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스티븐 킹 지음∥장성주 옮김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밤이었지만 조명은 밝았다. 하지만 내 주위는 새까만 어둠뿐이었다. 너무 촘촘해서 머리카락 한 올도 들어갈 틈이 없었다. 기가 막히는 제목이었다. 별은커녕 아무것도 없는 한밤이었다. 주인공에게 몰입하고 싶지 않았지만 스티븐 킹은 끊임없이 나를 몰아 댔다. 나중엔 내 숨이 막혔다.
이 책은 『1922』, 『빅 드라이버』, 『공정한 거래』, 『행복한 결혼 생활』 총 4편의 중편 소설을 묶은 작품집이다. 이 작품들을 꿰뚫는 것이 ‘별도 없는 한밤’이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각기 다른 밤이지만 말이다. 그중에서 가장 깜깜한 밤은 첫 번째 실린 ‘1922’였다. 읽는 내내 악몽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지독한 꿈이었지만 생생했고 꿈이라고 마냥 흘려보낼 수 없었다. 그리고 한 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다. 끝을 내고 나자 온몸이 축축했다. 기분 나쁜 땀이 손가락 끝에서까지 배어 나왔다.
우리는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작고 사소한 것이든 거대한 것이든. ‘욕망’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내 욕망의 실현을 위해 누군가를 없애야 한다는 데 있다. 특정한 누군가. ‘저 사람만 없다면’ ‘누구만 사라진다면’
적어도 누구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그런 경우에 종종 처하곤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보통은 스스로 그 사람을 멀리하거나 떠난다. 그럴 수 없는 처지라면? 또한 정도가 매우 심하다면? 누군가만 없어지면 자신의 행복이 보장될 것 같다면?
문제 해결의 극단은 그 사람의 죽음이다. 사고로 죽든, 병으로 죽든,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든.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죽이든. 작품은 가장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작가는 작품의 주인공과 독자들을 극단의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보통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견딜 수 없다. 극단의 선택은 결국 자신을 어떤 식으로든 파멸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욕망이 탐욕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백 마디 훈계보다 한 편의 작품이 훨씬 효과적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 욕망을 다스릴 수 있길.
‘1922’ 다음의 작품들은 비교적 덜 어둡다. ‘빅 드라이버’는 그 어둠에도 불구하고 통쾌함이 있다. ‘공정한 거래’는 미스터리 보다 어둠의 마법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읽고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낯설게 느껴졌다.
P.S: 욕망의 끝
[맥베스] 2015/ 영국, 프랑스, 미국/ 저스틴 커젤 감독
맥베스가 던컨 왕을 죽이기 전, 할 수만 있다면 너무도 말리고 싶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내가 몰입하기에는 수사가 너무 지적이었다. 그래서 맥베스가 내뱉는 후회와 불안의 말들은 잘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스티븐 킹의 ‘1922’ 속의 제임스의 목소리는 확실히 현대적이었다. 2015년 영화 맥베스에서 맥베스가 던컨 왕을 죽일 때의 장면. 1922년 의 제임스가 아내를 죽일 때의 장면이 겹쳐졌다. 그야말로 생생하게. 내가 그 안의 맥베스가, 제임스가 되었고 내 손에 던컨 왕과 아내의 피가 흥건했다. 나 역시 나의 탐욕을 구체화시키고 싶은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욕망이 탐욕이 되는 순간, 그것이 물리적 형체를 갖는 순간, 우리는 지옥 한 가운데 서고 만다. 이 오래된 교훈은 그러나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