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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Oct 16. 2020

룬의 아이들윈터러2 :덫을 뚫고서 폭풍 속에 (스포有)

전민희 장편소설/제우미디어/구판

서랍 속에서 다시 꺼내 읽는 장르소설 이야기 No.1

※ 주의 : 이 리뷰에는 룬의 아이들 시리즈(1,2,3부)의  주요 내용 및 

반전,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실. 사랑하는 형 예프넨을 읽고 보리스가 겪었던 그 아픔이 떠오르는 날이다.

예방주사라도 맞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자꾸만 보리스를 따라 흐느껴 울게 되던

그 문장이 생각났다.

해서, 서랍 속에서 다시 그 부분(룬의 아이들 1부 윈터러의 1권과 2권)을 꺼내어 읽어본다.


왜, 왜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아 보지도 않고서......



늦은 아침이 되어 깨어난 보리스는 이제 꿈이 아닌 현실의 결말을 보았다.

자신이 잠들었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바로 꿈속에서 봤던 구덩이가 있었다. 

그것은 잠결에 본 것보다 훨씬 넓게 파져 있었다. 

파낸 흙이 한쪽에 작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소년은 커다랗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형이 없었고... 그리고 윈터러가 없었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가 소년은 다시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 생각을 했다.

천천히 구덩이를 바라보며 생각을 거듭했다.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굵고 뾰족한 바늘이 가슴속을 깊숙히 찌르고 들어오는 듯 그렇게 아픈 것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창에 꽂힌 작은 짐승처럼 고통스러워 하며 목으로 치미는 무엇인가를 삼켰다. 

간신히 옅은 숨소리만이 흘러나올 따름이었다. 목이 꽉 막혀 말 한 마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애써 일어난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형은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그가 속삭였던 대로 아주 편하게,

 그렇게 깨어나지 않는 잠을 자고 있었다.

마치 자장가를 들으며 잠든듯 그렇게 평온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가슴 약간 아래쪽 명치 부분에 깊은 상처가 보였다. 그 주위에 시커멓게 변한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그러나 검은 그 자리에 꽂혀 있지 않았다. 윈터러는 구덩이 한쪽에 쓸쓸하게 버려져 있었다.

긴검인 윈터러는 분명 자살을 하기에 좋은 무기는 아니었다.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바닥에 꽂거나 해서 그 위에 몸을 던졌을 것이라고 , 

동생이 보게 될 것을 대비해서 마지막 힘을 다해 검을 다시 뽑아 낸 것이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지요.누구도 보상해주지 않을 테죠.
고작 남은 사람의 가슴속에 남는 것이야말로 
구질구질하게 나마 살아남는 것보다 훨씬 시시한 일인 것 같습니다.
죽은 사람의 인생은 거기서 멈추는 거지요.
박제처럼.. 화려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그런 것.
한순간 불타올라 짧게 빛나고, 그걸로 끝나는 것은 싫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만족을 주는 것도 자신도 만족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면, 그 후의 일은 어찌 되도 좋은 거죠


아무리 배가 고프다 해도 먹고 싶지 않아서 안 먹는 건 자기 마음이죠!

굶어죽더라도 자기 책임인데 누가 참견합니까?

죽고 나면 모두 마찬가진데 왜 마음대로 살지 못하죠?

제가 강해져서 저 위대하다는 용사들을 모두 죽인다 해도 달라지는 게 무엇입니까!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이.. 말을 하려 했었던 것일까.

다시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 죽은 사람. 

그러나 월넛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은 채 매서운 눈으로 보리스를 쏘아보았다.


다시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을 사람.

보리스는 이 잔혹한 진실에 얼마나 참담했을까.


"틀렸어! 넌 네 삶을 스스로 더 빈약하게 만들고 있어!

네게 부족한 건 바로 의지야! 

죽은 사람의 삶은 그걸로 끝이라고 말하면서 어째서 네 삶의 가치를 자꾸만 그들의 죽음에 두는 거냐?

정말로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모조리 끝장내어 버리고 넌 너대로 네 욕망을 쫓으며 새롭게 살아라, 

아니면! 그들을 위해서라도 더 힘껏, 더 오래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네가 불멸자가 될 수 없는 한, 너는 네 삶의 밀도와 가치를 높임으로서 그들이 잃어버린 삶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만일 네가 그러고 싶다면!"


