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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Sep 04. 2019

[달.쓰.반] 92편 / 역사의 역사

유시민/ 돌베게/ 2018년 6월, 신입사관 구해령(MBC/2019 )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문화 리뷰 No. 92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 중에 사관이 주인공인 작품이 있다.

드라마의 제목은  MBC에서 방영되는 <신입사관 구해령>인데,

19세기 말 조선 최초로 여자 사관이 된 구해령과

그녀가 소속된 예문관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지난주 방송 회차에서는 '사관'으로서의 직업적 신념과

개인적인 가치의 종교관이 충돌할 때의 딜레마를

성검열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미지 출처 : <신입사관 구해령> 홈페이지

(http://www.imbc.com/broad/tv/drama/rookiehistoriangoohaeryung/cast/cast05.html)


성검열은 예문관 한림들이 당연하게 여사들을 하대할 때에도

늘 존대를 해주던 점잖은 인물이었는데,

알고보니 그는 천주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믿는 천주교 신자였다.

그리고 사관의 지위를 이용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천주교 동지들을 구명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된 민봉교는 어떻게

사관으로서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며

분노를 표한다.


민봉교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구해령에게도

사관은 중립을 지켜야한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구해령이 도원대군의 행적에 대해 쓴 기록에서

그녀의 감정이 읽힌다면서

사관의 감정이 글에 개입하는 순간,

그것은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쓰는 이의 감정이 담긴 소설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사관으로서 알게 된 내용을

개인의 안위를 위해 써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다.

민봉교의 이러한 생각은 일개 개인의 생각이 아닌,

수백년간 예문관을 지탱해왔던 근간이었을 것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자가 지녀야할 최초이자, 최후의 도리.

이런 도리를 저버린 성검열에게 어떠한 처벌이 내려질지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동료,

예문관 한림들이 그를 어떤 태도를 대할지는

이후 방송될 회차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난주 방송을 보면서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떠올랐다.

바로 지난해에 발간된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이다.


<프롤로그>  P.16~P.17

 역사 서술은 사실을 기록하는 작업이자

사회 변화의 원인과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활동이며

어떤 대상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 행위이기도 하다.

성실한 역사가는 사실을 수집해 검증하고 평가하며

중요한 역사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한다.

뛰어난 역사가는 사실들 사이의 관계를 탐색해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혀내며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과 역사 변화의 패턴 또는

역사법칙을 찾아낸다. 위대한 역사가는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로 엮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독자의 내면에 인간과 사회오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물결을 일으킨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해 과학을 껴안으며 예술로 완성된다.

 나는 역사가 문학이라거나 문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훌륭한 역사는 문학이 될 수 있으며

위대한 역사는 문학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이 책에서 다룬 역사서들을 읽으면서 나는 흥미로운 역사의 사실을

아는 즐거움을 얻었고 사실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다 그보다 더 귀하게 다가온 것은 저자들이

문장 갈피에 담아 둔 감정이었다.

역사의 사실과 논리적 해석에 덧입혀 둔

희망, 놀라움, 기쁨,슬픔,분노,원망,절망감 같은 인간적 ·도덕적 감정이었다.

역사의 매력은 사실의 기록과 전승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생각과 감정을 나눈 데 있음을

거듭 절감했다.


나는 성검열이 저지른 짓은 사관으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는

민봉교의 말에 동의한다. 이후 민봉교에게도 태도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인간으로서 한 사람에 대해

가지는 연민이나 이해일뿐이지,

사관으로서 성검열이 한 행동을

옹호하는 전개는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드라마를 끝까지 시청하지 않은 입장에서

등장인물의 행동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 <역사의 역사>를 읽다보니

자신의 역사 기록에 적극적으로

종교를 끌어들인 사례도 있어

드라마의 내용과 비교해보게 되었다.


P. 94~97  <역사가와 종교의 속박> 

14세기 이전 이슬람 문명에 대한 종합 보고서 같은 <역사서설>은

<서>에서 제도사와 문화사를 따로 서술한 <사기>보다 체계적이고

입체적이며 학술적이다.

할둔은 마수디를 비롯한 이슬람 역사가들의 책을 연구하면서

경제생활과 제도,문화,예술,학문의 구조와

발전 양상을 역사 서술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굳혔던 듯하다. 그런데 <역사서설>에는 역사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특징이 하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 전체에 걸쳐 길고 지루한

종교적 찬사를 끝도 없이 늘어놓았다는 점이다.


(중략)


이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발적이고 진지한 신앙고백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종교와 결합한 세속 권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어쩔 수없이 받아들인 신변 보호책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물론 할둔이 확신에 찬 무슬림이었을 수는 있다.

그런데 14세기 아랍 사회는 스스로 신실한 무슬림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종교와 국가 권력이 한 몸이 되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회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면 '신성모독'이라는

비난과 공격을 받을 위험에 봉착한다.


(중략)


역사책을 집어 들 때 책 표지에 있는 저자의 이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출간 일자나 집필 일자가 때로는 더 많은 것을 누설한다.

단순히 언제 썼고 언제 출간했는지뿐 아니라,

그 책을 쓴 사람이 어떤 정치적 · 사회적 환경에서 살았는지

점검해보라는 카의 말이다.

<역사서설>을 읽을 때도 할둔의 시대와 인생 역정을 들여다보아야

그가 진정 말하고자 했던 것을 들을 수 있다.


이제, <신입사관 구해령>도 종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직 드라마에서는 금서로 지정된 <호담선생전>에 대한

이야기를 다 풀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떡밥으로 보아

<호담선생전>은 차마 역사(정사)로는 기록할 수 없었던

실패한 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이다.

<호담선생전>에는 이제는 입에 담지도 못할 반역의 이름이 되어버린

서래원과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 그리고 그런 꿈을 꾼 대가로

그들이 잃게 된 것은 무엇인지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제목으로 보아 <호담선생전>은 소설같은데,

사관이 주인공인 이야기에서

작가가 <호담선생전>이라는 픽션을

내세웠다는 것은

기록으로서의 역사의 한계점

드러내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말하고,

드라마 속에서 현재 패자인 서래원의 역사는 사라졌으니까.


나는 <신입사관 구해령>이 극적 구성이나

대사가 아주 뛰어난

드라마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왕이나 후궁이 아닌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이

신선했고,

구해령과 민봉교, 성검열 등 예문관 사관의 이야기를 통해

사관이란 역사를 기록하는 인물인 동시에,

한 시대를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흥미로웠다.


구해령은 여자도 과거를 보고, 관직에 나갈 수 있는

시대의 인물이며,

민봉교는 세도가인 아버지 때문에 스러져 간 죄없는 이들의

이름을 역사에라도 한줄 남기고자 사관을 택한 인물이며

성검열은 직업적인 신념을 버리고서라도,

만인은 천주 앞에 평등하다고 말하는 자신의 종교를

배신할 수 없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들을 통해

격동의 시대였던 19세기 조선의 시대상과

현재인 21세기의 새로운 가치를

중첩해서 살펴볼 수 있었다.


부디, 작가가

'사관'이라는 소재를 택한 이유를

마지막까지 뚝심있게 밀어부치기를.


유시민도 말했듯,

결국 역사도 사람의 이야기다.

위대한 역사책은 결국 문학성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사기>가 훌륭한 역사서로 평가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역사의 역사>라는 책과

<신입사관 구해령>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다시금,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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