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an Mystery's Cabinet No1.
언 더 그 라 운 드 양억관 옮김
지난 토요일 오후 지하철로 강남역에 갈 일이 생겼다. 비교적 덜 붐비는 7호선을 타고 대림역에서 순환선인 2호선으로 갈아탔다. 붐볐다. 출퇴근 시간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사람이 많긴 많았다. 나는 진행방향에서 세 번째 열차의 두 번째 출입문 가까이에 섰다. 지하철로 통근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몇 번째 열차 몇 번째 출입문이 출구와 가깝다거나 환승에 유리한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왕이면 출근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도심까지 가 볼까도 했지만 그보다 먼저 약속이 생겼다. 그것도 사람 많기로 유명한 강남역서. 유심히 사람들을 살폈다. 티 나지 않게 몸을 틀거나 고개를 돌렸다. 앉은 사람은 대부분 졸거나 휴대전화에 빠졌다. 서 있는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 신문지로 둘둘만 사린이 든 봉지를 슬쩍 둔다. 그라인더로 뾰족하게 간 우산 끝으로 비닐봉지를 찌른다. 사린 액체가 신문지를 적시며 흐른다. 그 이후는?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필자의 말 대로 “딱히 다른 날과 구분할 필요도 없는 당신의 인생 속 하루에 지나지 않은 날.” (p24) 지하철 사린 사건이 일어났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의 지하철 사린 사건의 피해자 가운데 60여 명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일종의 인터뷰집이다. 하루키는 단순히 그 날의 이야기만을 실지 않았다.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프로필을 먼저 적어 내려갔다.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자랐으며 어떤 직장엘 다녔는지. 그리고 3월 20일 아침 사린 지하철에 탄 경로와 대응과 그 이후의 삶까지. 적게는 대여섯 페이지에서 많아도 열 페이지를 넘지 않는 분량에 이런 내용이 빼곡히 실려 있다. 그럼에도 대충 다뤘다는 느낌이 없다. 역시 소설가여서 일까. 인터뷰한 사람과 직접 마주 하고 있는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그 뒤의 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하철에 타려는 사람을 말리고 싶었다. 적어도 사린가스 때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는 데도 평소의 지병이나 피로 때문이라고 여기는 사람한테는 책 속으로 기어들어가 끌어내리고 싶었다. 그만큼 생생하다.
하나의 사건에 연루된 많은 사람의 공통된 경험을 다루면서도 한 편 한 편 새롭다. 이유는 모든 사람의 다른 프로필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경험도 다르다. 확실히 느낌도 대응도 가지각색이다. 인물을 다루는 솜씨는 작가의 소설보다 더 뛰어난 느낌이다.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릇된 종교가, 잘못된 맹신이, 비뚤어진 자기 확신이 어떻게 개인 사회를 망가뜨리는지. 그와 동시에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많은 우연과 인연이 얽혀서 만들어지는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다행히 내가 탄 열차에는 사린 봉지가 놓여 있지 않았다. 나는 아무 탈 없이 지하철에서 내렸다. 가만히 서 있어도 사람들에 밀려 저절로 출입문 밖까지 왔다. 개찰구를 나오자 더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쏟아졌을까? 이 지하상가에서 사린이나 비슷한 유독물질이 든 봉지를 터트린다면? 나조차도 기침이 나고 콧물이 쏟아지면 감기에 걸렸거나 요즘 며칠 무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일상을 일상 아니게 만드는 사건이 닥치는 것일까?
『그 날 아침 그들은 느닷없이 내 인생에 뛰어들어 독가스를 살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