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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May 01. 2021

[SF를 찾아서] 14편 / 영화 <서복> (스포주의)

감독 이용주 / 출연 공유, 박보검 外  / 2021년 4월 15일 개봉

그때그때 생각나면 찾아오는 비정기적 SF 장르 리뷰 No.14

※ 주의 : 이 리뷰에는 영화 <서복>의 주요내용 및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SF 영화를 극장에서 본 기억이 언제였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니 2003년쯤 민병천 감독이 만들고, 유지태가 주연했던 <내츄럴시티>, 

그리고 아마도 같은해에 개봉했던 것 같은 SF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를 본 것이

아마도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당시 두 영화는 평단의 좋은 평은 받지 못했던 것 같고,

흥행에서도 재미를 큰 보지 못한 것 같지만 어쨌든 나는 극장에서 저 두 영화들을 보았다.

물론 당시에는 극장에서 보고 싶은 한국 영화들이 넘쳐나는 시기라 

극장에 자주 드나들긴 했지만, 

어쨌거나 저 영화들까지 빼놓지 않고 관람했던 것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SF 영화 장르라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SF 영화라는 타이틀을 달만한 영화가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러니까, 올해 개봉한 영화 <서복>도 이런 이유에서 관심을 가졌던 것인데, 

어느 인터뷰에서 감독이 서복은 SF 영화가 아니다, 라는 말을 했다는 말이 들렸다.

그 인터뷰를 읽어본것도 아니고, 전후맥락을 다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감독의 말에 이의를 달고 싶지는 않지만

영화 <서복>에는 복제인간이 나온다는데, 왜 SF 영화가 아니라는 말이 나왔을까?

라는 의문이 들긴 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난 이후의 내 감상은 이렇다.

복제인간이 주인공이니까, SF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면 주인공이 초능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슈퍼 히어로 무비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면 두 남자 주인공들이 쫓기는 과정에서 일련의 깨달음을 얻는 버디 로드 무비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면 삶과 주인공의 경계에 있는 두 남자들의 욕망과 두려움을 다룬 드라마, 라고 불러야 하나?


그런데 그 어느 쪽도 찜찜하긴 마찬가지였다.

'영생'이란 뭘까?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감독의 메세지는 알겠는데, 

이런 메세지를 뻔하다고 한다면, 

 SF 장르 자체가 이런 뻔한 메세지를 재미있게 이야기해주는 장르가 아닐까,

늘 생각해왔으므로, 이런 이유로 영화가 아쉬웠다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내게는 그다지 큰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뻔하디 뻔한 이야기라도 재미있게 해준다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볼 용의가 있었는데.


뻔하디 뻔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이런 영화에서, 조우진이 맡은 안부장 역. 

일종의 악역 롤을 맡은 배우를 더 영리하게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안부장은 물론이고,  서복을 이용하려는 대기업 회장 서인이 

화면에 나올 때의 긴장감은 쟤네 지금 뭐해? 라는 실소가 나올 정도로, 박진감이 없었다.

평면적인 캐릭터와의 단조로운 대사톤이 빚어내는

이들의 말싸움씬은 지루하기만 했다.

혹시 다른 장면들이 있는데, 편집된 걸까?

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 만큼, 

영화 내내 안부장의 감정선이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영화에서 안부장의 입을 빌려 설명을 해주고 있긴 하지만, 

서복은 위험한 존재니까, 제거해야 한다고.

그런데 안부장의 서복에 대한 두려움은 뭐지?

영생을 사는 존재에 대한 개인적인 두려움인가?

아니면 이 나라를 위해 반드시 없어져야만 하는 초인적인 존재에 대한,

국가적 충성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두려움인가?

솔직히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안부장의 캐릭터는 매력이 없었고, 

혹시 편집된 씬이 있다고 해도 영화는 2시간 안의 제한된 시간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장르인만큼, 그 배후 사정을 다 헤아리고 싶지도 않다.

배우 조우진이 매력적인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전작을 통해 확인했던 만큼,  아쉬웠던 부분이었다.


장영남이 맡은 역할도 마찬가지다. 

영화 초반 실험 제안을 받고 

망설이는듯한 시한부 인생 공유한테, 

"가만히 있으면 죽기밖에 더하겠어요?"

