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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Aug 12. 2016

[달.쓰.반] 29편/영화 <동주>와 <덕혜옹주>

부끄러움을 읊조리는 그 남자의 시,  침묵에 휩싸인 그 여자의 등   

가끔은 달콤하고, 때로는 쓰디쓴, 장르 불문, 반전 있는 금요일의 리뷰 No.29

※ 주의 : 이 리뷰는 영화  <동주> 및 <덕혜옹주>의 주요장면(마지막 장면 포함)에 대해 언급합니다.


몇달 전 극장에서 영화 <동주>를 보았고, 

며칠 전에는 최근 개봉한 영화 <덕혜옹주>를 보았다.

<동주>를 보았을 때는 조용히 시를 읊던 그 남자의 목소리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 나온다


동주는 창씨 개명을 강요받은 후 '참회록'이라는 시를 쓴다. 

일본어를 쓰지 않고, 일본 이름을 갖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대였다.


히라누마 도주가 된 

동주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조선어로 된 시를 쓰는 일 뿐이었다.

윤동주 시인을 연기한 배우 강하늘의 조용하고 담담한 목소리가 

화면 위로 흐를 때,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서명을 강요당한 

동주가 너무 부끄럽다고 흐느낄 때 

극장 안의 사람들도 조용히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너무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하고 그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게 부끄러워서 서명을 못하겠습니다.




황제의 딸로 태어났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인 건 

그녀도 마찬가지이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합병된 이후 태어난 망국의 황녀. 

부모와 강제로 이별하고, 

적국의 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 신세.


그녀 또한 고개 숙여 말한다.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온 

조선의 노동자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부끄럽다고.

연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옵니다."

이 대사는 굳이 넣었어야 할까, 의문이지만, 


조선의 옹주 이덕혜. 

적국에서 아무런 의미조차 갖지 못하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연설을 시작하는 

그녀의 슬프고 처연한 얼굴은 


이런 시대에 태어나 

시인이 되길 꿈꾼 것이 너무 부끄럽다고 

말하는 동주의 목소리와 오버랩되었다.


영화 속에서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독립을 염원하지만

적극적으로 독립 운동에는 나서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은 부끄러워한다.

이런 시대에  태어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인을 꿈꿔서, 

이런 시대에  태어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옹주여서.


덕혜는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음 놓고 울지 못하고 숨죽이며 운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 김장한(박해일)은 

조용히 뒤돌아선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울 수 있도록. 

돌아선 남자의 등에서도 슬픔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장면에서 두 배우의 내공이 느껴졌다.



1945년 8월 15일. 덕혜는 드디어 해방의 소식을 듣게 되지만.

이름 때문에 입국을 거부 당한다.


이승만 정부는 

정치적인 이유로 조선 왕족의 입국을 거부한다.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덕혜는 

조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하다. 절망한 덕혜 앞에 한택수가 나타나 말한다.


"덕혜옹주님, 아니십니까? 세상이 또 바뀌었습니다."

환영을 받으며 귀국선에 오르는 한택수를 바라보던 

덕혜는 미친듯이 웃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린 듯한 웃음이었다. 

이 장면에서 손예진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해방 후 꽤 오랜 세월이 흐르고, 

영화는 한 여인의 등을 다시 보여준다.


그날 이후 시간이 멈춰버린, 

오랜 침묵 속에 감정이 퇴화되어 버린 등이다.


덕혜가 서서히 등을 돌려 관객쪽으로 얼굴을 보여줄 때, 

필사적으로 무너지지 않으려고 했지만,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울고 말았다.


덕혜옹주는 픽션이 첨가되어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도 분명히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억지로 감정을 강요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덕혜옹주의 연설을 듣고 

조선의 노동자들이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 빼고)

이 부분은 억지스러웠다.


덕혜의 입국 거부 장면에서는 오히려 덤덤하게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한택수(윤제문)의 얼굴이 보일 때, 내 옆에 있던 어떤 관객은 

육두문자를 사용하며 욕을 하였다. 

세상이 또 바뀌었습니다, 하며 자연스럽게 귀국선에 승선하는

한택수의 모습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얼굴을 바꾸는

친일파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여 

그 장면을 더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녀가 서서히 관객쪽으로 등을 돌릴 때,


망국의 황녀로서가 아닌 

돌아갈 고향을  잃어버린 채 

고독과 절망의 세월을 보냈던 

한 여인의 인생이 너무 가엽게 느껴졌다.


또한 그 모든 감정을 묵직하고 절제된 연기로 전달해준 

손예진의 연기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었다.


영화 <동주>에서는

타이틀롤을 맡은 강하늘의 연기도 나쁘진 않았지만

송몽규 역의 박정민의 연기가 더 인상 깊었다.

영화 <파수꾼>에서도 연기 정말 잘한다고 생각한 배우였지만,

<동주>에서의 박정민은, 

극의 중심에 있는 배우였다.


윤동주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괴로워하는 타입이라면,

송몽규는 강한 신념을 지니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타입이다.


송몽규는 이런 시대에 태어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한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문학이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도구이다.

문학적인 재능도 뛰어나서 

동주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송몽규를 질투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동주는 송몽규를 그림자처럼 따랐다)


결국 송몽규 역시 시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동주와 함께 비극적인 최후를 맞아 스러지긴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길은 어디인지 

자신이 언제 목소리를 내야할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덕혜옹주>에서도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인물이 있다.

바로 이우 왕자. 이우 역은 고수(특별출연)가 맡았다. 

영화 속에서 이우 왕자는 다른 조선 왕족들과는 달리

독립운동에 적극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 부분이 픽션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비록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이우 역할을 맡은

고수의 연기는 신뢰감을  준다.


영화 <동주>와 <덕혜옹주>는 

시대의 아픔을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그 시대를 힘겹게 살아내야만 했던 

인물들의 내면을 차분하게 들여다보도록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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