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문학 SF 앤솔로지/ 2021년 4월 /비룡소 / 작가 길상효 外
그때그때 생각나면 찾아오는 비정기적 SF 장르 리뷰 No.15
현재 SF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 10명의 단편을 모은
청소년을 위한 SF 앤솔러지『당첨되셨습니다』가
지난 4월 비룡소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앤솔로지는 어떤 특정한 주제가, 아닌
청소년이라는 공통의 독자를 상정하고, 10명의 작가가
각각 10인 10색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이 열편의 이야기중에서 내가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다음과 같다.
<소생과 탄생 사이> (작가 홍준영)
p.114~P. 116 中에서
"지금 그말은, 자네는 자네 말고 다른 인격이 있다는 건가?"
"다중인격 같은 게 아니에요. 나라는 자아는 있죠. 나 안에 '붉은 피터'로서의 삶도 포함되어 있다는 거지만요.
나는 인간인 A군과 '붉은 피터'인 셈이죠. 하지만 나는 나예요. 사망 전 인간으로서의 삶도, 배양액에서 떠돌던 '붉은 피터'로서도 말이죠. 간단하게 설명해드리고 싶지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면 박사학위를 박사학위를 받았겠죠."
"잠깐, 공연 다녀온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되고 '성공담이 될 수 없다'라는 말은 무슨 소리지?"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거예요. 잘 들어보세요. '붉은 피터가 내 괴사한 조직들을 먹어 정보를 축적하고 자라날 양분을 얻어
자리를 잡아 가면서 실핏줄 같은 촉수가 체내의 신경과 연결되어, 나는 A군이자 붉은 피터였고 둘 다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린 거예요.
내가 알고 있는 '소생학회'의 궁극의 목적은 죽은 자의 소생이잖아요. 난 소생이 아닐 가능성이 큰데요?
누가 나를 A군이라고 확정지을 수 있는데요? 기억? 붉은 피터의 기억도 있어요. 자아? 자아의 기본 바탕은 분명 A군이겠죠. 하지만 그걸 어떻게 증명해요? 어떻게 평범한 사람이 인간으로서 자아와 체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각을 다 이해할 수 있나고요. 난 소생한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아니면 뭐예요? 수백 년간의 아집과 고집으로 소생을 원했는데 그냥 퉁 치시게요? 난 그렇게 안 보는데?"
그의 말이 옳았다. 그라는 존재는 '소생학회'가 원하는 '소생'인지, 새로운 존재로 '탄생'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소생학회'가 원하는 것은 소생이지 탄생은 아니다. 죽음에서 돌아온 인간이 있다면 과거의 유무는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생학회'에선 죽음에서 돌아온 자아의 주체성이 다르다면 이는 새로운 탄생이지, 죽음을 이겨 냈다고 할 순 없다고 믿었다.
<세상에 나쁜 쇼고스는 없다> (작가 홍지운)
P.157 中에서
"반려 고려생명체 행동 정문가, 김형욱입니다."
P.162 中에서
김형욱은 쇼고스가 좋아하는 일만 하게 내벼러두면 안된다고도 했다. 쇼고스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 일을 저지를 때면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표현하고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철수는 쇼고스가 산책 도중에 이웃집의 반려 고대 생명체, 이를 테면 올드원에게 위협적으로 굴 때는 둘 사이를 가로막아 쇼고스를 진정시킨 뒤, 준비한 간식으로 시선을 돌려 상황을 정리했다.
<누나의 에펠탑> (작가 이지은)
P.171 中에서
"두나, 너! 너도 공부 안하고 도현이처럼 살면 연구소 보낼 거니까 그렇게 알아.
이제 네가 맏이니까 행동 잘하고."
P.175 中에서
"첫아이 교육은 대개 실패하기 마련이죠. 너무 큰 기대를 해서 이것저것 남들 하는 건 다 시켜봅니다.
첫애는 특히 부모 자신의 얼굴이거든요!"
P.176 中에서
"그러다 망치면 둘째한테 기대는데, 그땐 이미 늦습니다."
"그 순간 첫째는 벌써 중2병 고지를 넘고 있죠. 부모는 갱년기, 첫 애는 사춘기!"
"그래서 저희 '내 아이 다시 키우고 연구소'에서 임상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다시 키우고 싶은 내 아이,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던 그때로 되돌리고 싶은 부모님, 지금 연락주세요!
중2 이후엔 늦습니다! 입층된 생체과학 시스템을 통해 자녀의 몸을 퇴행시켜드립니다!"
"여기서 퇴행이란 사실상 진보죠!"
"네, 그럼요!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기이니까요.
돌아갈 수 있는 나이는 생체 스캔을 통해 결정해드립니다. 2차 성징의 징조가 발휘되기 전으로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죠. 임상 참가자 나이는 열다섯까지만 가능! 늦기 전에 전화하세요!
내 아이는 내가 지켜야죠!"
P.180 中에서
도현이는 열한 살로 퇴행했다. 특허 받은 세포축소술과 생체되감기 시스템을 통해
먼지 냄새도 없고 뇌가 보송보송하고 성격도 순한 그 시절의 이도현 어린이가 되었다.
공부밖에 모르던,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아들로, 다시 영재 수업에 들어가고
전국 상을 휩쓸고 현수막 업체의 전설로 남을 테지
<속마음 도둑> (작가 이루카)
P.203~204 中에서
"어,맞다! 설정창 열어 봤어? 내 거는 감정 수치 조절이 이상하더라?"
"맞아, 내 설정창도 저렇게 감정수치가 넘어가 있었어. 아마 감정 센서가 증폭되면서 접속 중인
다른 아이들의 감정이 우리에게 보였던 것 같아."
한 동안 말 없이 서로의 설정 창을 비교해 보다 예림이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실은, 어제 내가 본 캡슐은 제나, 내 것이었어. (중략) 근데 코딩 동아리뿐만 아니라
교실에서도, 밖에서도, 같이 하고 싶은 친구 자리가 비어 있는 모습에 불안해하는 너의 모습이 계속 보이더라.
그러다가 깨진 캡슐을 걱정하는 널 버고 너도 나처럼 보이는 것을 알게 되었어.
미안해, 일부러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어."
제나는 예림이가 왜 처음에 사과부터 했는지 알게 되었다.
"나도 봤어. 보면 안되는 거였지만, 알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그만...."
P.205~206 中에서
정작 자신의 속마음은 찾아보지도 않고 다른 속마음부터 확인하려 했던 제나의 선택이었다.
제나는 도둑처럼 남의 속마음을 훔쳐본 것이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자신의 속마음을 마주한 제나는
어쩐지 후련한 기분이었다.
대부분의 앤솔로지가 지닌 한계점이겠지만,
이 앤솔로지에서도 마찬가지로,
여기에 수록된
10편의 이야기가 모두 기억에 남지는 않았고,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위에 소개한 4편의 소설 중에서
스토리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떠올리게 한
홍지운 작가의 <세상의 나쁜 쇼고스는 없다>
그리고
주제적으로 한번 더 생각해보게 했던 소설은
이지은 작가의 <누나의 에펠탑>이었다.
부모의 교육 욕심에 따라, 아이를 말 잘듣는 그때로,
수술을 시켜 퇴행시켜버린다는 소재가 내 기준에서는 파격적이었고,
아이와 부모의 관계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