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의 영화들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11
달력을 넘기다가, 이틀 뒤면 스승의 날이라는 걸 깨달았다.
일상에 치여, 언제부터인가 스승의 날도 잊고 살았다. 성큼성큼 기억의 창고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본다.
때는 2001년, ‘와라나고’라는 말이 있었다. 2001년이라면, 영화 <봄날은 간다>가 개봉했던 해이다. 같은 해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영화도 개봉했다
때로는 <봄날은 간다>의 상우 대사를 따라 했다가, 또 어떤 날에는 <번지점프를 하다>의 인우 모습과 자신이 닮았다고 말하던 그는 수업시간에 우리들에게 ‘와라나고’라는 단어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 대중들에게 외면받았지만 그렇게 잊히기엔 너무나 아까운 영화라고 말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네가 하고 싶었던 음악 해서 행복하냐?”
화면 속 한 남자가 또 다른 남자에게 묻는다. 어느 새 중년의 남자가 달랑 팬티 한 장만 걸치고 기타를 치면서 룸에서 노래를 부르는 화면이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 버린 너를 못 잊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가끔 영화의 한 장면을 흉내 냈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어느 날 장난기가 발동한 한 친구가 선생님에게 ‘젓가락’과 ‘숟가락’이 같은 발음인데 왜 젓가락은 ‘ㅅ’이고 숟가락은 ‘ㄷ’이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 학생의 자리까지 냉큼 달려와 어깨를 붙잡고
“너, 누구야! 너 도대체 누구야!”
를 연발하는 것이다.
그 이후 우리는 그를 ‘빗나간 이병헌’이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어느 날, 선생님은 역시 그해에 개봉했던 <인디안 썸머>의 박신양 흉내를 내었다. 그날 선생님의 별명은 ‘엇나간 박신양’으로 바뀌었다.
얼마전 종영한 TVN 프로그램 <배우학교>의 박신양을 보니, 언제나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했던 그 선생님의 모습이 흐릿하게 겹쳐졌다. 선생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아직도 선생님이 그 학교의 교단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분필을 쥐고 침을 튀기며 수업을 하던 선생님의 얼굴에는 언제나 열정이 넘쳐흘렀다는 것이다.
“네가 하고 싶었던 음악 해서 행복하냐? 우리 중에 음악 하는 사람은 너뿐이잖아.”
성우는 비틀즈를 꿈꾸었지만, 지금 그는 지방의 나이트클럽을 전전하고 있다. 음악을 하는 모든 사람이 ‘퀸’이 되는 것이 아니고, 문학을 하는 모든 사람이 ‘헤밍웨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된 지금, 우리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언젠가 읽은 시집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이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꿈을 하루하루 죽여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안다. 음악을 포기한 그의 친구들이 있듯이 이 세상 어딘가에는 성우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자기 방식대로 죽어가든 살아가든, 그는 아직 존재하고 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본 이후 나는 선생님이 추천해줬던
<라이방>과 <나비>와<고양이를 부탁해>를 차례로 보았다.
결코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택시 기사들과 스무 살의 청춘들.
그리고 산성비로 오염된 도시에 망각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위하여 찾아오는 사람들.
그들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인가. 하지만 그들의 담담한 체념이 오히려 그들을 존재하게 만드는 이유는 아닐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이지 이들 영화는 착한 선생님의 모범 정답처럼 어떤 삶은 행복하고 어떤 삶은 불행하다고 규정해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