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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Dec 20. 2023

거미집

감독 김지운 / 2023년 9월 개봉/ 한국

예술의 성취와 삶의 욕망을 향한 작가들의 삽질 시리즈 No.3 

  우리나라의 고전영화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하길종 감독의 <화분>(1972년)을 보고, 

내친김에 1960년에 개봉한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까지 본 적이 있다. 

그때 왜 그런 영화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생각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비밀스러운 분위기의 ‘저택’에서 모종의 ‘사건’이 벌어진다는 류의 줄거리에 꽂혔던 것 같다. 

  처음에는 서양의 고딕스릴러 장르의 영화나 소설을 찾아보다가, 

우리나라의 1960년대-1970년대 영화까지 관심이 닿았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렇게 잠시 관심을 가지다가 서서히 잊어버린 한국의 고전영화들이 

다시 생각난 것은 올해 추석 연휴에 개봉한 <거미집> 때문이다. 

  김열(송강호) 감독은 현재 찍고 있는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완벽한 걸작이 될 거라고 믿고 있다. 꿈에서 거미집의 완벽한 결말을 보았기 때문이다. 꿈에서 본 그대로만 찍으면,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 될 수 있는데 현장에 모인 배우들은 일정 타령을 하며 불만을 쏟아내고 출장 갔던 제작자와 검열 공무원은 불시에 들이닥쳐 촬영장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된다. 

   김열 감독이 결말을 다시 찍기 위해 배우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설득을 하는 과정에서 

점점 난장판이 되어가는 영화 촬영장의 모습은 그야말로 블랙코미디의 진수. 

단, 이 영화를 즐겁게 보려면 웃음 코드가 맞아야 한다. 

나는 김지운 감독의 초기작인 <조용한 가족>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웃음 코드와 잘 맞았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극을 즐기고 난 뒤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다. 

 “당신은, 아니 나는 ‘나의 재능’을 믿을 수 있는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믿을 수 있는가?

 비단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이 질문은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던 질문이기에 

김열 감독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재능에 대해 회의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전개될 때는

마냥 영화를 편히 볼 수만은 없었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왜 더 이상 도전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내가 아무 일도 안 하면 좌절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진짜 속마음은 “내가 평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였다. 

그동안 나 스스로 믿어왔던 대전제. 

“나는 어쩌면 아주 특별한 사람일지도 몰라.”라는 이 대전제가 

내 안에서 산산조각 나는 것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도전할 때마다 마주하는 것은 그 꼬라지조차 보기 싫은, 

치가 떨리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견디고, 

스스로를 믿어보라는 이야기, 그것이 바로 재능이라는 이야기를 

영화를 완성해가는 김열 감독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그가 행하는 일들이 모두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지는 말라고 외치는 듯하다. 

  비록 그것이 영화의 엔딩에서 김열 감독이 보여주는 떨떠름한 그 모습, 

그 자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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