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死者)를 위한 굿판 1.
레이먼드 챈들러 추리소설∥ 박현주 옮김
‘필립 말로’는 『안녕 내 사랑』이라는 작품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처음부터 녹록지 않았다. 작품의 시대가 1930년대라는 점도 한몫했지만, 그 보다 그의 말투 때문이었다. 냉소로 가득 찬 말들. 툭툭 내뱉듯 던지는 농담. 상대의 본심을 찌르는 대꾸. 이런 사람과 두 마디 이상 했다가는 상처만 받을 것 같았다. 하여튼 상대하기 힘든 남자였다.
이 작품은 이러한 ‘필립 말로’가 탄생하는 작품이다.
33세 독신의 사립탐정. 큰 키에 잘생긴 얼굴. 자신의 탐정 사무실, 고객 대기실의 문을 잠그지 않는 남자. (비서가 없으므로 의뢰인을 위한 배려라고 한다) 담배를 입에 달고 살지만 그보다는 술을 더 좋아한다. 사무실에는 사무실용 술이 있다. (지금으로써는 알코올 중독 수준인데 작품 속의 인물들은 요즘의 커피처럼 술을 마셔댄다) 특기는 역시 독설과 냉소. 어려운 농담? 하지만 의뢰인과의 약속은 철저히 지킨다. 아니 의뢰인이 요구하지 않은 것까지 헤아려 조사한다. 돈에는 관심이 없다. 제 몸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한다. 볼수록 인간적이다. (이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일단, 그의 말투에 상처받지 않아야 한다) LA, Hobart Arm의 아파트에 살며 혼자 움직인다.
이 작품의 사건은 말로가 늙고 병약한 퇴역장군 스턴우드의 의뢰를 받아들이며 시작된다. 탐정이 등장하는 작품의 시작은 언제나 비슷하다. 독자는 언제나 이 부분에서 설렌다. ‘어떤 의뢰인이 어떤 기막힌 사건을 몰고 올 것인가?’ 하면서.
말로는 스턴우드 장군의 둘째 딸 카멘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부탁을 받지만 어쩐지 다른 일에 마음이 쓰인다. 장군의 큰 딸 비비안의 남편인 ‘러스티 리건’의 실종이다. 생명력이라고는 휠체어에 앉아 눈꺼풀을 드는 게 고작인 장군은 사위 러스티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고 한다. 그 말을 할 때 노인의 눈에 빛이 어린다. 말로는 장군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렇다고 말로가 의뢰받지도 않은 일(러스티 실종사건)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말로에게 무엇보다 의뢰인의 뜻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말로는 곧장 일에 착수한다. 이 과정에서 말로가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러스티의 행방을 쫓고 있는지.
첫 만남. 스턴우드 장군과의 온실 속 대화. 그곳에서 말로의 눈으로 보고 듣게 되는 한 사람의 진심. 그리움과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미안함. 스턴 우드 장군이 러스티에게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말로는 그 감정을 외면하지 못한다. 복잡하게 얽힌 사람들과 이어지는 죽음.
결국, 러스티의 행방이 밝혀지는 순간. 처음부터 스턴우드 장군이 말로에게 바란 일이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가 늦은 것이다.
작품 곳곳에 레이먼드 챈들러의 서정적 문장이 배치된 이 작품은 ‘필립 말로’라는 독특한 인물의 탄생기이다. 사람의 마음을 송곳보다 날카롭게 후벼 파면서도 따뜻한 이 남자. 아직 스모그가 도시 전체를 집어삼키기 전의 LA에서(1930년대) 푼 돈 몇 푼을 받으며 자신의 목숨을 거는 이 남자. 입으로는 세상의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을 것 같으면서도 슬픈 눈을 가진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 남자. 이 남자의 입을 빌려 레이먼드 챈들러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일단 죽으면 어디 에 묻혀 있는지가 중요할까? 더러운 구정물 웅덩이든, 높은 언덕 꼭대기의 대리석 탑이든 그게 중요한 문제일까? 당신이 죽어 깊은 잠에 들게 되었을 때, 그러한 일에는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기름과 물은 당신에게 있어 바람이나 공기와 같다. 죽어버린 방식이나 쓰러진 곳의 비천함에는 신경 쓰지 않고 당신은 깊은 잠에 들게 되는 것뿐이다.”
이런 식이다.
말로는 별로 감정이 실리지 않은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상처받은 마음보다도 무겁다.”
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말로는 누구보다 Big Sleep(죽음)의 방식과 쓰러진 곳의 비천함에 마음을 쓴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죽음의 방식과 쓰러진 곳의 비천함에 마음 아파하는 것이다. 굳이 우리식으로 따지면 말로는 이 작품에서 죽은 자를 위한 굿판을 벌였다. 말로의 행동은 살아 있는 사람(스턴우드 장군)을 위함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죽음 자체는 돌이킬 수 없지만 실종이 죽음으로 확인되는 순간, 비로소 안식을 얻게 된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에게 평안을 선사하는 일. 말로는 그 일을 해냈다. (그 와중에 새롭게 죽는 자들이 줄줄이 등장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장르가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