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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Nov 23. 2023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감독 요아킴 트리에 / 2022년 8월 개봉 / 노르웨이

예술의 성취와 삶의 욕망을 향한 작가들의 삽질 시리즈 No.2 


일명 ‘사누최’라는 줄임말로 여기저기서 이 영화에 대해 조금씩 주워 들은 바는 있지만, 

그동안 큰 관심은 없었다. 그러다 여주인공이 오슬로 시내를 달리는 장면을 우연히 보고,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율리에는 정감이 가지 않는 캐릭터다. 영화에 등장하는 첫 번째 남자친구인 악셀에게는 열등감을 느껴 이별을 고하고, 두 번째 남자친구인 에이빈드에게는 우월감에 사로잡혀 막말을 퍼붓는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율리에와 나는 상당히 다른 부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진로를 정하는 과정에서 갈팡질팡하거나 나는 그저 타인의 삶에 등장하는 ‘조연’에 불과한 것 같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부분에서는 일정 부분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그녀가 자신의 쓴 글에 대해 잘 나가는 만화가인 악셀에게 소위 인정 욕구를 느끼는 부분은 묘하게 짜증이 났다. 아마 그녀의 모습에서 결코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나의 숨겨진 부분들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투병을 하는 전 남자친구인 악셀에게 찾아가 굳이 거기서 자신의 진로에 관한 인생 상담을 하고, 현재 남자친구한테는 언제까지 커피나 나르고 살 거냐고 퍼붓는 율리에의 모습에서 눈을 질끈 감아버렸지만 내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뿐, 누군가에게 나 역시 우월감에 취했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저런 말을 한 적이 있지 않았을까? 

 만약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 과거의 나를 깊이 뉘우치고 그 말을 들어야 했던 상대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제발, 그런 일이 없었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물론 악셀이나 에이빈드에게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율리에의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으므로 나는 그녀의 발자취와 욕망을 따라가며 영화를 보았다. 의대를 관두고 포토그래퍼로 진로를 바꾸고, 여성의 심리학과 관련된 칼럼을 쓰며 타인의 반응을 살피는 율리에의 모습에는 이제 막 30대에 접어들었거나, 30대의 긴 터널을 지나온 여성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을 것이다. 


  의학도, 심리학도로, 포토그래퍼, 칼럼니스트로 수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 나가는 동안 율리에의 ‘진짜’ 인생은 시작되었을까?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서의 율리에의 ‘진짜’ 삶이 시작되었는지는 영화의 에필로그에 이를 때까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생각해볼 뿐이다. 그녀의 삶이, 다음 단계, 다음 챕터로는 한 발자국씩 나아갔기를. 더불어 나의 삶도 적어도 챕터 하나는 지나 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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