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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Sep 09. 2019

[오늘의 휴가] 46편/ 고려인문화센터/ 우수리스크

Корейский культурный центр/통근열차/시베리아횡단열차

"오늘" 생각난 장소에 대한 비정기적 매거진 No.46

지난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때 하루 시간을 내어 근교의 우수리스크에 다녀왔다.

그곳에 고려인문화센터가 있기 때문이다.

우수리스크에 가기 하루 전날, 블라디보스토크 역 왼편에 있는 공항 철도역 창구에서 직원에게

6시45분발 우수리스크행 통근열차(1인당 230루블) 티켓을 발권하고,


(통근열차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달리

러시아 철도청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매할 수 없고, 유인창구나 무인발권기를 통해 티켓을 사야한다.

6시 45분발 통근열차는 우수리스크까지  

모든 정류장에 서는 완행열차로

약 2시간 20분이 소요된다.

홈페이지에서는 열차 시간과 정류장 이름만 확인 가능하다.





다음날 오전 6시20분, 열차를 타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역에 도착했다.

전광판에 뜬 열차 정보를 확인하고,

7번 플랫폼 15번 뿌띠(путь ,트랙)으로 향했다.

저 멀리 열차가 보인다.


다시 한번 행선지를 확인하고,

열차에 올라 빈 좌석에 앉았다.

통근열차는 지정석이 아니므로

빈 좌석에 앉으면 된다.

우리 일행 옆자리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온

한국인 부부가 보였다.

 가족들은 고려인문화센터에서도 만났고,

우수리스크역에서도 다시 만났다.

우수리스크역에서 만났을 때는,

그들도 우리처럼 돌아갈 때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통근 열차는 마주보게끔 좌석이 배열 되어 있다.

나무 의자는 꽤 딱딱해보여 2시간 이상을 어떻게 버틸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우수리스크에서 돌아올 때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4인실 2등석 침대칸을 인터넷으로 사전 예매해두었으니, 조금만 고생하자고 생각했다.

내부에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어 더울거라는

 예상과 달리,그날은 날씨가 꽤 흐려 오히려

 열차 안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우수리스크로 가는 동안, 짐보따리를 한가득 가져오시는 할머니들이 빈 자리를 서서히 채우기 시작했고, 차장이 표 검사를 시작했다.

미리 티켓을 끊지 못한 몇몇 사람들은 열차에서

차장에게 바로 티켓을 구매하기도 했다.

열차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와 숲 등을 구경하며

그렇게 2시간 20분을 달려 우수리스크역에 도착하였다.


역사에서 근무하시는 아주머니에게

그제 뚜알렛(Где туалет)?이라고 물어보니친절하게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화장실의 위치를 손가락으로 짚어주었다.

화장실은 유료였고, 1인당 20루블을 받았다.

화장실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동전으로 40루블을 지불하고,나는 잠시 밖에서 기다렸다가 일행들과 함께 기차역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쪽으로 향했다.

레닌 동상을 지나 버스 정류장쪽으로 가니

101번 버스가 바로 보였다.

나는 101번 버스의 여자 차장에게

까레이스키 센타? 라고 물었다가,

차장이 고개를 갸우뚱 하는 듯 하여

다시, Корейский центр (까레이스키 쩬트르?)라고 물었다.

그러자 차장이 да(다), 라고 대답하였다.

긍정의 대답을 들은 나는

다급한 마음에 레닌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던 일행들에게 빨리 오라고 외쳤다.

그리고 다시 한번 차장에게 확인했다.

Детская больница

(젯츠까야 발니짜?)

이번엔 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да라고 말했다.

아까보다 더 긍정의 의미가 강한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막심 택시 어플로 택시를 불러

고려인문화센터까지 한번에 가는 방법도 있긴 했지만,  이미 101번 버스가 와 있으니,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타기로 결정했는데, 혹시나 정류장을 잘못 알고

내릴까봐 걱정이 되어 차장에게 재차 확인한 것이다. 차장에게 69루블의 버스 요금을

 지불하니 1인당 20루블이라고 알려주

9루블을 돌려줬다.

블라디보스톡 시내에서는 버스 요금이 23루블이었는데,우수리스크 시내 버스는

 그보다 더 저렴하였다.