 모든 열정이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것처럼 어떤 소원도 느낄 수가 없었다.

형처럼 윈터러를 휘두를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것조차 

누군가에게 신세지거나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감정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었다.

살아남는 것, 그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는 건가?

예프넨은 그에게 말했었다.

살아남으라고, 

네 생의 모든 가능성을 다 실험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래오래 살아남으라고, 그렇게 말했었다.

그는 쉽게 죽지 않을 것이다. 결코 쉽사리 굴복해서 잊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는 긴 세월... 그건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 것일까.


보리스는 형 예프넨의 유언대로 살아남으려고 최선을 다했으나

윈터러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 불멸자가 되는 것은 거절했다.

형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채 

영원히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예프넨 뿐만이 아니다.

오직 예프넨 뿐이었던 보리스의 세상을

가득 채워준 두 사람. 

네가 불멸자가 될 수 없는 한 네 삶의 밀도와 가치를 높여, 

그들이 잃어버린 삶을 대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나우플리온

(윈터러 2권에서는 아직은 속을 알 수 없는 검술 선생일뿐이지만

후에 보리스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는 스승),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깨닫게 해준 이솔렛.


보리스는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결코 잃어버릴 수 없었기에

불멸자의 삶을 거절했다.


너만은 남으라고. 

너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윈터러 2권의 보리스는 

이미 떠나버린 사람이 남긴 말의 무게에 너무나 짓눌려 있는 상태였다.

그것은 남아있는 사람을 위해 한 말이지만, 

평생 함께 살아가고 싶었던 소중한 사람은 이미 곁에 없는데, 

자신만 살아남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보리스에게, 

윌넛 선생은  그를 힘껏 끌어안고서 이렇게 말한다.


 "넌 세상을 다 산 것이 아니야, 이 작은 녀석아.....

 무얼 그렇게 참으려고 애쓰는 거냐. 이 세상엔 힘들지 않은 자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다는 욕망을, 그리고 더 훌륭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으면서, 

그렇게 살고 있단 말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야.

한시라도 살아 있을 그 내일을 위해 살뿐인 것인데......"

  귓가에서 뜨거운 목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오고 있었다. 달빛이 회오리치며 푸른 밤의 중심을

흐르는 가운데, 위로 받으면서, 그러나 위로하지는 않으면서, 거친 숨을 공기 중으로 내보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윈터러가, 마치 산 자의 감정을 흡수하기로 하는 것처럼 한 차례 부르르 떨렸다.


보리스는 그의 품에서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로 소리 없는 울음을 쏟아낸다.

이때, 보리스처럼 나도 감정이 격앙되어서

한동안은 책을 덮고 있어야만 했다.


여전히 룬의 아이들 시리즈 중에서 1권 윈터러는 

제일 읽기가 힘든 파트다. 

그럼에도, 제일 마음이 가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룬의 아이들 2부 데모닉도 재미있게 읽었고,

룬의 아이들 3부 블러디드도 재미있게 읽는 중이지만, 


1부 윈터러는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보리스가 

내면이 단단한 전사로 성장해가기까지의

뼈아픈 과정을 

함께 겪어내는 느낌이라 그런것일 수도 있다.


물론 2부와 3부 주인공이 보리스만큼 위기를 겪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그들 역시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고, 

여기저기서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내 느낌에는 2부는 주인공의 성장기라기보다는 좌충우돌 모험기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고 

3부는 아직 연재 중이라  속단할 수는 없지만

3권까지의 내용은 데모닉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2부 데모닉의 주인공인 조슈아 역시 친구들과 모험을 겪는 과정에서 각성을 하고, 

큰 성장을 이루어내지만 

윈터러 결말부의 보리스에게서는 뭔가 초월자의 느낌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올봄 난생 처음 하게 된

회사 재택근무는 한없이 길어지고,

도서관은 휴관을 반복하고, 

외출할 일이 거의 없는 요즘,


책상이든, 카카오 페이지나 네이버시리즈 같은 

연재 플랫폼 앱이든 

서랍 속에 넣어둔 

장르 소설을 다시 들춰내본다.


그중에서도 

갑자기 보리스가 생각나는 건 

어쩌면, 시린 겨울이 성큼 한발 앞으로 다가와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겨울을 지새우는 검, 윈터러의 계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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