉션'을 소장중인데,

이 책이 올해 7월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되어 뒤늦게 주문한 책. 초판은 이미 지나갔고, 내 손에 도착한 것은

2018년 8월 6일에 발행한 3쇄본. 그래도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읽게 된 것을 감사하며

책장을 펼쳤다.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고 해도, 모든 문장에 다 감동할 수는 없는 법.

36쪽 '우리는 젊은 여행자' 챕터 전까지는 심드렁하게 책장을 넘겼다.

그러다 폭풍 공감을 하게 된 것은 38쪽~39쪽의 이 문장.


가이드북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인터넷을 수없이 검색했지만,
여행 중에는 뭘 어떻게 하든능숙해질 수 없다는 걸 실감했다.


여행지에서 사소한 실수를 단 하나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목적지의 구글 스트리트뷰를 찍고 360도 좌우회전을 해가며

길의 지리를 익혀도, 스마트폰, 태블릿PC, 데스크톱에

최신 여행 가이드북을 다운받아

수험공부 하듯이 밑줄을 쳐도

현지의 버스 노선을 그나라 언어로 다운받아 줄줄이 외워도

여행지에서는 돌발 상황이 생긴다.


파리의 공항에 도착하자마 카메라를 박살내고

보라카이의 해변 한 가운데서 바가지를 당하고....


여행지에서는 김연수 작가의 말대로

어처구니 없는 나를 감당해야만 한다.

서투르고, 어이없고, 황당하기까지 한 나를

견뎌야만 하는 것이 여행이다.


39쪽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직 정신력뿐이다. 낯선 지방을 방문하는 여행자는 구급약과 함께

이 정신력을 꼭 챙겨야 한다. 그것에 기대어 너무나 서툴러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버젓이 저지르는 자신을 견뎌야 한다.

여행자란 바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건 젊은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여행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젊은이가 되는데, 이 젊은이란 사실 실제적인 나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낯선 도시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행자 또는 젊은이'가 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너무나 서툴러서 태연하게 황당한 실수를 저지르는 자신을 감당해야 한다.


오랜만에 만난 김연수 작가의 문장과 친밀해지는 시간을 지나,

이제는 호기심이 생기는 단계로 접어든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는 어떻게 여행을 할까.

그러다 공통점을 하나 발견한다.

바로 로컬 맥주 마시기.


174쪽~175쪽

소설가는 평소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주간 회의를 통해 팀원을 이끌면서 목표를 하나씩  달성해가는 일과는 완전히 반대쪽에 있는게

바로 소설쓰기다. 그래서 훌륭한 소설가가 되려면 가능한 한 소설을 쓰는 방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편이

가장 좋다. 하물며 해외여행 같은 것은 삼가는 게 소설을 잘 쓰는 지름길이다.

그걸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여행을 자주 한다. 여기까지 이 책을 읽는 분이라면 짐작하시겠지만,

대개 취재나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차 혹은 번역본이 출간돼 행사가 있을 때 여행을 떠난다.

나는 여행 중에는 소설을 쓰지 않는데, 그러면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말 모르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낮부터 술을 마시게 된다는 논리라면, 다들 이해하시려나.

TV속 그 남자처럼 시작은 맥주다. 아무리 마셔도 맥주는 정말 맛있다.


그리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로컬 비어가 있다. 조선족이 사는 옌지에서는 '빙천'이라는 맥주를,

독일의 작은 도시 밤베르크에서는 '라우흐비어'라는 맥주를 마셨다.

빙천은 조금 약한 '소맥' 맛이고, 라우흐비어는

돼지갈비를 태우고 남은 불판의 그을음을 맥주에 푼 것 같은 맛이다. 

맥주를 마시고 나면, 차차 도수를 높여나간다.

로컬 비어처럼, 도수가 높은 술 역시 지역마다 유명한 것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모스크바에서는 벨루가를,

시안에서는 시펑지우를 마시는 식이다.


마지막으로, 김연수 작가의 조언 하나.

기다림은 우리 마음에 저절로 희망을 만들어낸다는 것.


김연수 작가의 말대로,

새해가 되면 그곳이 어디든 항공권을 예약하고 싶다.

언젠가, 아마

나도 김연수 작가처럼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때가 된다면 나도 그처럼 다시 낯선 사람이 될 테지.



252쪽~253쪽

(중략)

따라서 업무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저도 모르게 인터넷을 뒤져 특가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해서 특가 항공권을  찾아냈다면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구매하기를,

여기에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 구매하는 순간, 우리는 기다림의 상태에 돌입하게 되는데, 앞에서 말했다싶이 기다림은

저절로 우리 마음에 희망을 만들어낸다. 둘째 항공권을 구매하면, 구매하지 않았을 때보다 여행을 떠날 확률이 수천 배는

더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6개월 뒤라니, 그걸 어떻게 기다려'라고 생각하지 말고 특가 항공권이 있다면 무조건 구매하라.

 희망을 빚어내는 기다림의 미학을 여행에 활용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입국 심사장 대기줄에 서서 기다릴 때의 지루함은

공항 건물을 빠져나가 처음 바라보는 풍경을 온몸으로 환영하는 에너지로 삼으면 된다.

여행지에서는 허기도 기다림의 일종으로 여기는 게 좋다.

배고프다고 해서 낯익은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려는 마음을 버리고 순수하게

기다리길 바란다. 배가 고픈 한 희망은 아직 남아있다. 그 허기 속에 조금 더 머무를 수 있다면, 제아무리 낯선 음식일지라도

기다리는 동안에는 침이 넘어가게 된다. 진미를 경험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참을 수 없는 허기라는 사실을 잊지 맞기를.


입국장을 빠져나오면 한국이라는 익숙한 세계 펼쳐지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낸

 감각이 되살아난다 .

하늘의 빛깔과 공기중의 습도와 높은 천장으로 울려 퍼지는 한국의 발음.

지금의 '나'가 만들어지기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세계로 다시 귀환한 것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왔으니 여행은 끝난 것인가? 다시 돌아온 일상을 예전과 똑같이 바라본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전과 다른 시선으로 일상의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다면, 나는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여행자란 가만히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지만, 그 순간에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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