하지만 우수리스크의 다른 버스도 20루블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구글 검색을 하다가

우수리스크 지역신문에서 올해부터인가 시내버스 요금을 21루블로 인상하였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101번 버스는 해당이 없는 건가?)

요금을 받은 차장이 조그만 버스 티켓을 주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새로운 사람들이 승차면,

차장은 그들에게 가서 버스 요금을 받았는데,

새로 탄 사람들 얼굴을 어떻게 다 기억하는지 신기하였다.


2GIS 지도 어플로는 기차역에서 버스(1a/6/7a/8a/12/16/35/101/102/125/137) 중 하나의 버스를 타서

 90-й магазин 에서 내리라고 되어 있지만,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의 가이드 북에서는

Детская больница에서 내리라고 되어 있어서,나는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Детская больница는

90-й магазин의  바로 다음 정류장이다.

구글 스트리트뷰로 확인했을 때 후자가

고려인문화센터와 더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2GIS 어플 역에서 고려인문화센터 근처 정류장까지 소요시간을 30~40분 이상

잡았지만, 우수리스크 기차역에서

젯츠까야 발니짜 정류장까지

실제로는 20분 정도밖에는 걸리지 않았다.

101번 버스는 안내 방송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90-й магазин 정류장에 있는 광고판과 가판대 등을 확인하고,

(마가진이 상점이란 뜻이니까 뭐 비슷한게 있겠지)

다음 정류장이 발니짜라고 확신한 나는

사거리에서 초록색 건물의 프레시 25 마트(Фреш 25)가 보이자마자

벨을 눌렀다.

GPS를 켜면 2GIS어플에서 내리는 정류장에서 푸쉬 알림으로 알려준다고 했지만

그런 것 따위 귀찮아 직감을 믿기로 했다.

 (덕분에 가끔은 길치 신세를 면하기 어렵지만)

벨소리를 듣고, 운전기사 옆에 있던 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발니짜, 라고 말해주었다.

(그동안 101번 버스를 타고 내린 사람중에서

벨을 누른 사람은 오직 나 혼자여서 시선이 집중되었다)

버스가 모든 정류장에 서기 때문에

현지 사람들이 굳이 벨을 누를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벨소리 덕분에 다시 한번 정류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버스는 프레시 25마트의 다음 사거리를 조금 지나서 내려주었다.

이미지 출처 : https://wikiroutes.info/en/ussuriysk/catalog


젯츠까야 발니짜는 어린이 병원이라는 뜻으로,

맞은편 정류소에 병원 기호를 나타내는듯한

십자가 모양이 보였다.

맞은편 정류소의 이름도 젯츠까야 발니짜인 것 같다. 기차역으로 돌아갈 땐 맞은편에서 버스를 타면 될 것 같긴 했지만, 기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역으로 돌아갈 때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맞은편 정류소 (좌)       /                 

 (우) 고려인문화센터 방향 정류소(하차정류소)




위 2GSI 지도 상에서 회색 동그라미 표시 되어 있는 곳이 내가 101번 버스에서 하차한 젯츠까야 발니짜 정류장이다. 내린 곳에서 버스 진행방향 반대로 미끄럼틀 등의 놀이기구가 보이는

베이징 공원(Пекин парк, 뻬낀 빠르크) 을 끼고 조금만 걸어서 내려오다가 사거리에서

아무르스까야(Амурская) 거리 방면으로 걸어가면 고려인 문화센터가 보인다.

젯츠까야 발니짜 정류소에서 고려인문화센터까지

(Корейский культурный центр, Амурская ул., 63а, Уссурийск, Приморский)까지

도보로 6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곳은 택시 요금이 저렴한데다 택시 어플이 잘되어 있으니 택시를 타도 되지만, 우수리스크 기차역에서 101번 등의 버스를 타도 고려인문화센터를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시간이 넉넉하다면 버스를 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돌아올 때는 고려인문화센터의 안내 데스크에 부탁하여  그곳에서 불러준 콜택시를 타고 우수리스크역까지 돌아왔다.

요금은 90루블 나왔다.




고려인문화센터에 들어가니 고려인 아주머니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아주머니들은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할 줄 아신다고 하셨다.

요금은 1인당 100루블이었다.


아침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고려인문화센터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통근열차에서 만난 한국인 가족이 보여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관람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렇게 한국인 가족과의 인사를 마치고, 우리는 고려인 문화센터의 내부 관람을 시작하였다.



