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영화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8
※ 주의. 이 리뷰에는 다량의 스포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4월 13일, <헌츠맨 윈터스 워>가 개봉했다.
지난 2012년 개봉한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의 후속 편이다.
제작사에서는 3부작으로 기획했다고 한다.
전편인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백설공주 이야기를 판타지 영화로 만든 것이다.
기본 줄거리는 백설공주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거기에 민중 봉기와 권력 투쟁이라는 양념을 더했다.
백설공주, 즉 스노우 화이트는 선왕 매그니스의 혈통을 잇는
왕국의 유일한 후계자이면서
가혹한 독재 군주(이블퀸)에 맞서는 (잔 다르크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전쟁 여웅이었고,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선택받은 사람(Only One), 이자
슬픔 속에서 부활하는 구세주(메시아)였다.
비록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구조를 따르긴 하지만
(고귀한 신분을 가지고 태어난 영웅이 모종의 이유로 버려져
비참한 삶을 살다가 죽을 뻔한 위기를 겪고, 조언자를 만나 마침내 각성하고,
비탄에 빠진 민중들을 구원해낸다는 것이 전형적인 영웅 플롯 서사다.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영화, <엘리자베스>는 판타지 영화는 아니고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 사극 영화지만,
공주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가혹한 피의 군주이자 이복 자매인 여왕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지지세력의 도움으로
마침내 여왕으로 추대된다는 점에서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영화의 색감이라던가, 비탄에 잠겨 있는 인물들의 어두운 분위기,
그리고 각각의 캐릭터들이 지니고 있는 속성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음에도, 정작 극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주인공의 연기가 설득력이 없었고,
(누가 저의 형제가 되어주겠습니까?라고 공주님 연설하시는데,
아무리 주인공 보정이라지만,
저렇게 연설해도 군대를 이끌 수 있구나,
유일한 장점이 혈통이라는데,
그 혈통이 왕국에서는 제일 중요한 능력이라니 별 수 있나?)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형제들, 백설공주님 앞에 무릎 꿇는데,
저래 가지고 어떻게 이블퀸을 이기겠다는 것일까?
심히 궁금했지만, 어차피 동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권선징악이 결말일 테니 알아서 납득하라는 걸까? )
거기다 여주인공과 감독의
불륜까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시리즈의 존폐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하지만 결국, 제작사는 2편에서 헌츠맨의 이야기를 다루겠다고 발표했다.
그렇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헌츠맨 윈터스 워>는
1편에서 스노우 화이트의 각성을 도왔던 조력자 헌츠맨의 이야기다.
그런데 1편과 2편의 공통점은 헌츠맨의 연인이었던,
새라의 이름뿐인 듯하다.
1편에서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던 건 이블퀸이었다.
절대 악의 능력으로 가혹한 통치를 휘두르는 마녀, 이블퀸.
하지만 그녀는 어린 시절, 전쟁터에서 학대받고,
욕정에 눈이 먼 남자들에게 유린당하는 가난한 소녀였고,
결국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미모를 이용해 늙은 왕들을 유혹해 죽이고
그들의 왕국과 권력을 뺏는 악녀로 거듭났다.
하지만, 자신을 덮치는 세월의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
아무리 젊은 여자들의 정기를 취해 미모를 유지하려고 해도,
일시적인 미봉책일 뿐. 그녀는 결국, 마법의 거울이 조언한 대로
스노우 화이트의 심장을 취해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로불사의 몸을 얻으려고 한다.
영화는 이블퀸의 과거도, 심정도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거울 속 몇 개의 컷으로 파노라마를 구성해 짧게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이블퀸을 맡은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는
그녀가 왜 어리고 가난한 소녀에서 가혹한 통치로
백성들을 비탄에 몰아넣는 악녀가 되었는지,
관객들에게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스노우 화이트에게 네가 끌고 온 군인들이
너 때문에 잔인하게 죽어나가는 현실을 똑바로 보라면서,
너와 나는 다를 거 같냐고, 이런 시대에는 가혹한 군주가 어울린다며
비웃다가
스노우 화이트에게 칼에 찔린 뒤
회한의 표정으로 죽는 이블퀸.
그런데 2편에서 이블퀸의 캐릭터는
1편의 복잡한 정체성은 모두 갖다 버리고,
동생의 권력과 마법을 탐하는 악녀로만 나온다.
이블퀸에게 동생이 있었다는 것도,
2편에서 처음 알았는데,
(1편에서는 라베나는 핀과 남매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 그래 여동생도 있었다고 치자.
라베나의 동생, 프레야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개처럼 달려들었던
라베나의 어린 시절은 전혀 모르는 듯하다.
흑화하기 전,
2편의 프레야는,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자 왕족, 로열패밀리로만 보였다.
(둘이 자매라며? 태어날 때부터 우리 가문의 여자들은
마법을 지니고 태어난다며? 그런데 1편에서 라베나의 어머니는
왜 라베나에게만 가장 아름다운 피로 마법이 완성되고, 사라진다는
이야길 해주었을까?
그때 위험하니까 프레야는 다른 나라로 가 있으라고 한 건가?
아니면 프레야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나?
