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과 돈 문제
결혼 전,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이 세 가족의 수입은 연금 89만원이 전부였다.
근데 집을 샀고 대출 이자를 카드 돌려막기 하다 결국 월 -600만원씩 적자가 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을 숨기다 털어놓으셨고 남편은 충격에 빠졌다.
결혼 준비하며 열심히 모은 결혼 자금을 전부 털어서 급한 빚을 갚았는데도 월에 -400만원의 적자..
월급보다 큰 돈이 매달 적자로 나오는 상황에 남편은 자기 인생은 망했다며 괴로워했다.
(대략의 지난 이야기)
"우리 결혼 하지 말자.. 나같은 사람 만나지 마.."
"너는 가난하지마..."
"돈 많은 남자.. 삼성같은데 다니는 남자 만나..."
남편은 슬퍼하며 청승을 떨었다.
그렇게 자기 인생 망했다며 괴로워 하면서도 남편은 모든 상황을 자기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의아했다.
"저기.. 근데.. 그냥 다 같이 일하면 되잖아?"
빚이 많은데 가족들은 아무도 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의아했고 이상했다.
월에 400만원의 적자는 3명이 다 같이 일하면 금방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안된단다.
그럴 수 없단다.
이해 할 수 없지만 남편의 입장은 이랬다.
<빚이 산더미지만 아무도 일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 시아버지 : 큰 시누이가 아프기 때문에 늘 대기조로 있어야 한다.
- 시어머니 : 그동안 고생을 많이해서 좀 쉬어야한다.
- 막내 시누이 : 편입하고 싶어하니까 학원 다니며 공부하게 해줘야한다.
남편이 파혼하자고 하며 자기 인생을 포기하는 이유는 고작 이런 것들이었다.
'그냥 가족들이 그러고 싶어해서'
시아버지
: 큰 시누이가 아프기 때문에 늘 대기조로 있어야 한다.
큰 시누이는 항암을 하고 있었다.
부작용으로 픽픽 쓰러지거나 숨을 못쉬기도 했다.
그러면 빨리 응급실로 가야 하고 안좋아지면 중환자실에 기약없는 입원을 하고는 했다.
그래서 솔직히 시아버지의 상황은 어쩔 수 없다는 건 너무나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들이 자주 있지는 않았다.
당시 큰 시누이는 한달에 한 번 정도 아팠다. 때로는 두번, 때로는 안아프기도 했다.
워낙 간헐적으로 아프다보니 때로 시아버지는 몇 주간 대기만 하기도 했다.
그 기간엔 그냥 쉬고, 놀러다니셨다.
차라리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아픈건 잘 대비를 해야하는 일이지만, 현실엔 빚이 쌓여가고 있으니 말이다.
"택시를 해보시는건 어떨까?"
"그러다가 누나 아프면? 바로 달려 갈 수가 있어? 개인택시도 아닌데. 아빠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일을 하면 안돼."
시간 제약이 없으며,
언제든 할 수 있고,
쏠쏠하게 돈이 되는 일이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나만)
"음식 배달 알바는 어때?"
당시는 코로나 시기라 배달 건도 많고, 배달 알바도 활발했다.
이걸로 큰 돈 벌 수는 없더라도 소일거리도 되고, 몇 십 만원이라도 벌 수 있으면 그게 어디인가 싶었다.
남편도 이건 부담도 없고 좋은 것 같다며 바로 본가에 가서 배달 알바를 하실 수 있게 앱도 깔아드리고 알바 신청도 해드렸다.
자기 희생 할 줄만 알던 남편이, 가족들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얘기하는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소하지만 남편에겐 큰 한걸음인 것이다.
나중 일이지만 결국 이 알바로 한달에 70~90만원 정도를 벌게 되었다.
시어머니
: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해서 쉬어야한다.
솔직히 이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사고를 친 장본인이시면서, 이미 몇달을 쉰 상태였다.
"일 안하니까 너무 행복하다. 사는거 같아"
"집이 있으니까 너무 좋다. 사람은 집이 있어야 돼."
어머니가 이런 말 하는걸 처음 들어봤다며 남편은 몇 달은 더 그렇게 지내게 해주고 싶어했다.
본인이 빚을 지더라도 말이다.
"우리 엄마 엄청 고생했어.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하고.
누나 아파서 마음 고생도 했잖아.
지쳤다는데 어떻게 일을 무리하게 또 시켜.. 엄마까지 쓰러지면 어쩌라구."
그래...
백번 양보해서 일은 잠시 쉬더라도, 어머니의 소비에는 문제가 있었다.
빚이 있고 돈이 없는데도 쓰고 싶은 돈은 그냥... 쓰셨다.
특히 큰 시누이의 딸, 손녀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사고싶다는 장난감, 인형, 먹는거든 뭐든 제일 좋은걸로 사줘야 한다며 카드를 턱턱 긁으셨다. 마치 돈이 넉넉한 것처럼 말이다.
거기다, 그 빚더미 사이에도 다 큰 시누이(막내) 학원비와 용돈도 챙겨주고 있었다.
"이정도는 해야지"
"이정도는 해도 되지 않겠니~"
"이정도는 해줘야지"
아니..
그건 다 돈이 있는 사람들의 얘기다.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돈이 있는 만큼만 쓰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돈이 없는 현실은 외면하면서, 남들처럼 살고 싶어서 시어머니는 계속 신용카드를 쓰셨다.
이런 소비 습관은 돈 없는 집에는 재앙과 같았다.
결국 어머니 일 하셔야 한다는 건 설득하지 못했지만, 가계부를 써야 한다는건 간신히 설득할 수 있었다.
남편도 가계부는 힘들지도 않고 좋은 것 같다며 어머니를 설득했다.
가계부를 쓰자 얼마를 쓰고있는지 한 눈에 보였다.
'이정도면 괜찮겠지' 하던 것들이 쌓여서 큰 지출이 되고 있다는 걸 남편도, 시어머니도 눈으로 확인했다.
그러자 소비가 줄었다.
손녀에게 사주는 장난감은 다이소에서만 사셨다.
더이상 홈쇼핑과 배달음식을 먹지 않으셨다.
가계부를 쓰고 한달이 지나자 생활비를 70만원 가량을 아낄 수 있었다.
막내 시누이
: 편입하고 싶어하니까 학원 다니며 공부하게 해줘야 한다.
나는 이 부분이 정말 이해가 안되는데, 설득하기도 가장 어려웠다.
빚이 한달에 400인데도 시누이가 엄카로 쓰는 돈이 한달에 60~80만원이었다.
시누이가 열심히 공부했다면 안아까운 돈이었겠지만 20대 초반 시누이는 학원에서 연애를 하고 있었다.
남편도 그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공부에 돈을 지원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보고 나쁜 사람이라고 길길이 날뛰면서 말이다.
하지만 몇달 뒤,
결국 시누이가 한달에 100만원씩 집에 지원하도록 만들었다.. (이 얘기는 3편에)
가난하게 살아온 남편은 계속 가난 할 줄 밖에 모르는 사람 같았다.
자기만 희생해서 모두를 덜 가난하게 만드는게 최선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은 남편의 희생을 기다리고 바라고만 있는데..
나는 그걸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속에서 분노가 끓었다.
남편이 나한테 화를 내도 멈출 수 없었다.
결혼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이 사람을 이 진흙탕에서 끄집어 놓아야겠는건, 10년을 연애한 내 청춘에 대한 마지막 의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