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많은 집에서 평범하게 취업한다는 것에 대하여
나와 10살 차이나는 어린 시누이가 엊그제 취업에 성공했다!
기쁜 일이지만 마냥 축하만 할 수 없었다.
크고 묵직한 집안 사정때문이다.
빚 많은 집에 살며 중소기업에 취업을 한다는 건 과연 축하할만한 일일까.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사실 나와 시누이는 일반적인 시댁식구 관계는 아니다.
초등학생 꼬맹이 일 때부터 시누이를 봐왔어서 그런지 시댁 식구라기 보단 친한 동생처럼 느껴진다.
시누이의 첫 스니커즈도 내가 사줬고, 중학교 땡땡이(현장체험학습)도 함께 갔으며, 시누이의 첫 여행도 나랑 둘이 떠났기에 각별한 사이다.
실제로 시누이가 기쁜 취업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게 바로 나였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시누이가!
요즘 그렇게 어렵다는 취업시장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것이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탄탄한 중소기업이고 월에 200 ~ 250만원정도를 받는단다.
고물가 시대에 적다면 적지만 그래도 사회 초년생으로 꽤 괜찮은 금액인 것 같다.
대기업을 가는 몇몇을 제외하고 이런 취업 형태는 어쩌면 일반적인 사회생활의 시작이니 말이다.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도 잠시, 현실적인 문제들이 떠올랐다.
두가지 문제가 있다.
취업하면 자취를 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시댁에도 100만원씩 지원해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시누이는 뭐가... 남을까?
일단 본가가 지하철도 없는 경기도 끝자락이라 서울 회사를 다니기 위해서는 자취가 필요하다. 자취 비용을 줄이기 위해 쉐어하우스나 고시원을 알아본다고 해도 한달에 최소 4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어제 고시원을 알아보면서 요즘 물가에 참 놀랐다. 좀 숨통이 트일만한 크기면 50~60만원 정도 하고, 손바닥만한 방에 창문이 복도로 난 제일 싼 방이 37만원 정도 했다. 그마저도 많이 있지 않았다.)
거기에 교통비, 휴대폰비, 식비 등등을 생각하면 한달에 100만원정도는 훌쩍 넘기 쉽상이다.
이정도는 서울이 본가가 아닌 다른 많은 초년생들이 겪는 문제 이겠지만..
진짜 문제는 시댁에 빚이 많아서 시누이가 한달에 100만원씩 드려야 한다는거다.
100만원씩을 드려도 사실 빚 이자로 다 나간다.
근데 이 100만원을 드리지 않으면 또 빚을 지셔야 하기 때문에 안 드릴 수도 없다..
이렇게 3년을 100만원씩 드려야 빚은 청산할 수 있는데,
사실 그 3년이 지나도 희망은 없다.
빚은 사라지지만 수중에는 한푼도 없을것이며,
3년간은 노후준비가 아니라 빚만 갚는거라..
나이를 더 먹고 시부모님이 일을 못하시게 되면 노후 문제는 오롯이 우리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동안 뭐했는데?
결혼 전에는 남편이 7년간 월급 거의 전체를 드렸었다. 한달에 본인을 위해 10만원도 못 써본 달도 많다.
그리고 지금은 내 돈도 4천만원을 빌려드린 상태다.
(그런데도 왜 형편은 나아지지 않을까..)
시누이도 3년 전부터는 알바를 해서라도 100만원씩 보태왔다. 시누이 이름으로 대출도 1천만원 받아가셨고 말이다.
심지어 작년에는 시누이가 워킹홀리데이에서 번 돈을 매달 150만원씩 지원해드리고 있었다.
그리고도 추가로 돈이 급하게 더 필요하다고 하셔서 가진 돈을 다 드렸다.
"우리는 왜 이래?"
시누이가 울었다고 한다.
눈물이 날 만도 하다.
시누이는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일을 4개나 하면서 열심히 돈을 벌었다.
남들 놀러가는 워홀을 정말 돈을 벌러간거다.
그렇게 열심히 월에 400만원 넘게 벌었지만 결국 수중에 돈 한푼없이 돌아왔다.
여행 한번 못해보고 말이다.
약 3년동안 시누이는 기특하게도 3천9백만원 정도를 어머니께 드렸는데 그 덕분에 빚이 줄었냐 하면... 놀랍게도 늘었다.
무리하게 받았던 3금융 대출 이자는 무섭게 불어났고 이자를 겨우겨우 쳐 내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3년동안 고리대출을 저리대출로 바꾸고, 이자를 겨우 갚고 있었는데 우리도 모르는 새 또 5천만원의 빚이 생기셨다.
하하...
이렇게 답답한 상황에 시누이가 취업을 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월에 200~250만원을 버는데 자취도 해야되고 어머니께 돈도 지원해드려야 한다.
앞으로 3년을 말이다.
3년동안 시누이는 얼마를 모을 수 있을까?
3년동안 과연 시댁의 빚이 줄어들 수 있을까?
열심히 일 해도 주변 친구들 놀며 지내듯 돈 쓸 수 없이 한없이 아끼며 살아야 할텐데,
어쩌면 주말에 알바까지 해야 입에 겨우 풀칠할지 모르는데,
그래도 3년 뒤에 통장 잔고가 비어있을 텐데,
그렇다고 시댁이 지금보다 더 희망적일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이런 삶을 그냥 견디라고 해도 되는걸까..
시간이 흐르면 친구들은 하나 둘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차도 살텐데..
너 혼자 아무것도 하지 말고 다 참고 빚 갚는 노예처럼 일만 하는 길을..
축하해줘도 되는걸까?
사실 남편도 33살까지 돈 한푼 없었었다.
물론 지금도 없다.
그래서 더 잘 알고 있다.
이대로 가면 허망하고 슬프고 답답하고 화나는 미래가 있을 뿐이라는 걸 말이다.
차라리 2년동안 어디 공장에라도 들어가서 300만원씩 벌면서 200만원씩 드리고, 1년 반 만에 빚을 다 청산하고 자유가 되는 건 어떨까.
20대에게 하라고 하기 어려운 선택이긴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집에서 평범하게 살기 위해선 어쩌면 평범하지 않은 선택을 해야하는게 아닐까...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우리도 평범하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취업 축하파티를 하자는 시누이의 연락에 아직 답장을 하지 못했다.
마음이 무겁다.