고려인문화센터를 둘러보니,

연해주 지역에서 어떻게 항일 운동이 일어났고,

스탈린이 고려인들을 어떻게 중앙아시아로 내몰아 삶의 터전을 박탈했는가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었다.

2층 사무실 앞의 화이트 보드에는 한국어 수업, 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어서,

많은 생각이 들게했다.

고려인 아주머니의 모습은 영락없이

 나와 같은 한국인의 모습인데,

국적은 러시아. 우수리스크역 화장실에서

 계산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데

당연히 한국인일거라 믿었던, 뒤에 서있던 여성의 입에서 유창한 러시아어가 나왔을 때의 당혹감.

아, 그녀는 고려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은 그렇게 한참 후에 찾아왔다.

우리가 관람을 마칠 무렵 패키지로 여행을 온 한국인 단체 관람객들이

고려인문화센터로 입성했다.

가이드는 고려인들은 그 어느 편도 들 수 없어

난감할 때가 많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들은 러시아와 한국, 그 어느 편도 쉽게 들 수 없다는 말일까?

나라면, 지금의 고려인과 같은 상황이라면,

러시아 땅에서 러시아 말을 쓰고, 러시아인으로 살아가는데, 저 멀리 있는 한국이라는 땅을 잊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을까?

뒤에서 들려오는 가이드의 말에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려인문화센터 관람을 마치고,

아침부터 내심 한식을 먹고 싶어하는

일행을 위해 한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고려인문화센터 1층 식당에는 한식 메뉴가 아주 많았다.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데스크에서 불러준 콜택시를 타고, 다시 우수리스크역으로 향했다.

나는 창구에서 인터넷으로 예매해 출력해온 이티켓을 시베리아 횡단열차 표로 교환했는데, 

다시 우수리스크 역에서 만난 한국인 가족에게는

창구 직원이 이티켓으로 기차를 탈 수 있는데,

왜 굳이 다시 표로 바꾸려고 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어쨌든 표를 바꾸는데 성공한 가족은

기념이니까, 라며 티켓을 잘 챙겼다.




벽에 붙은 안내판을 보니

12시38분 출발하는 008 열차는

12시23분에 열차가 들어온다고 되어 있었다.

008열차는

일명 시베리아의 도로 불리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출발하여 블라디보스톡까지 오는 열차였다.

008 열차 윗줄에 있는 202 열차는

하바롭스크에서 오는 것 같은데

인터넷 예매를 하기 전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시작점인

블라디보스톡에서 종착역인 모스크바까지

7일 동안 기차를 타고 갈 엄두는

처음부터 나지 않았지만

하바롭스크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비록 하루라고 해도,

열차안에 꼬박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역시 자신이 없었다. 그런 경험이라면 아주 오래전 유럽에서 야간 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시간이 되어  열차가 플랫폼에 도착했다.

나는 한국인 가족에게 기차가 들어왔다고 알려주고

남은 여행 마무리 잘하라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티켓에 적혀있는 객실을 찾아갔다.

우리는 1번 칸(바곤/ваго́н)이었다.

다시 한번 차장에게 객실을 확인하고, 열차에 탑승해서 좌석(메스타/Место)을 찾아갔다.

4인실 침대칸 쿠페(купе́)는 문을 닫을 수 있었지만 문을 닫으면 답답할 것 같아서 그냥 열어놓기로 했다.




열차에 오르니 처음엔 열기로 인해 조금 더웠지만,

달리는 동안 에어컨이 작동하여 이내 열기가 수그러들었다.

그렇게 열차는 2시간을 달려 다시, 우리를 블라디보스톡으로 데려다주었다.



열차에서 내리니 블라디보스톡역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기념탑과 조형물이 보였다.

우리들은 시간 관계상 우수리스크에서

고려인문화센터밖에는 방문하지 못했지만,

아침 일찍 통근열차를 타고

오후 늦게 통근열차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최재형 생가, 이상설 유허비 등

항일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일일 역사기행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기왕 우수리스크까지 방문한 김에 온전히 하루 시간을 내어 역사 기행을 해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은 짧게나마 연해주라는 이국 땅에서

독립운동에 한평생을 바친 분들의 뜻을

되새겨 볼 수 있어서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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