감독이 바뀌었다고 해도, 적어도 하나의 시리즈 안에서는
세계관을 공유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관객이 이런 디테일한 상황까지 추측해야 하는지 의문이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면, 그래 넘어가도록 하자)
2편에서 제일 입체적으로 묘사된 건, 그나마 아이스퀸인 프레야인데
사랑에 배신당하고,
딸을 잃은 뒤
얼음의 마법을 쓰는 마녀가 된 된 프레야.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 어린아이들을 수집해
헌츠맨이라는 정예 부대로 만든다.
그녀는 헌츠맨들을 전쟁터에 내보내 다른 왕국을 정복하며,
자신의 제국을 넓혀간다.
하지만, 프레야는 헌츠맨을 자신의 권력 확장과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건 아닌지,
이블퀸이 프레야의 군대를 죽이려고 하자,
나의 아이들을 건들지 말라며
죽음으로 이블퀸에 맞선다.
프레야는 비정한 어머니와 강인한 어머니의 양면을 보여준 셈인데,
이건 아이스퀸을 맡은 에밀리 브런트의 아름다운 연기와
눈빛 연기에 설득 당해 영화를 좀 더 높게 평가한 거고,
정작, 이 영화의 타이틀롤을 맡고 있는 에릭 이하 헌츠맨들에게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다.
프레야가 마법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니
그녀에게 감히 대항 못한 건 이해한다고 쳐도,
도대체 프레야한테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건지,
아이스퀸이 에릭과 새라에게,
너희들이 부럽구나, 라는 대사를 하며 죽어갈 때라도,
단 한 장면이라도 할애해주었다면.
아니, 대사 하나라도 넣어주었다면.
프레야를 죽일 만큼 증오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삶을 박살 내어, 살인무기로 양성한 사람인데!)
그래도 거둬주고, 돌봐주었으니 유사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의 정은 있었나?라는 생각은
프레야가 죽었을 때 에릭과 사라가 짓는 표정을 보면,
내가 이 영화에 대체 무얼 바란 거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 사랑은 위대하다, 이 명제 앞에서,
모든 것을 납득하라는 거냐.
하지만, 적어도 영화 표값이 아까운 영화는 아니었다.
왜냐면 그럭저럭 시간이 가긴 했다.
특히 이블퀸이 프레야 앞에서 다시 나타나는 장면에서는
긴장감이 살아났다. 이블퀸의 캐릭터는 2편에서는 그야말로 악의 화신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블퀸은 매혹적이었다.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는 아직 어떤 내용일지 모르겠지만,
이블퀸이 주인공이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프레야 이야기는 사족 같았다.
시리즈 안에 구겨 넣지 말고,
독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서 좀 더 감정선을 보완했더라면,
차라리 좋았을 것 같다.
디즈니를 필두로
<신델레라>, <말레피센트> 등
요즘 동화를 원작으로 하는 실사 영화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
헌츠맨 시리즈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제작된 영화 중 하나다.
한동안 유행처럼 자리 잡았던 원작 동화 비틀기 열풍이 지나가고,
지금은 보다 원전 본연의 이야기에 충실하자는 쪽이
실사 영화의 주류 제작 방향이 된 것 같다.
하지만 헌츠맨 시리즈는, 창의적인 시각은 아니지만
원작을 새로운 관점에서 비틀어보려고 하는 점이 좋았다.
비록 평론가나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지만,
스노우 화이트를 레지스탕스(저항군)의 지도자로 설정한 것도 좋았고
(사실, 이런 설정은 신일숙의 만화 리니지도 떠오르고(어디 그것뿐이랴만?)
그다지 신선한 설정은 아니었지만, 제작진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의 시각효과 등 비주얼적인 요소를 가미해 뚝심 있게 전달하려는 것이 좋았는데)
2편은 내가 헌츠맨 시리즈 1편에서 좋게 보았던 장점들이 죄다 사라지고,
음, 그저 그런 예쁘고 착한 실사 영화 한편이 되어버린 것 같다.
예쁘고 착한 실사 영화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디즈니의 실사 영화인 말레피센트와 신델레라도 재미있게 보았다.)
적어도, 헌츠맨 시리즈에서는 좀 더 다른 이야길 기대했다.
살인도구로 키워진 아이들과, 사랑에 배신당한 비정한 어머니 사이에는
뭔가 더 강렬한 이야기가 있지 않았을까,라고 기대한 내가 바본 걸까?
(프레야가 에릭과 사라를 갈라놓으려 했던 얼음 벽은,
진실과 거짓은 한 끗 차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믿음을 시험하는, 벽이기도 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사랑의 속성과 본질.
이런 주제를 좀 더 밀고 나갔더라면 어땠을까?
갑자기
어떤 만화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사랑의 위대함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이 영화도 그런 이야길 하고 싶었던 거라면... 그렇다면, 뭐,
에릭과 새라는 다시 맺어지니까, 주제 전달에는 성공했다고 봐야 하나?
사실, 새라의 캐릭터도 매력적이었고, 연기도 충분히 좋았다.
연인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사랑에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이자
자신의 삶을 박살 낸 원수에 대해 품는 이중적인 감정.
이 모든 게 새라를 연기한 배우의 눈빛에서는 읽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영화의 대사나, 장면에서는
직접적으로 이러한 감정이 묘사된 것이 없다.
모든 것을 다 배우의 연기로 추측해야만 하는 시나리오.
하지만 사랑의 힘은, 위대하니까요.
이 영화의 타이틀롤인 에릭.. 헌츠맨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이 영화에서 뭘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