라고 시니컬하게 말하던 서복을 만든, 의사 임세은 박사와

영화 후반부에 서복을 위해 자신을 의생한 엄마 임세은이

동일한 인물이라고 하기엔 중간에 생략된 과정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았다.


실내에서 담배를 피워대서

공유가 욕설을 뇌까리게 만든 그 장면이, 

서복에 대한 그녀의 내면적 고민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이해하기에는 

내가 너무 관대한 관객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두 주연배우의 캐릭터도 크게 다가오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영화를 열고 닫으면서, 서복과 함께한 여정 속에서 

죽음에 대한 태도 변화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나아가 정서적 공감대를 이끌어야 하는 민기헌이라는 캐릭터. 

공유란 배우가 열연하는 것과는 별개로 

민기헌이란 인물은 나에게는 큰 감흥을 주지 못했고, 

정서적으로도 공감할 수 없었다.

민기헌은

사실, 나는 죽음이 두렵고  살고 싶다고 말하는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럭저럭 잘 표현되긴 했지만

그에 반해 민기헌이 지닌 삶에 대한 욕망이 

영화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겠다고

영화 초반에 실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이 입체적 욕망을 포기하는 과정이 

너무 일차원적이었다. 

그렇다보니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는 

설정상으로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이

정작 영화속에서는 이야기의 끝과 시작을 기능적으로만 담당하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이 영화의 타이틀롤이자, 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는 인물 서복.

서복은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지만, 

총을 맞으면 죽을 수 있고, 

임세은 박사 말대로라면, 차에 치여도 죽을 수 있는 존재인데, 

도대체 이 영화속에서 서복은 두려움의 존재가 되는 걸까?

라는 의문 하나.

서복이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어떻게든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이기 때문인데. 

총에 맞아 죽을 수 있고, 차에 치여도 죽을 수 있는

평범한 인간들이 죽을 수 있는 방법으로도 죽을 수 있는 존재라면, 도대체 왜?

두번째 의문. 

서복이 그러려고 태어난, 자기의 운명(인간으로부터 희생을 강요당하는)을 받아들이는 장면. 

누군가한테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서 순순히 운명을 자신의 받아들인다기에는, 

이미 서복은 스스로에게 엄청난 초인적 파워가 있다는 것을 아는데?

만약 민기헌이 서복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내가 납득했다면, 

그리고 서복이, 엄마에게 나도 중요한 무언가가 되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장면을

납득했다면,  '누군가'를 위해 이러한 선택을 하는 이 과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서복이 자신이 스스로 한 결정에 의해 

의미있는 사람이 되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인물이, 

바로  엄마였는데, 

그런 엄마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절망감.

그로인해 겉잡을 수 없이 폭주해버리는 서복에게 정서적으로 공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 

영화는 이렇게 충분히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장치를 깔아놓고도,

그 장치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서복과 엄마의 관계성은 물론

서복과 민기헌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서사도 어딘가 부족했다.

 

영화 <서복>은 

<건축학개론>의 감독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신작인데다

공유와 박보검이라는 두 톱스타의 만남만으로도, 

여러 모로 큰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었지만

아쉽게도, 그 결과물은 기대에 못미쳤다.


혹시 내가 SF 영화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이 작품의 평가가 박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SF 드라마 <써클>은 주인공의 심정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영화에 비해 드라마는 등장인물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충분히 그 인물을 설명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서복>을 위한 충분한 변명거리가 되지는 못한다.

디즈니·픽사 영화 <소울> 은 SF 장르는 아니지만, 

<서복>처럼 삶과 죽음을 화두로 삼는 영화이다.

그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세지는 

100여분이라는 한정된 시간안에 함축적으로 잘 전달된다.


오로지 텍스트로만 된 SF소설을 보면서 느끼는 시각적인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영화이며

뛰어난 배우들을 기용해 '연기'의 향연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영화의 매력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이런 장르의 최대 매력인 

시각적인 볼거리도 충분하지 않았고

또한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다면, 충분히 더 빛나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들의 활용도 또한 아쉬웠다.

하지만,  이런 아쉬운 조건 속에서도

주연 배우들은 자기 몫은 충분히 다하고 있으므로

두 배우의 조합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볼만하다.

현재 극장 및 OTT인 티빙에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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